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2018분 이어말하기’가 이틀째 진행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3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2018분 이어말하기’가 이틀째 진행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직종, 직급 불문  

“직장 여성들에게 성희롱은 일상

더 이상 피해자 생겨선 안 돼”

22일 시작된 ‘2018분의 이어말하기’는 그간 여성들이 겪은 직장 내 성희롱과 성차별을 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작가, 마사지사, 금융권, 마트, 톨게이트 종사자 등 다양한 직업의 여성들이 23일 오전 직장 내 폭력 실태를 고발했다. 가해자들은 직장 상사, 후원자, 고객 등이었다. 여성들은 “직장 내 성폭력, 성차별을 뿌리 뽑아야 한다. 더 이상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이날 오전 9시경 이야기를 시작한 A씨는 작가로서 일하며 겪었던 성희롱 피해를 고발했다. A씨는 “한 성소수자 재단을 통해 중간 후원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후원자에게 어느 순간부터 개인적인 연락이 왔다”며 “일주일에 서너 차례 이상 연락을 하면서 이상형, 연애 기간 등 사적인 내용을 물어왔다. 하지만 권력 차이로 인해 불편하단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끙끙 앓던 A씨는 재단에게 이런 사실을 곧바로 알렸지만, 재단은 이미지 실추만 걱정했다고 했다. A씨는 “후원자는 자기 뜻대로 사적인 관계가 지속되지 않자 통화 도중 욕설을 하고 작업실로 사용하던 공간을 나가라고 했다”며 “재단으로부터 피해 보상이 아닌 사과를 요구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힘들게 만들어 놓은 성소수자 재단을 음해해서야 되겠느냐’는 말이었다”고 했다.

마사지 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한 여성은 “남성 고객들의 성희롱과 폭언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며 “이런 부분을 호소해도 돌아오는 말은 ‘남자들은 원래 음담패설을 자주 한다’ ‘네가 예뻐서 그렇다. 요령 있게 잘 대응해라’라는 대답뿐이었다”고 밝혔다. 이 여성은 “경찰에게 물어봤더니 영상 증거가 필요하다고 했다”며 “회사 규정상 케어룸에 들어갈 땐 휴대폰을 소지할 수 없다. 어느 날은 영상 증거를 위해 소형 카메라를 옷에 숨기고 일하러 갔다. 하지만 눈치를 챘는지 아무도 걸리지 않았다. 허벅지를 만져서 촬영하려고 하면 행동을 멈추는 고객도 있었다”고 말했다.

 

23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2018분 이어말하기’가 1340분째 진행되며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3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2018분 이어말하기’가 1340분째 진행되며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노동조합 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한 50대 여성은 “1987년도에 금융회사에 입사했는데 당시 신입사원인 나를 직장 상사가 끌어안곤 했다. 이런 스킨십은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를 평가하는 상사였기에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90년대 이후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면서 직장 내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성희롱과 성추행을 겪는지 피부로 느끼게 됐다”며 “대처 과정에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는 직장 내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이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미투 운동 이후 직장 내 문화가 조금씩 바뀌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직원이 성희롱 사실을 알렸더니 이례적으로 노조에 와서 어떻게 처리해야겠냐고 의뢰하더라. 이후 빠르게 사건이 처리됐다”고 말했다.

 

23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2018분 이어말하기’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부대행사로 진행되는 ‘대자보 광장:너에게 보내는 경고장’ 게시판을 시민들이 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3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2018분 이어말하기’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부대행사로 진행되는 ‘대자보 광장:너에게 보내는 경고장’ 게시판을 시민들이 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톨게이트 종사자 여성의 폭로도 이어졌다. 이 여성은 “톨게이트에서 일하는 수납원들은 보통 여성이다. 차가 지나가는 30초의 순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난다”며 “손을 건네면 손바닥을 긁는 손님도 있었다. 어떤 날은 한 손님이 아랫도리를 다 벗고 있어 수치심을 느꼈다. 뭐하시는 거냐고 했더니 “왜, 보고싶냐?”고 하더라. 알고 보니 주기적으로 그러는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도로교통공사 남성 관리자들이 회식 자리에서 양옆에 여성 수납원들을 한 명씩 앉혀서 술을 계속 먹이고 2차 3차에 데리고 다닌다”며 “여성 직원이 술을 따르는데 남자 상사가 팔꿈치로 가슴을 툭툭 쳐서 항의한 적도 있다.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이유로 이후의 회사생활이 너무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이날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를 외치며 피해자들을 응원하던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신입사원부터 경력 25년의 간부까지 여성들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은 일상다반사”라며 “민주노총이 접수한 고충 상담 중 가장 많은 유형이 성희롱 피해다. 직장 내 성희롱 대응 능력을 더욱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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