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자가 대접받는

위계질서 아직 존재

성역할 구분도 뚜렷

변화는 아직 멀어 보여

 

지난해 열린 홈커밍데이 때 주민들이 윷놀이를 하고 있다. ⓒ김경애 편집위원
지난해 열린 홈커밍데이 때 주민들이 윷놀이를 하고 있다. ⓒ김경애 편집위원

우리 마을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회관을 애용하는 여성들은 80대가 3~4명이고 70대 초반이 2~3명, 그리고 60대가 나를 포함해 4명이다. 정부에서 마을회관의 냉·난방비를 지급해줘 농한기인 추운 겨울에도 기름보일러를 틀고 따뜻하게, 한여름에는 에어컨으로 시원하게 해놓고 한가한 때에는 여성들은 주로 화투치기를 하면서 소일한다. 또 정부가 마을회관에 65세 이상 되는 사람들 앞으로 매달 보조금을 지급하고 쌀도 준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회관에서 소일하다가 정부에서 지급한 쌀과 보조금으로 산 식재료와 각자가 수확하거나 들에 나가 뜯어온 채소로 종종 공동으로 식사를 한다.

그런데 반찬을 준비하고 밥을 하는 일은 모두 60대와 70대 초반 여성들의 몫이다. 식사 준비에 그치지 않고 밥상을 펴고 숟가락을 놓고 밥과 반찬을 옮겨 차리는 일까지 모두 해야 했고, 또 식사가 끝난 후 치우고 설거지하는 일도 모두 이들의 차지였다. 이러한 공동 식사의 전 과정에서 80대 여성들은 꼼짝 하지 않고 앉아서 대접을 받았다. 이 80대 여성들도 각자 농토에서 농사짓고 농번기에는 하루 종일 들에서 일을 할 정도로 정정하다. 60대와 70대 여성들은 해야 할 자신의 농사일이 많고 또 딸기 수확과 다른 농사 품앗이 노동으로도 바쁘다. 70대 초반의 한분은 다리가 아파서 고통을 받으면서도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일하며 자신의 농토에서 농사도 짓는다. 그런데 마을회관 식사 준비와 설거지, 그리고 청소와 뒤처리도 이 여성들이 다했다. 연장자가 대접을 받는 위계질서가 여성들 사이에서도 강고하게 지켜졌다.

 

젊은(?) 60대 여성들의 반란

이에 대한 불만이 고조됐다. 60대 여성들은 80대 여성들도 농사짓고 자신의 집에서는 스스로 밥을 해먹으면서도 마을회관에만 오면 꼼짝도 안 한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또 자신의 딸이나 며느리한테는 대접을 못 받으면서 마을회관에서는 깍듯이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고 했다. 오랫동안 불만을 삭히다가 드디어 젊은(?) 60대가 반란을 일으켰다. 갈골댁이 80대의 한 여성을 만나 요청한즉슨, 80대 여성들에게 우선해 밥상을 차려드리니까 60대와 70대 여성들이 뒤늦게 밥을 먹기 시작하면, 80대 여성들은 이미 식사가 끝나고 빈 밥그릇과 사용한 수저를 쌓아놓고 60대와 70대 여성들이 밥을 다 먹고 치우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빈 그릇을 설거지통에 가져다 놓기라도 해달라고 했다. 갈골댁에게 이야기를 들은 그 분이 다른 80대 여성들에게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이 식사할 때 아무것도 안 한다고 불평했다고 하며 이제부터 일을 좀 하라고 한다고 말을 전해서 말다툼과 해명이 연이어 일어나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이 반란은 성공해 이제 80대 여성들도 식사 준비를 도우고 식사 후에 설거지는 아니더라도 그릇도 나르고 밥상도 닦게 됐다. 이러한 변화를 보고 젊은(?) 여성들은 말 꺼내기를 잘했다고 스스로 만족해했다.

 

칠순을 맞아 영산홍이 활짝 핀날 동네이웃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했다. ⓒ김경애 편집위원
칠순을 맞아 영산홍이 활짝 핀날 동네이웃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했다. ⓒ김경애 편집위원

이 젊은(?)여성들의 반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년에 한번 봄이 되면 이 마을에 살다가 도회지로 나간 사람들이 찾아와 홈커밍 데이 잔치를 열어준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비용을 부담해 마을회관에서 식사를 같이 하고 다 같이 윷놀이를 하는데 상금도 두둑하다. 그런데 문제는 음식 준비였다. 도회지로 나간 고향사람들이 고향에 있는 분들에게 대접을 하기 위해 시작한 잔치였지만, 식사 준비는 마을에 사는 여성들이 해야 했다. 봄에 농사로 바쁜 고향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여성들을 오히려 더 힘들게 하는 행사가 돼버렸다. 물론 행사가 끝나고 나서 수고했다면서 같이 식사라도 하라고 금일봉을 이 여성들에게 지급했지만, 여성들은 힘들어서 음식 준비를 못하겠다고 반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 다음 해부터는 출장 뷔페를 불러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됐고, 이 여성들도 홀가분하게 즐기기만 하면 됐다. 여성들이 더 이상 힘든 일을 감내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해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여성들이 하던 노동은 노동시장의 임금 노동으로 대체됐고 여성들은 짐을 덜었다. 

여자는 채소 사고 남자는 소 팔고

마을회관에서 식사 준비는 젊든 나이 들었든 여전히 여성들의 몫이다. 남자들은 초대받아 앉아서 먹기만 한다. 나는 얼마 전 무릎을 다쳐 마을회관 공동식사 일을 돕지 못하고 얻어먹기만 해 미안한 마음에 남편에게 집에서 설거지를 잘하니 여기서 나 대신 설거지를 하라고 말했더니, 동네 이웃 여자들이 나서서 모두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자신들이 있는데 왜 남자를 시키느냐는 것이다. 시골에서 남자는 귀하신 몸이다. 우리 마을회관에 들락거리는 여성에 비해 남자 숫자가 절반에 불과하다 보니 남자들이 귀한 대접을 받는 전통은 사라질 줄 모른다. 성역할 구별의 전통 문화를 고칠 겨를이 없이 시골에서 할아버지는 귀하신 몸으로 거듭 났다. 수가 적다는 희소성 때문에 성역할 구별의 전통은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성역할 구별은 장날에 뚜렷이 나타난다. 시골 장날에 채소와 과일 등을 파는 이는 대부분 여성이고, 사는 이도 절대 다수가 여성이다. 할머니들이 채소를 가꾸고 나물을 캐 와서 좌판에 깔아놓거나 떡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깻잎과 머위 등을 장아찌로 만들 수 있게 절여서 팔기도 한다. 일부 전문적인 장사꾼을 제외하고는 여자들로 장이 가득하다. 그 대신 소를 파는 장날이 서면 대부분 남자들이 소를 몰고 나와서 팔고 소를 사가는 장사꾼도 다 남자라고 한다. 간촌댁(가명)은 얼마 전 자신이 먹이를 주면서 돌본 소를 남편이 팔러갔는데 얼마에 팔았는지 알려주지도 않는다고 불평이었다. (나는 팔려가는 소의 슬픈 눈을 보고 싶지 않아 가까운 곳에 있지만 직접 가보지는 않았다.) 양파와 마늘을 수매하는 장에서도 남자들이 거래를 한다. 남편이 없는 여성의 경우, 아들이 대신 와서 거래를 한다. 적은 돈이 오가는 일상적인 시장은 여자들의 몫이고 목돈 거래는 남자들이 주도한다. 성역할 구별이 뚜렷하다.

 

합천 장날 ⓒ김경애 편집위원
합천 장날 ⓒ김경애 편집위원

상하 위계 중시하는 사람들

시골에서도 장유유서의 유교윤리가 도전받고 있으나, 여전히 상하 위계를 중요시하다 보니 아직도 나이를 따지고 관계를 명확히 한다. 나이가 조금이라도 많으면 위가 되고 나이가 어린 사람은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깍듯하게 존칭어를 쓴다. 그래서 서로의 나이를 띠로 묻고 누가 동갑이고 아닌지 따진다. 시골에서 중요한 사회적 관계망은 동갑끼리 하는 계모임으로, 동갑계가 무척 성행하고 있다.

나의 나이를 파악하기에 성공한 갈골댁(가명)이 자신과 내가 나이가 같다고 친구라고 반가워했다. 그리고는 70대가 되는 것이 무엇이 그리도 반가운지 칠순을 손꼽아 기다렸다. 갈골댁이 하도 노래를 불러 나의 칠순이 다가오는 것을 모두 알게 됐고 동네 이웃들은 진담반 농담반으로 칠순잔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에 있었으면 대충 넘어갈 일이 시골에서는 모른 척 할 수 없게 됐다. 서울의 친구들과는 칠순을 기념해서 그동안 조금씩 모아둔 돈으로 대만여행을 미리 갔다 왔는데, 그동안 같이 놀아준 친구들이 고마워서 밥 한 끼 사려고 해도 내가 가난하다고(?) 극구 사양해서 대접하기도 어려웠다. 반대로 시골에서는 내가 엄청 부자인 줄 안다. 그래서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아야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이 지역이 산골마을이다 보니 주민들에게는 싱싱한 회를 먹는 것이 늘 로망이었고 이는 아직도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회를 주문하고 매운탕을 끓여 대접했다. 생일은 아직 멀었지만 영산홍이 만발한 날 해마다 대접하던 삼겹살 바비큐를 대신 앞당겨서 치렀다. 크게 부자가 아니어도 일생일대에 한 번은 감당할 만한 비용이었다. 다만 축하받아야할 나의 칠순 잔치에도 나를 포함해서 시골 절친들이 동분서주해야했다. 모두 기쁘게 일하기는 했지만 자기 생일잔치에도 자기가 힘들여 일해야 하는 것이 아직까지 시골여자들의 처지다. 남녀 간의 성역할의 변화는 아직은 멀어 보이는 것이 우리 동네의 사정이다. 유교의 생활문화가 아직도 엄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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