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지난 4일부터 개관 6주년 특별전시 ‘최초의 증언자들’을 열고 있다. ⓒ이세아 기자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지난 4일부터 개관 6주년 특별전시 ‘최초의 증언자들’을 열고 있다. ⓒ이세아 기자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6월2일까지

개관 6주년 특별전 ‘최초의 증언자들’ 

1970년대 배봉기 할머니 증언부터

1991년 김학순 할머니 증언이 촉발한

일본군성노예제 피해 고발운동사 다뤄

한국군의 베트남전 성폭력 피해자 증언도

“일제가 저지른 죄악상을 기록하여 이 땅에 재현되어서는 안 될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털어놓는다.” (고(故) 배옥수 할머니, 1984년 ‘여성중앙’ 4월호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며) “신문에 나오는 걸 보고 내가 결심을 단단하게 했어요. 아니다. 이거는 바로 잡아야 한다.”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 증언 중)

고통 속에서도 입을 연 여성들이 있다. 폭로는 바위처럼 견고한 여성혐오를 부수고 구조적 폭력의 실체를 드러냈다. 누군가는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든 ‘미투(#MeToo·나도 말한다) 운동’이 ‘유례없는 열풍’이라 했지만, 여성들의 분연한 증언이 세상을 뒤흔든 역사는 사실 길다.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올해 개관 6주년을 맞아 지난 4일부터 특별전시 ‘최초의 증언자들’을 열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일본군성노예제 피해 최초 증언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지난 4일부터 개관 6주년 특별전시 ‘최초의 증언자들’을 열고 있다. ⓒ이세아 기자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지난 4일부터 개관 6주년 특별전시 ‘최초의 증언자들’을 열고 있다. ⓒ이세아 기자

이번 특별전시는 1991년 오랜 침묵을 깨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린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에서 출발한다. 그의 말하기는 다른 국내 피해자들도 증언에 나설 수 있게 용기를 불어넣었고, 나아가 국제적 ‘말하기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1992년 호주의 얀 루프 오헤른, 중국의 완아이화, 필리핀의 마리아 로자 루나 헨슨, 1994년 말레이시아의 로자린 쏘우, 1995년 대만의 황아타오 등 세계 각국에서 일본군에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생존자들이 차례로 피해를 공개 증언했다. 

 

1944년 일본 오키나와 부근 도카시키 섬에 설치된 위안소 ‘빨간 기와집’. 1975년 일본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증언한 고 배봉기 할머니는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이곳에 있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
1944년 일본 오키나와 부근 도카시키 섬에 설치된 위안소 ‘빨간 기와집’. 1975년 일본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증언한 고 배봉기 할머니는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이곳에 있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

 

배봉기 할머니가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을 피해 산에 숨어 있는 모습.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
배봉기 할머니가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을 피해 산에 숨어 있는 모습.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42년 일본군에 끌려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지에서 일본군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고 노수복 할머니의 태국 여권.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42년 일본군에 끌려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지에서 일본군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고 노수복 할머니의 태국 여권.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

 

2011년 8월10일 제982차 수요시위에 참석한 노수복 할머니.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
2011년 8월10일 제982차 수요시위에 참석한 노수복 할머니.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

1991년 이전에도 피해 증언 이어졌지만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낮은 관심에 반향 ↓

“여성들의 증언, 피해자 낙인찍는 사회 고발”

김동희 관장 “피해자에 ‘왜 지금 말하나’ 묻기보다

지금이라도 연대 고민하는 계기 되길”

전시에선 김학순 할머니 이전에 언론을 통해 ‘위안부’ 피해를 고발한 배봉기(1975년), 이남님(1982년), 노수복, 배옥수 할머니(모두 1984년)의 증언도 다룬다.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 나온 피해자들의 말하기가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만큼 세상을 뒤흔들지 못한 이유는 뭘까. “그들의 증언이 세상에 등장했던 1970~1980년대 당시 우리의 귀는 불행히도 아직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1987년 6월민주항쟁, 1988년 기생 관광 반대 운동 등 다양한 여성 인권 운동이 진행되며 사람들의 인식도 차츰 변했다. 그 토대에서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듣는 귀’가 나타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사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피해자가 자신을 드러내고 성폭력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스스로를 ‘더러운 여자’ ‘공동체의 수치’로 낙인찍는 행위였다. 1982년 ‘레이디경향’을 통해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한 고 이남님 할머니는 “꼭꼭 숨어 살다가 내 육신과 함께 비밀로 땅속에 묻어 버리려 했는데, 내 과거가 탄로 나 이렇게 여기에 털어놓게 됐다”고 밝혔다. 황아타오 등 대만의 생존자들도 1991년 검은 장막 뒤에서 발만 내놓은 채 조심스럽게 증언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서하람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학예사는 “여성들의 증언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낙인을 찍는 사회에 대한 고발이기도 했고, 여성운동에서 피해자의 공개 증언의 중요성을 부각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김동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장은 “‘위안부’피해생존자들의 증언 당시에도 반발은 심각했다. ‘창피한 거 모르는 노인네’라고 비난받고, 가족·공동체와 분리돼 낙인찍히기도 했다. 김 할머니가 공개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구나’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미투’ 운동 속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왜 지금이냐’ 묻지 말고, 지금이라도 연대해 다시 피해자가 생기지 않을 수 있게 함께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2전시실에서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 병사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의 증언을 볼 수 있다. ⓒ이세아 기자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2전시실에서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 병사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의 증언을 볼 수 있다. ⓒ이세아 기자

전쟁이 있는 곳엔 늘 강간 범죄가 있었다. 한국군도 예외는 아니다. 1층 정원으로 나가 왼편 지하의 제2전시실로 가면, 베트남전 당시 한국 병사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그 날의 참혹상을 말하고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2015년 만난 베트남 빈딘성 거주 피해 여성들은 백발이 되어서야 입을 열었다. “그 증오를 견딜 수가 없어요. 그 때 생각하면 아직도 증오해. 너무 미워.” “악몽을 많이 꾸었어요. 몇 년 동안. 잠자면서 그렇게 소리를 질렀대요. 살려달라고.” 서하람 학예사는 “피해자이지만, 가해자이기도 한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를 마주하자는 의미에서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 2층 역사관에선 종전 이후 역사의 질곡을 견뎌 온 피해생존자들의 사연도 볼 수 있다. 광복을 맞아 꿈에 그리던 고국에 돌아왔지만, 위안소 못지않게 가혹한 가난, 냉대, 질병, 고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는 다시 미군을 상대하는 ‘위안부’가 됐다. “남자가 지겹고 싫어”도 달리 먹고 살 방도가 없었다. 결혼해 잠자리를 강요당하거나, 자식과 가족들에게조차 평생 피해 사실을 비밀로 한 채 살아온 여성들도 있다. “강인하게 삶을 지켜온 그녀들이 진실을 밝히고 평화를 외치고 있는 생의 마지막, 그녀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있는 해방은 지금 어디쯤 왔을까.” 관람객들은 전시장 벽에 적힌 문구를 보며 저마다 생각에 잠긴 듯했다.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지난 4일부터 개관 6주년 특별전시 ‘최초의 증언자들’을 열고 있다. ⓒ이세아 기자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지난 4일부터 개관 6주년 특별전시 ‘최초의 증언자들’을 열고 있다. ⓒ이세아 기자

전시장은 평일 낮에도 인파로 붐볐다. 중학생들부터 한국을 여행 중이라는 백인 커플까지 다양한 관람객들이 있었다. 2012년 개관 이래로 7만4000여 명이 이곳을 찾았다. 방문자 수는 매년 늘어 지난해에만 1만8000여 명을 기록했다. 김 관장은 “기존 콘텐츠만 보여주기에도 비좁아서 박물관 확장을 고민 중이다. 자금 마련을 위해 후원회원도 늘리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좁은 공간에 다양한 콘텐츠가 마련돼, 특별전시와 일본군 ‘위안부’ 생애관, 운동사관 등을 모두 둘러보려면 최소한 1시간의 여유를 갖고 방문하는 게 좋다. 아쉽게도 사진·영상 자료 등이 확보되지 않아 증언자들의 생생한 육성을 듣기는 어려웠지만, 다양한 피해생존자들의 생애와 사연을 압축 전시해 ‘성폭력 말하기 운동’의 파급효과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김 관장은 “미투 운동에 나선 사람들이 꼭 와야 할 공간 아닐까”라며 “김학순 할머니의 미투에 한국 여성단체들이 응답하면서 여성운동의 거대한 불씨가 타올랐다. 이번 전시가 관람객들에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그 중요성을 깨닫고 어떻게 연대할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올 하반기 일본군이 어떻게 여성들을 성노예로 강제 동원했는지를 더 상세하게 조명하는 특별전시를 열 예정이다. 피해생존자인 김학순, 이수단, 김상희 할머니의 생애를 더욱 깊이 들여다보는 월례 세미나도 다음 달까지 연다. 중고등학생들이 직접 기자가 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에 관심을 지닌 시민들과 피해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는 저널도 만들 계획이다.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 정기 휴관하며,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오후 1시-6시까지 문을 연다. 관람 문의 02-392-5252.

 

김동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할머니들은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다. 그들의 증언에, ‘살아있는 증거’에 귀 기울여야 한다”며 “관람객들이 앞으로 어떻게 피해생존자들과 함께하면 좋을지, 연대를 고민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무언가 해나가게 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신혜원 작가
김동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할머니들은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다. 그들의 증언에, ‘살아있는 증거’에 귀 기울여야 한다”며 “관람객들이 앞으로 어떻게 피해생존자들과 함께하면 좋을지, 연대를 고민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무언가 해나가게 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신혜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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