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이어말하기 첫 발언자 꽃마리씨

6세 때부터 일상에서 수차례 겪은

성폭력 피해드러내며 가해자들 고발

“우리는 피해자이며 생존자… 죄책감은

우리가 아니라 가해자들이 느껴야”

23일까지 1박 2일 간 릴레이 발언

 

22일 오전 9시 22분이 되자 서울 청계광장 한 가운데 마련된 발언대에 선 꽃마리(가명)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2일 오전 9시 22분이 되자 서울 청계광장 한 가운데 마련된 발언대에 선 꽃마리(가명)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모르는 아저씨가 삼촌 친구라고 다가왔고 6살 여자 아이가 성폭력을 당했다. 어린 여자아이에게 손 댄 사람은 또 있었다. 20대 삼촌도, 고등학생 사촌들도, 아버지의 직장 동료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꽃마리(가명·41)씨는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드러내며 “가해자는 잊어도 피해자들은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3월 22일 오전 9시 22분. 청계광장 한 가운데 마련된 발언대 뒷편에 설치된 TV화면에 ‘00:00’의 타이머가 작동되기 시작하자, 꽃마리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공개된 장소에서 미투(#Metoo·나도 말한다)를 외치는 일이 쉽진 않았지만,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또 다른 피해자들을 지지하기 위해, 가해자들을 규탄하고 경고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고 했다.

꽃마리씨가 선 자리는 2018분, 꼬박 33시간38분 동안 미투 운동에 동참하고 이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발언이 이어지는 장소다. 340여개의 여성·노동·시민단체와 400여명의 개인이 모여 출범한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더 많은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이어져 세상을 바꾸자는 취지에서 마련했다.

 

‘2018분 이어말하기’는 2018분(33시간 38분)을 상징하는 34명의 사람이 나와 각자가 가진 끈을 잇는 퍼포먼스로 시작한다. 34명은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공동대표단을 비롯해 장애 여성, 이주여성, 세대 별 여성 등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됐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8분 이어말하기’는 2018분(33시간 38분)을 상징하는 34명의 사람이 나와 각자가 가진 끈을 잇는 퍼포먼스로 시작한다. 34명은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공동대표단을 비롯해 장애 여성, 이주여성, 세대 별 여성 등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됐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처음 마이크를 잡은 꽃마리씨는 35년 전 자신에게 벌어졌던 일부터 피해 경험을 증언했다. 그는 “여름날 덥겠다고 내 팬티를 벗긴 그들을, 가슴과 보지를 만지고 도망간 남자아이를, 고등학교 주변에 나타나던 바바리맨을,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따라오던 스토커를, 마사지를 해주겠다며 내 몸을 주물렀던 천주교 수사를” 고발했다.

꽃마리씨는 성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치유해왔다고 했다. 35년 전 일이지만 여전히 그에겐 현재진형형인 폭력이었다. 꽃마리씨는 “나는 우리가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피해자이며 생존자다. 수없는 자살충동을 이겨낸 사람들”이라면서 “죄책감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가해자들) 느껴야 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에게 “저는 혼자라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제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여성단체(한국여성민우회)를 만나며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가해자를)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여러분들도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힘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용기있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 꽃마리씨의 손에는 검은 끈이 들려 있었다. 이어말하기의 시작을 알리며 등장한 34명에게 들려 있던 끈과 같은 것이었다. 사회를 맡은 한국여성민우회 나우 활동가는 “2018분(33시간38분)을 상징하는 34명이 들었던 검은 끈을 차례로 묶은 것처럼 발언자들의 목소리가 끈을 묶듯 연결돼 광장을 채우고 세상을 덮어 다른 세상을 만들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청계광장에서 발언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참석자들이 미투를 응원하는 손팻말을 들고 자리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쌀쌀한 날씨에도 청계광장에서 발언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참석자들이 미투를 응원하는 손팻말을 들고 자리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날 오전 꽃샘추위에도 50여명의 참가자들은 바닥에 앉아 발언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꽃마리씨에 이어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활동가 레티마이티씨가 외국여성들이 한국에서 겪는 성차별과 성폭력, 인종차별에 대해 증언했다. 그는 “이주여성은 불안정한 체류라는 상황은 물론이고 이주여성이기에 이중차별을 겪고 있다”며 “인종이 다르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고 피해받고 고통 당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발언대에 선 대학생 A(24)씨는 초등학교 시절 겪었던 성추행 피해를 증언했다. 그역시 “10년도 더 된 그 일을 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성추행을 당하고 일기장에 적었는데, 그것을 본 어머니가 일기장에서 그 내용을 지우고, 그 일도 잊으라고 했다. 제 손으로 글자를 지웠지만 머릿 속에선 그 일을 지울 수 없었다”며 “지난 3.8 세계여성의 날 열린 한국여성대회에서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겪은 일을 공개석상에서 말하는 것을 보고 용기 내 처음으로 말한다”고 했다. 어렵게 용기를 냈지만 피해 경험을 드러내는 일이 쉽지 않은 듯 그는 자주 한숨을 쉬고, 말을 멈춰야 했다. A씨가 어렵게 말을 이으며 “여자 친구들과 모이면 누구든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말을 한다. 우리에게 너무 일상인 일”이라며 “우리는 타인에 의해 그 기억을 지우고 살았어야 했다. 하지만 더이상 그러면 안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23일 오후 7시까지 이어지는 이번 행사는 현재 100여명의 발언자가 접수된 상태다. 미투 운동에 동참하거나 지지하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현장에서도 신청할 수 있다.

시민행동은 이어말하기 행사가 종료되는 23일 오후 7시부터는 ‘성차별·성폭력 끝장문화제’를 연다. 자세한 정보는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상황실 SNS 계정(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metooaction2018)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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