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숙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센터 소장
조영숙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센터 소장
지금까지 제기된 개헌에 반영돼야 할 성평등 과제들은 그동안 여성단체들에 의해 오랫동안 제기돼 온 익숙한 정책 과제들이다. 반면 재정, 금융, 무역 등 경제구조의 판을 짜는 거시경제정책의 성불평등 문제는 아직 생소하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사이에 유엔과 국제노동기구(ILO) 등 전통적으로 불평등 문제를 다뤄 온 국제기구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과 같이 분배정의에 주목하지 않던 국제경제기구들에서조차 거시경제를 젠더관점에서 분석할 필요성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즉, 경제성장률만 중시하면서 성과 인종 등에 서로 다르게 영향을 미치는 분배정의 문제가 거시경제정책 수립 과정에서 고려되지 못했다는 비판적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정부의 세금, 부채, 예산 및 재정지출 증감 등의 결정은 곧바로 성평등 또는 성불평등을 낳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성 중립적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재차 강조하자면, 거시경제정책은 결코 성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거시경제정책에서 다루는 공공지출, 조세정책, 통화정책, 무역정책 등이 여성과 남성의 일자리, 임금, 소득, 공공서비스 등에 각각 서로 다르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분석 결과로 나온 성불평등 지점을 해결하기 위해 요구되는 추가적인 공공자원을 동원하려는 정부의 책임 있는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젠더통합적인 관점에서 한국의 거시경제정책을 분석해 보면 어떨까? 현재 한국사회의 여성들은 공적, 사적 영역 모두에서 성희롱, 성폭력 등의 인권침해에 노출돼있다. 그중 절반의 여성들은 전업적으로 무보수 돌봄 및 가사노동이 전업이며, 나머지 절반의 여성들은 노동시장을 통해 임금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보수와 무보수 노동을 오가면서 심각한 성별임금격차와 일·가정의 양립으로 인한 부담을 개별적으로 짊어지고 있는 여성 다수는, 생산시장영역에서 행하는 노동에 대한 동등가치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재생산 및 돌봄 영역에서 행하는 노동에 대해서는 사회적 가치를 비용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생산과 재생산 영역 모두에서 여성노동의 가치는 남성에 비해 구분, 배제, 제한을 당하고 있으며, 결론적으로 성차별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차별은 대부분 정부가 추진하는 성장, 고용, 물가, 국제수지 관련 거시경제정책이 여성들의 고용기회와 질, 돌봄 및 가사노동의 증감, 공적 그리고 사적 영역에서의 불평등한 권력관계, 그로 인한 성희롱과 성폭력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침으로써 발생한다.

그러나 이를 거꾸로 생각해보면, 성차별을 낳는 근본 원인이 정부의 거시경제정책이기 때문에 정부의 공공지출, 세금체계, 공공서비스 등을 포함한 정책이 전환된다면 오히려 성불평등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설명해 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평등 관점에서 거시경제정책을 추진하는 경제민주화의 가치가 개헌에 반영돼야 한다. 미투(#Metoo·나도 말한다)와 같은 성 불평등에 기반한 성적 폭력은 궁극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포함한 성 불평등이 해결돼야만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성평등과 인권 기반의 경제민주화로의 대전환을 위해 우리 사회는 환골탈태 수준의 대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경제정책의 주요 목표로 삼은 국내총생산(GDP)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에 대한 수정이 요구된다. 아울러, 효율성과 생산성 또는 투자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성의 경제적 권리와 성평등이 인권이기 때문에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성평등한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부의 책임 강화와 함께 경제정책에 여성들이 보다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투명성의 강화가 요구된다.

 

*거시경제정책

정부가 국민의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취하는 조치를 통틀어 경제정책이라고 하며 경제정책은 정책대상이나 목표에 따라 보통 미시경제정책(micro-economic policy)과 거시경제정책(macro-economic policy)으로 나뉜다. 거시경제정책은 성장, 고용, 물가, 국제수지 등 거시정책변수들을 정책의 대상 및 목표로 하고 있는 반면 미시경제정책은 자원의 배분과 소득 및 부의 분배를 대상으로 한다.(출처: 매경시사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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