19일 오후 서울 혜화역 일대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열려

여성 1만2000여명 운집  

‘동일범죄 동일수사 동일처벌’ 및

불법촬영 피해 방지 대책 촉구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출구 일대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참여한 여성 1만2000여명이 불법촬영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출구 일대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참여한 여성 1만2000여명이 불법촬영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불법촬영 성차별수사’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가 들끓었다.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출구 앞 마로니에공원 일대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모인 여성 1만2000여명(경찰·시위 운영진 추산)은 “불법촬영 피해자로 자살한 여성이 몇 명이냐. 남자만 국민이냐 여자도 국민이다”라며 “책임지고 보호하라”고 외쳤다.

이들은 최근 일어난 ‘홍대 누드크로키모델 불법촬영’ 사건에서 경찰이 이례적으로 빠른 조사에 나서고, 여성 가해자를 포토라인에 세우며, 남성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증거까지 직접 수집하는 등 강력 대응에 나서자 이를 ‘편파수사’로 봤다. 이날 시위 참가자들은 “여성이 피해자일 때도 이번과 같은 수준으로 수사하라”며 불법촬영 유출·소비 근절에 대한 수사당국의 의지를 촉구했다.

이날 시위 드레스코드가 ‘레드’(여성의 분노 의미)였던 만큼 혜화역 일대는 빨간색 옷을 입은 여성들로 가득했다. 광주, 대전, 부산, 대구 등 전국 곳곳의 여성들도 집회 운영진이 빌린 버스를 타고 시위 장소로 모여들었다.

시위는 4시간가량 진행됐다. 오후 3시 30분, 시위 운영진은 집회 시작을 알리며 노래 제창을 요청했고, 참가자들은 노래를 부르며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비판했다.

반인 몰카야동, 렇게 넘쳐난데, 년간 제대로 된 수사 안 해, 라져 몰카충들, 늘은 말할 거야, 십억 지구에서 남자인 거, 럭키야! 수사해 신고해도 한남경찰 수사 안 해줘, 수사해 홍대 몰카 같은 처리 매일매일 보여줘, 목까지 검열 받네, 해줘 오 내 인권, 년이 가도 절대 안 바뀌어, 수사 안 하면 절대 안 바뀌어!”(동요 ‘숫자송’ 개사)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출구 일대에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열려 여성 1만2000여명이 집회에 참여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출구 일대에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열려 여성 1만2000여명이 집회에 참여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또 이들은 “여자가 피해자면 신고반려 집행유예! 남자가 피해자면 적극수사 강력처벌! 인터넷에 여성몰카 지금 당장 규제하라! 워마드는 압수수색 소라넷은 17년 방관! 워마드만 수사 말고 일베남초 뒤져봐라! 여자도 마음 놓고 용변보고 살고 싶다! 남자에겐 당연한 것 여자들은 갈망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아울러 이종규 서울마포경찰서장,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 이철성 경찰청장의 이름을 외친 후 야유를 보내며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인정하고 책임지라’고 주장했다.

구호 제창을 마칠 때마다 여성들은 환호하며 “여성이 움직이면 세상이 바뀐다. 우리가 서로의 용기고, 여자는 여자가 돕는다”며 연대 의지를 다졌다.

시위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집회에 참가하려는 여성들의 줄은 끝을 보이지 않았다. 시위 운영진에 따르면 4시 5분께는 5000명, 5시 30분께는 1만1000명이 집회에 참여했다. 집회 참가 인원이 계속해서 늘어나자 경찰은 이화사거리에서 혜화동로터리 방향 4차선을 전면 통제했다. 

구호·노래 제창 외에도 여성들은 불법촬영에 대한 성차별수사를 비판하기 위해 퍼포먼스를 벌였다. ‘불법촬영 남성 가해자 솜방망이 처벌 내용 담긴 기사 헤드라인 찢기’ ‘법전에 액체괴물 던지기’ ‘포돌이 부수기’ 등이었다.

 

시위 운영진이 ‘불법촬영 남성 가해자를 솜방망이 처벌한 내용’이 담긴 기사 헤드라인을 찢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시위 운영진이 ‘불법촬영 남성 가해자를 솜방망이 처벌한 내용’이 담긴 기사 헤드라인을 찢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시위 운영진은 “그간 사법부가 불법촬영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사를 살펴봤는데 아주 가관이더라”며 “이를 통해 불법촬영 가해자가 성별에 따라 어떻게 다른 취급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대생 치마 속 몰카 찍은 남성 교직원, 항소심도 집행유예’ ‘버스 등 공공장소서 2년간 몰카 찍은 50대 경비원 집행유예’ ‘고시촌 여성 나체 몰카 찍은 30대 과외교사 집유’ ‘몰카 항의하자 뺨 때린 뻔뻔남 집유 2년’ 등의 기사 헤드라인이 적힌 종이를 찢었다.

 

시위 운영진은 “남자 편인 사법부와 사법부의 비호를 받는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를 담았다”며 법전 뒤에 숨어 불법촬영을 하는 남성의 모습이 담긴 피켓에 액체괴물을 던졌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시위 운영진은 “남자 편인 사법부와 사법부의 비호를 받는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를 담았다”며 법전 뒤에 숨어 불법촬영을 하는 남성의 모습이 담긴 피켓에 액체괴물을 던졌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또 이들은 “한국 남자가 만든 법 뒤에 숨어 불법촬영 하는 남성들 졸렬하고 꼴 보기 싫다”며 끈적끈적하게 늘어나는 액체괴물을 법전 뒤에 숨어 불법촬영을 하는 남성의 모습이 담긴 피켓에 던졌다.

경찰 마스코트인 ‘포돌이’ 인형탈을 뿅망치로 부수기도 했다. 시위 운영진은 “우리의 분노를 표출하기엔 이 정도도 얌전한 것”이라며 “이중 잣대에 함몰돼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이상적이고 공정한 줄 아는 사법부와 남자들을 규탄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시위 운영자들은 집회를 마무리하며 성명서를 낭독했다. “모든 여성은 남성과 같은 대한민국의 민주시민으로서 대답 받아야 한다. 국가는 사법에서의 여성차별을 즉시 시정하라. 불법촬영 피해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 남성 범죄자를 여성 범죄자와 동일한 수준으로 수사하고 처벌하라. 우리 여성들은 여성의 피해를 해일 앞에 조개 취급하는 모든 남성 중심적 권력에 분노할 것이다.”

이날 버스를 타고 가며 시위를 구경하던 여성들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집회 참가자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이에 시위 참가자들은 박수와 함성으로 응답했다.

한편, 집회 참가자들을 휴대폰으로 찍는 남성들도 있었다. 여성들은 그들을 향해 ‘찍지마!’라고 외치며 “불법촬영을 규탄하는 시위에서까지 불법촬영을 걱정해야 한다는 것에 참담하고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는 ‘(인증) 지금 염산 챙기고 출발한다’는 내용의 염산 테러 예고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 17일 강남역 여성혐오살인사건 추모 집회가 열렸을 때도 디시인사이드에 염산 테러 예고글이 게시된 바 있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성명서>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다.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홍대 누드 크로키 모델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는 여자가 피해자인 불법촬영 사건과 다르게 일사천리 진행됐다. 경찰은 여자가 피해자였던 불법촬영 사건들에 대해서는 ‘이런 거 못 잡아요’ ‘해외 사이트라서 검거가 어려워요’ ‘본인 맞아요? 본인 아닌 것 같은데 본인인 거 증명할 수 있어요?’ 등 수사에 미온적 반응을 보여 왔다. 또 여성들이 모든 증거를 수집하고 가해자를 특정하며 불법촬영 헤비업로드를 고발할 때도 ‘사소한 것 말고 묵직한 것 위주로만 가져오라’며 수사 의지가 있긴 한 건지 의심스러운 태도로 여성의 피해를 외면해왔다. 그런데 이런 경찰이 남자가 피해자가 되자 갑자기 증거수집을 위해 한강을 뒤지고, 2차 가해 자료를 수집하며, 피해자의 정신건강을 걱정하는 등 정상적인 경찰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언론은 여성이 피해자인 성범죄사건에 대해 그러했듯 선정적인 기사 제목을 달아 클릭을 유도하기보다는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지, 피해자가 얼마나 부당한 피해를 입었는지, 그동안 여자들이 요구해왔던 논조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같은 시기 문제가 된 여자 고등학교 기숙사 불법촬영사건, 대학교 성관계 동영상 유출사건은 불법포르노 검색순위에 올랐다. 수천 건의 불법촬영물을 제작·유포한 남성들의 절대 다수가 불구속으로 수사 받고 재판도 받지 않고 풀려났음에도 단 하나의 불법촬영물을 유포한 여성은 수갑을 차고 포토라인에 섰다. 불법촬영 피해자가 남성이란 이유로, 가해자가 여성이란 이유로 사건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기존에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와는 너무나 다른 양상을 보였다.

우린 몰랐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진짜로 쓸 수 있다는 것을. 피해자가 피해 책임이 없는 온전한 피해자로만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을. 불법촬영 범죄수사 상황을 뉴스 속보로 내보낼 수 있다는 것을. 불법촬영 피해자를 긴급체포하고 구속하여 수속할 수 있다는 것을. 불법촬영 가해자를 포토라인에 세우고 언론에 얼굴을 공개시킬 수 있다는 것을. 불법촬영 관련사이트 압수수색 및 사이트 관리자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찰이 2차 가해 사례까지 수집해준다는 것을. 증거 수집을 위해 한강까지 뒤질 의지가 있다는 것을. 그렇게나 인력이 충분했다는 것을. 불법촬영 가해가 인격살인이라는 것에 이렇게까지 공감해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처음 알았다.

그들은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다. 국가는 여성을 보호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에서는 이렇게 명시한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여성들은 과연 헌법에 명시된 것과 같이 성별에 의해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있는가? 헌법이 말하는 모든 국민에는 여성도 포함되어 있는가. 여성은 국가로부터 정당한 보호를 받고 있는가. 국가는 여성을 국민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본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는 자신의 알량한 쾌락만을 위해 동료 시민의 인격을 침해하는 불법촬영물을 제작하고 소비해온 남성을 규탄한다. 단지 경제적 이득을 위해 피해자의 존엄을 무시하며 선정적 기사를 써대고 사실과 정황을 왜곡하고 편파적 보도를 일삼은 언론을 규탄한다. 그동안 ‘수사가 어렵다’, ‘처벌이 어렵다’며 여성들의 피해를 외면하고 죽음으로 몰고 가는 불법촬영 범죄를 솜방망이 처벌하고 방조한 사법부를 규탄한다. 여성들의 용기와 연대의식을 통해 시작된 미투 운동, 성범죄 관련법에 냉담히 고개 돌리며 계류시키고 있는 입법부를 규탄한다. 국민의 반인 여성을 보호 않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않는 행정부를 규탄한다.

모든 여성은 남성과 같은 대한민국의 민주시민으로서 대답 받아야 한다. 국가는 사법에서의 여성차별을 즉시 시정하라. 즉각적 피해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 남성 범죄자를 여성 범죄자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수사하고 처벌하라. 우리 여성들은 여성의 피해를 해일 앞에 조개 취급하는 모든 남성 중심적 권력에 분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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