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영면한 패트릭 J. 맥그린치(Patrick James Mcglinchey)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신부
지난달 23일 영면한 패트릭 J. 맥그린치(Patrick James Mcglinchey)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신부

전후 제주에 정착한 ‘푸른 눈의 신부’

아시아 최대 양돈목장 ‘성이시돌 목장’ 세워

여성 고용·지역민 자립지원 등 60년간 사회공헌

지난달 향년 91세로 영면...각계서 추모 물결

먼 아일랜드에서 제주도로 와 60여 년간 가난하고 소외된 한국인들을 도우며 살아온 패트릭 J. 맥그린치(Patrick James Mcglinchey)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신부. 한국 이름 ‘임피제’로 잘 알려진 그가 지난달 23일 91년의 생을 마감하고 영면했다.

1928년 아일랜드 레터켄에서 태어난 맥그린치 신부는 1951년 사제서품을 받고 26세 때인  1954년 성 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로 제주도에 왔다. 이후 계속 제주에 머물면서 가톨릭 선교와 함께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을 벌였다. 

맥그린치 신부가 도착했을 무렵 제주는 한국 전쟁과 4·3사건 등으로 심각한 경제난과 사회 불안을 겪고 있었다. 수많은 아이들이 기아에 허덕였다. 목축업으로 유명한 아일랜드 출신인 맥그린치 신부는 ‘돼지’에 착안했다. 새끼를 밴 암퇘지 한 마리를 인천에서 제주까지 가져와 도민들에게 새끼들을 한 마리씩 나눠줬다. 돼지가 커서 또 새끼를 낳으면 다시 한 마리를 반환하게 했다. 아시아 최대의 양돈목장 ‘성 이시돌 목장’은 그렇게 탄생했다. 돼지, 양. 소, 말 등 연간 3만 마리를 사육하는 제주 근대 목축업의 기둥이 됐다.

 

양털을 이용해 옷을 짜는 한림수직 직원들과 맥그린치 신부
양털을 이용해 옷을 짜는 한림수직 직원들과 맥그린치 신부

맥그린치 신부는 1959년 목장에서 생산된 양털을 이용해 옷을 짜는 한림수직을 설립해 여성 1300여 명을 고용했다. 1950년대 말 한 소녀 신자가 돈을 벌러 부산에 갔다가 사고로 숨진 뒤 같은 비극을 막겠다며 시작한 사업이었다. 2004년 값싼 중국산 양모제품과의 경쟁에서 밀려 문을 닫았지만, 한때는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밀려들 정도로 인기였다. 수십년 간 차별 없이 지역주민을 고용하는 정책을 고수해 많은 여성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했다.

또 제주 최초의 신용협동조합을 세워 저리로 사업 자금을 조달하도록 도왔고, 이외에도 성이시돌 의원, 양로원·유치원 등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해 제주 사람들의 자립과 생활을 도왔다. 1975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고, 2014년에는 한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아일랜드 정부로부터 아일랜드 대통령상을 받았다. 맥그린치 신부는 지난해까지도 제주 지역 ‘성이시돌 호스피스 병원’ 운영에 힘쓰며 “모든 사람은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권리가 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런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이라고 설파해 감동을 전했다. 심근경색과 신부전증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지난 23일 오후 6시27분께 세상을 떠났다.

 

패트릭 J. 맥그린치 신부의 장례 미사가 지난 4월27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열렸다. 2018.04.27. ⓒ뉴시스·여성신문
패트릭 J. 맥그린치 신부의 장례 미사가 지난 4월27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열렸다. 2018.04.27. ⓒ뉴시스·여성신문

맥그린치 신부의 장례미사는 지난달 27일 제주시 한림읍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열렸다.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 문창우 부교구장,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사제들 등 성직자와 신자를 포함해 추모객 2000여명이 모였다. 미사를 집전한 강우일 교구장은 강론을 통해 “전쟁의 광풍 속에서 온 국민이 너무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때, 신부님은 어느 포도송이보다도 주렁주렁 포도알이 열릴 풍성한 열매를 가득히 맺어 주셨다”며 “바위 같은 믿음으로 시련을 이견 낸 푸른 눈의 사나이를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양영철 맥그린치신부 기념사업회 공동 대표는 추도사에서 “신부님은 세계 최고의 내생적 지역개발 모델을 남기셨다. ‘맥그린치 개발 모델’ 연구 논문이 20편에 가까울 정도다. 신부님이 60년을 만들어 놓은 지역개발 모델과 사랑은 우리 기념사업회가 이어 받겠다”고 밝혔다.

원희룡 제주지사도 같은 달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푸른 눈의 돼지 신부’라는 별명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셨던 신부님의 그윽한 미소가 벌써 그립다. 아프고 고통받고 가난한 사람의 편에 늘 함께하셨던 신부님의 사랑과 나눔은 오래도록 우리 도민의 가슴에 온기로 남을 것”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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