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사각지대 골프장

경기보조원 이씨는 오늘도 5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6시에 마스터실에서 배치시간을 배정받으려면 늦어도 5시 30분까지는 회사에 도착해야 한다. 회사에 도착한 이씨는 가운을 입고 근무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긴다.

물통(3㎏), 그린보수기, 흙주머니(4㎏, 내장객이 골프를 칠 때 훼손한 잔디 보수에 필요), 경기기록카드, 경기보조원 일지, 볼마크, 비오는 날엔 골프백을 덮을 커버(1㎏)까지 준비해야 한다. 그밖에도 볼펜, 라디오, 장갑 등 하나도 빼놓아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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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보조원들은 업무의 특성상 상시적 재해위험에 노출돼 있으나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산재보험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사진제공·전국여성노조)

마스터실에서 경기보조원을 배치하면서 순번을 부르면 자신의 순서에 맞춰 동코스 18홀, 서코스 18홀의 내장객 명단을 받아 골프백을 찾아 준비물을 카트에 싣고 각 코스에 나간다. 오늘 이씨는 동코스와 서코스를 모두 돌아야 한다. 2라운드 36홀을 모두 돌면 대개 저녁 8시가 넘는다.

성희롱 거부하면 불친절하다 찍히고

내장객 공 맞고도 자기돈으로 치료

건강검진·산재보험 혜택 받았으면

이씨는 티업시간(출발시간)에 맞춰 나온 내장객에게 인사한 후 내장객이 맡긴 물건(락카열쇠, 핸드폰, 시계, 지갑 등)을 받아 일지에 기록하고 보관한다. 내장객의 물품을 분실하면 자신이 물어야 하기 때문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우드와 아연채 14개 가량을 넣은 골프백을 맨 이씨의 어깨는 무겁지만 본격적인 업무는 이제부터다. 내장객에게 앞 팀과의 간격, 공이 떨어지면 좋은 위치 등 코스를 안내한 후엔 1홀 티그라운드(골프공을 티에 올려놓고 칠 수 있는 곳)에서 내장객이 친 공이 떨어지면 다음 두 번째 샷 하기 좋은 장소를 안내하는 것이 이씨의 역할이다.

내장객 3∼4인의 티샷이 끝나면 두 번째 샷부터 지형, 기압, 풍향, 풍속, 내장객의 골프채 비거리, 내장객의 스윙, 미스샷의 원인파악, 골프룰, 그린까지의 측정거리를 파악하여 그린에서의 볼 라이(공이 굴러가야 할 길)를 내장객에게 조언해야 한다.

헤어웨이(잔디를 공을 잘 칠 수 있도록 알맞게 깎아 놓은 곳)에서는 매 홀마다 흙주머니에 흙을 담고 다니면서 내장객이 골프를 친 후 훼손된 잔디를 보수한다. 또 내장객이 치고난 골프채를 닦는 것도 이씨의 일이다. 비러프(잔디가 긴 곳), 라프(숲이 무성하고 경사가 심한 곳), OB지역(숲이 우거진 오르막 내리막 지형으로 골프룰 벌타 있음) 등에 있는 볼을 찾아준다.

그린에 내장객의 볼이 떨어지면 볼 뒤에 마크를 하고 공을 닦아 놓는다. 공이 떨어질 때 패인 곳도 고쳐야 한다. 이렇게 해야 1홀이 끝난다.

경기보조원 7년차인 이씨는 근육과 관절통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그간 내장객이 친 공에 맞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업무 중 재해를 당해도 경기보조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알아서 치료해야 한다.

이처럼 격심한 노동강도와 재해에 노출된 것은 비단 이씨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기보조원들은 상시적으로 재해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55∼60㎏에 달하는 수동카트를 취급해야 하기 때문에 허리, 무릎, 발목, 어깨 등에 통증을 달고 산다. 경기보조원은 업무의 특성상 재해 빈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보호장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전국여성노조(위원장 최상림)와 노동과건강연대(회장 임상혁·주영수)가 지난 8월 한달동안 경기도 소재 골프장 2곳에서 일하는 83명의 여성경기보조원의 업무내용과 건강실태를 조사한 결과도 이러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7.4%가 입사 후 근육과 관절통증을 경험했고, 이중 66.7%가 병원치료를 했다. 경기보조원의 74%가 ‘업무중 재해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는데, 이 가운데 ‘타구사고’(76%)가 가장 많았다.

또 재해 후 74%가 ‘자비로 치료’했다고 답했다. 치료기간 동안 일을 하지 못해 입는 경제적 손실은 고사하고 크게 다친 경우는 해고의 위험도 발생한다.

근무중 농약 살포와 관련된 증상도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62%가 두통을, 51%가 현기증, 42%가 피부질환, 41%가 구토증상을 호소했다.

이와 함께 65%가 ‘생리가 불규칙하다’고 응답했으며, 60%가 입사 전에는 규칙적이었으나 입사 후 불규칙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업무중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86.4%가 ‘당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유형별로 보면 성적 언어가 일주일에 평균 20회, 신체접촉이 2.9회로 조사됐다. 또 내장객에 의한 폭언은 80.2%가 경험했고, 평균 월 2회 꼴로 당한다고 답했다.

이같은 조사 결과를 볼 때 내장객에 의한 성희롱이 심각할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이어서 더 문제다. 그러나 경기보조원들의 전언에 따르면 성희롱을 거부한 경기보조원들은 내장객에게 불친절하다는 항의를 받기 일쑤이고, 회사측은 이에 따른 조치로 해고하는 경우도 있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성희롱 예방교육 대상에서 제외될 뿐 아니라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상의 성희롱 관련 조항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응답자들은 가장 시급한 개선과제로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한 근로자성 인정’(74%)을 꼽았다. 즉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노동자로 인정받는 것이 노동기본권 보장의 전제조건임을 대다수 경기보조원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산재보험 가입’ ‘직장내 언어폭력 및 성폭력 금지’를 주문했다.

이에 대해 최상림 위원장은 “경기보조원은 급료지급방식이 일반노동자와는 다르게 고객에게 직접 받는 형식(캐디피)이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박지 못했다”며 “경기보조원들도 최소한의 노동기본권과 건강권을 보호받아야 하며, 특히 산재보험 적용과 안전보건교육 및 건강검진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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