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국가인권위원회 공동기획

#WeToo - 미투 너머를 논하다

미·영 등 선진국은 이미 ‘동의’ 성폭행 기준 삼아

독일·아이슬란드 등은 최근 법개정

▶ ‘왜 저항 안했나’ 캐묻는 한국 성폭력 규정, 피해자 두 번 죽인다

 

성폭행이 성립되려면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할 정도에 이르는’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는지 따지는 한국과 달리, 해외 선진국들은 가해자의 행위와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미국은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성폭행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가해자의 폭행·협박에 피해자가 저항하지 않았어도 성폭행이 성립된다. 뉴욕주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 성관계를 맺은 경우, 18세 이상 성인이 15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경우 등을 ‘성폭행’으로 규정해 처벌하고 있다.

캐나다는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 없이’ 성적 행위를 했다면 성폭행으로 판단하고 있다. 캐나다 법원은 2016년 데이트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무스타파 우루야 사건에서 성폭행의 기준으로 ‘적극적 합의’를 제시했다. “성적 행위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적극적이고, 의식적이며, 자발적인 동의이며, 침묵이나 저항 없음을 동의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설명이다.

독일에선 피해자가 몸짓이나 말로써 “싫다”고 표현했다면 성폭행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2016년 쾰른에서 발생한 집단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여론이 들끓자 법을 개정했다. 가해자의 행위를 세분화해 처벌 규정을 마련하는데, 신체나 생명의 위협을 줄 정도로 협박을 가한 상태에서 성적 행위를 강요하면 1년 이상, 피해자를 현저히 능욕하는 유사 성행위를 강요하면 2년 이상, 무기를 소지한 상태에서 성적 행위를 강요하면 3년 이상의 구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도 ‘합의’를 성폭행 기준으로 삼고 있다. 지난달 아이슬란드 의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한 법안은 ‘쌍방이 온전한 상태에서 명시적으로 합의했는가’를 법적 처벌 기준으로 제시한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성적 행위 제안을 수락했다고 해도, 술이나 약에 취해 의사 표현이 힘든 상황에서 성적 행위가 이뤄진다면, 앞선 ‘동의’는 무효라고 본다. ‘상대도 암묵적으로 동의했다고 판단했다’는 가해자의 주장은 인정되지 않는다.

영국도 당사자 간 ‘명백한 동의’ 여부에 주목해 성폭행 여부를 판단한다. 성적 행위에 앞서 상대방에게 분명한 동의를 받았다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면, 폭행·협박이 전혀 없더라도 성폭행으로 간주해 처벌한다.

뉴질랜드에서도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법적 처벌 기준으로 삼고 있다. 피해자의 동의 없는 성적 행위, 피해자가 동의했다고 볼 만한 이유 없이 이뤄진 성적 행위는 모두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다. ‘피해자가 저항하지 않은 경우, 술 취하거나 잠들거나 장애가 있는 등 심신 미약 상태인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몰랐거나 오해한 경우’ 등은 동의 하에 이뤄진 것으로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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