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봉사란 공유와 소통… 함께 어울려야”
[대담] “봉사란 공유와 소통… 함께 어울려야”
  • 진행 =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정리=이유진 기자 (bazzi@womennews.co.k
  • 승인 2018.04.16 14:40
  • 수정 2018-04-21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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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신효철 제23대 총재, 홍순의 전 9대 총재, 이운경 재정위원장이 한국소롭티미스트 50년사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왼쪽부터 신효철 제23대 총재, 홍순의 전 9대 총재, 이운경 재정위원장이 한국소롭티미스트 50년사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신효철 총재, 홍순의 전 총재

이운경 재정위원장 

소롭티미스트는 작은 것들이 모여 

큰 목표를 이뤄나가는 단체

1960년대 창립 초기부터 

전쟁고아, 미망인, 장애인 등 

지속적으로 후원… 교육사업도  

50년사 편찬은 향후 100년을 향한 도약 

라틴어의 Soror(여성)와 Optima(최고)의 합성어로 ‘최고를 지향하는 여성들’을 뜻하는 소롭티미스트는 교육을 통한 여성의 삶의 향상을 추구한다. 1921년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이상적인 봉사를 꿈꾸던 80여명의 전문직 여성들로 시작해 현재 129개국에서 8만여명의 회원이 활동 중인 세계 최대의 여성자원봉사 단체다. 1921년 소롭티미스트의 초기 회장으로 선출된 바이올렛 리처드슨은 초창기 직장에서의 성평등을 주장한 여성이기도 하다. 당시 대학의 체육 강사로 일했던 그는 남성 강사가 자신보다 두 배의 임금을 받는 것을 보고 사직했다가 동등한 임금을 보장하겠다고 명시한 계약서에 사인하고서야 복직했다. UN 소속단체로 한국협회는 1966년 서울클럽의 인준으로 시작돼, 현재 전국 각 지역에 39개 클럽 약 800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소롭티미스트는 한국의 초창기 여성운동 단체로서도 그 뿌리가 깊다. 전쟁 직후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국가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헌신, 봉사해온 단체로 소롭티미스트의 지난 50년은 여성운동의 단단한 토대가 됐다. 성차별·성희롱·성폭력 등 피해 사실을 드러내고 연대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2018년 ‘미투(MeToo·나도 말한다)’ 운동 또한 이런 선배 여성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이어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소롭티미스트 한국협회의 신효철 총재, 이운경 재정위원장, 홍순의 제9대 총재는 지난 12일 소롭티미스트 한국 50주년 사업의 일환인 ‘소롭티미스트 한국 50년사’ 편찬을 기념해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1964 빌딩에서 대담을 나눴다.

신효철 제23대 총재는 지난 2년간 소롭티미스트를 이끌어오면서 후원금 모금, 50년사 편찬이라는 굵직굵직한 일들을 진행해왔다. 최오란 제22대 총재 때 개소한 북한이탈여성 지원센터인 ‘채송화의 꿈’ 또한 이어서 맡아왔다. 홍순의 제9대 총재는 한양클럽 창립 멤버로 총재 임기가 끝난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클럽 활동을 해오고 있다. 딸인 오윤선 호림아트센터 관장부터 손녀 등 3대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운경 재정위원장은 한양클럽 회장이자 재정위원장으로서 소롭티미스트의 더 큰 성장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이날 이들은 소롭티미스트의 역사와 회원으로서 느낀 변화와 성장,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았다.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이 대담을 진행했다.

이들은 “소롭티미스트가 반세기 넘게 큰 갈등 없이 이어져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자발적으로 나서서 먼저 손을 내미는 회원들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라며 “소롭티미스트의 목표인 ‘집단 영향력의 증대’는 개별 클럽이나 리전이 아니라 하나의 연맹으로서 프로그램에 집중해 모두가 함께 발휘하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지금처럼 회원들과 협력해 어려운 여성과 소녀들을 끊임없이 지원할 계획”이라며 “협회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수 있도록 2030 젊은 벤처클럽을 만드는 계획 또한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순의 전 9대 총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홍순의 전 9대 총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효선 여성신문사 발행인(이하 김) “초창기 여성단체 역사적 기록의 일환으로 이 자리를 마련했다. 당시 봉사단체 국제 활동 드물었다. 주부들이 모여 자기 몫의 봉사를 하기 어려울 때인데 주로 어떤 활동을 해왔나.”

홍순의 제9대 총재(이하 홍) “원래 소롭티미스트는 여성을 위한 단체였지만 서울클럽 인준 당시에는 6·25 전쟁의 여파로 발생한 약자들을 지원하는 데 주력했다. 이 시기에는 보육원과 양로원을 방문하거나 상이군인, 전쟁미망인, 출소했지만 연고가 없는 미전향 장기수, 소년소녀가장을 돕는 일에 주력했다. 특히 해방촌이나 청계천에 거주하는 빈민을 지원했는데, 이들이 성남으로 이주한 후에도 지원은 계속됐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을 일일이 확인해 구청에 연결해 입학시켰다. 성남 천막집에 거주하는 소년소녀가장을 매주 방문해 부식을 지원하기도 했다. 서른여덟 살, 딸이 고등학생 때 소롭티미스트에 합류했다. 부모의 마음이었다.”

“당시 클럽 회원들은 사회경제적으로 상류층분들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나눔과 봉사에 헌신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홍 “전쟁을 겪어봤기에 배고픔을 헤아릴 수 있었다. 서울에서 괴나리봇짐 지고 의정부에서 철원으로 쫓겨났을 때다. 그 비참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어제의 부가 무슨 소용이 있나. 돈이 있어도 전쟁을 막을 도리가 없다. 피난 갔다 돌아오니 전부 부모 잃은 고아들이었다. 너무 안타까웠다. 전쟁 전 아버지가 검사였던 아이까지 길거리에서 소매치기하다 붙잡혀 조사받던 시절이었다. 이대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신효철 현 23대 총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신효철 현 23대 총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소롭티미스트 50년사’ 편찬

“얼마 전 ‘한국소롭티미스트 50년사’를 편찬했다. 감회가 어떠신가.”

신효철 총재(이하 신) “선배들의 발자취와 업적을 수집, 정리해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고자 50년사 편찬사업을 시행하게 됐다. 이 사업을 통해 앞으로 100년을 향한 국제소롭티미스트 한국협회 역할과 방향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역대 총재님들께서 많이 도와주셨다. 2016년 4월 편찬모임을 시작해 18개월 동안 편집위원들이 굉장히 애썼다. 회사 반지하 방에서 자료정리를 시작했다. 사진 출처나 설명이 명확하지 않을 땐 선배들에게 일일이 물어봤다. 만들다 보니 600페이지가 넘더라. 예산이 초과돼 걱정했는데 기부하겠다고 나선 회원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출판기념회 땐 울컥하는 마음마저 들더라.”

 “만드는 과정을 눈물 없이 볼 수 없었다. 요즘도 밤에 자기 전에 조금씩 읽어보고 잔다. 읽을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몇 년도 몇 월에 얼마를 후원했는지 다 나와 있다. 그때는 몇만 원도 큰 금액이었다. 한 장 한 장이 역사다. 모두 한 마음으로 돕지 않았다면 못 했을 일이다.”

 “이 재정위원장의 역할도 큰 것 같다.”

신 “재정위원장으로서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해 말 남양유업 백미당에서 연간 2000만원의 장학금을 후원해주는 MOU를 맺었다. 덕분에 2014년 11월 시작한 개인 기부 프로그램인 ‘월계수회’ 후원도 단체, 기업으로 확장됐다. 이 지원금을 모아 장학사업에 쓴다. 2017년의 경우 190명의 학생에게 약 1억600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이번 50년사 출판기념회 장소와 기획도 맡아주셨다. 기념회 때 감사 인사를 받게 하려고 앞에 나와 달라고 얘기했는데, 조심스럽게 사양하더라. 기여를 많이 해서 눈에 띌 수 있는데도 절대 티 내지 않는다.”

이운경 재정위원장(이하 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지만 소롭티미스트에 작은 변화를 일으켜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특히 소롭티미스트의 기본정신으로 돌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초심을 잃으면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총재라는 자리가 직책이 되는 순간 사심이 들어갈 수 있다. 다행히 총재님께서 중간 역할을 잘 해주셔서 큰 갈등 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운경 재정위원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운경 재정위원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소롭티미스트는 작은 기쁨을 주는 단체” 

 “회원으로서 단체의 어떤 점이 가장 좋은가.”

“작은 기쁨을 주는 단체다. 소롭티미스트가 큰 목표를 세우고 가는 단체는 아니다. 처음부터 큰 목표를 세우면 부작용이 생긴다. 작은 게 모여 큰 목표를 이뤄야 한다. 특히 잔잔하게 교감하고 선배들의 올바른 정신과 정으로 뭉쳐진 단체다. 개인적으로는 사람 공부를 하게 됐다. 특히 사람들과 부딪힐 때 노하우가 생겼다. 좋은 점을 극대화시켜주자는 것이다. 부족한 점만 봤다면 어떤 단체도 끌고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나 착한 속성이 있다. 인내심만 있다면 어려운 일도 풀 수 있다. 봉사도 마찬가지다. 자신에 대한 인내가 먼저다.”

“따뜻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봉사단체지만 회원들에게 기부금을 내라고 하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얼마 전 포항지진 구호물품으로 청소기를 사야 했다.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1000만원이 넘게 모였다. 덕분에 청소기 150대를 보낼 수 있었다. 청주에서 재해가 났을 땐 구호물품으로 밥솥이 필요하다더라. 지역 클럽에서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모아 주셔서 밥솥 50개를 전달할 수 있었다.”

 

1970년대 한양클럽 회원들 ⓒ국제소롭티미스트
1970년대 한양클럽 회원들 ⓒ국제소롭티미스트

“앞으로 소롭티미스트는 어떻게 가야 할까.”

“소롭티미스트의 기본정신인 여성과 소녀들에 집중해야 한다. 여성을 위한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인 ‘리브유어드림어워즈’(Live Your Dream Awards)와 소녀를 위한 취업 능력 지원 프로그램인 드림잇, 비잇(Dream it, Be it)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들을 후원할 계획이다. 총재는 심부름꾼의 자리다.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해 갈 수 있어야 한다. 조금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나의 경우, 이렇게 잔잔하게 가는 것이 오히려 호소력이 있고 회원들이 잘 따라주게 된 계기가 됐다. 임정미 차기 총재에게도 이 점을 강조했다.”

“봉사는 공유와 소통이다. 누구 하나가 튀어서도 안 된다. 함께 해야 큰 힘을 발휘한다. 어떤 분이 총재로 오시든 똑같이 갈 수 있도록 예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클럽이 있음으로써 협회가 있는 것이다. 협회가 비대해지면 클럽이 쪼그라든다. 어느 협회라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협회의 사명은 클럽을 육성시키는 것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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