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정치세력화의 또다른 방법

“여성들이 정치를 하려면 언론과 사귀는 법을 먼저 배워라. 너무 일만 열심히 하지 말고 자주 언론인들과 만나서 자신이 보이고 싶은 이미지를 갈고 닦아야 한다.”

프랑스 역사상 첫 여성 수상이 됐으나 1년도 채 못 채우고 도중하차한 에디트 크레송의 말이다. 그의 말은 여전히 여성이 소수이고 성차별적인 우리 정치 현실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부분의 여성정치인들이 남성정치인들에 비해 이미지 메이킹에 소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여성의원들이 이미지 메이킹의 중요성을 몰라서라기보다 그럴 만한 속사정이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여성의원실에 있는 한 보좌관에 의하면 “여성의원들이 이미지 메이킹을 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여성의원들이 사실 의정활동을 잘 해내기도 벅차다”면서 “그 이유는 대부분의 여성의원 밑에는 충분한 의회활동 경력이 있는 쓸만한 보좌진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보통 여성의원들은 정치생명이 짧다고들 생각하기 때문에 능력있는 보좌진이 오지 않으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다. 이는 여성의원들의 보좌진 교체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여성정치인들이 정치력을 발휘하거나 이미지 관리를 할 여력이 없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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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은 여성정치인들이 성장하기 위해선 일만 열심히 하지 말고 이제는 자신의 이미지를 갈고 닦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16대 국회 여성의원 당선 축하연.

“안하는게 아니라 여력없어 못한다”

사실 의원들의 이미지 메이킹을 담당하는 것은 보좌진의 몫이다. 실제로 여성의원 보좌진들에게 이미지 메이킹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어보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현재 여성의원들이 그마나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홈페이지나 의정활동 소식지 등이다.

의원들의 상황에 따라 이미지 메이킹에 대한 욕구도 달라진다. 여성계의 대표성이나 전문성을 인정받아 정치에 입문하게 된 전국구 의원보다는 한차례 치열한 경쟁을 치른 지역구 의원이 아무래도 이미지 메이킹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여성의원들 중에서 그래도 이미지 메이킹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사람은 박근혜, 추미애 의원 등이다. 이들은 여성의원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의원이기도 하다.

15대 국회에 출마했을 당시부터 ‘세탁소집 딸’로 영국 대처 수상의 이미지를 차용했던 추미애 의원은 민주당 최고의원 경선때도 ‘대통령의 딸’인 한나라당의 박근혜 의원과 자신을 대조하며 같은 전략을 사용했다. 그는 또 대처 수상이 그랬듯이 여성이라는 범주로 묶이길 거부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정책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는다. 추미애 의원 보좌진은 이런 전략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여성을 내세우는 것이 정치판에서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여성문제를 다루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고 자기 위치에서 남성의원들과 똑같이 경쟁해서 능력있는 의원으로 평가받겠다는 의도라고.

박근혜 의원도 여성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박 의원은 기본적으로 부모의 지지기반을 등에 업고 출발했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딸’의 이미지를 내걸고 있다. 의원실 한쪽 벽면에 부모의 사진을 걸어 놓은 것을 보면 스스로도 부모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여성의원 중에는 유일하게 대권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박 의원이 부모 후광에만 목을 매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보좌진의 말이다. 스스로 부족한 공부를 보충하고, 여성특위 활동을 하면서 여성단체들의 호주제폐지 청원 의원으로 나서는 등 여성문제에도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조기숙 교수는 두 사람의 이미지 메이킹에서 모두 문제점을 지적한다. 박근혜 의원은 여전히 자기만의 이미지보다는 부모 이미지에 의존해 있고 추미애 의원은 의식적으로 여성 정체성을 거부하는 것으로 비쳐진다는 점이다. 또 공통적으로 대중들은 두 사람의 외모에서 풍기는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선호하기도 한다.

당당히 여성 정체성 드러내야

정상을 지향하는 여성들 대부분은 여성의 정체성을 거부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에게 그들은 여전히 ‘여성’이다. 추 의원의 경우도 이번 취중발언 파문에서 나타나듯 자신이 아무리 거부해도 사람들은 그를 여성의원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영국의 대처 수상도 정책적으로는 대처리즘을 표방하며 ‘철의 여인’을 내세웠지만 미디어를 통해서는 가정적이고 성역할에 충실한 여성을 강조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조 교수는 기본적으로 이미지 메이킹은 겉모습이 아닌 총체적인 이미지를 보여줘야 하며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면에서 조 교수는 여성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냈고 여성정책에도 적극적이었던 전 아일랜드 대통령 메리 로빈슨을 긍정적인 여성정치인 상으로 꼽는다.

여성의원들은 당내에서 발언권도 약하고 당직도 얻기 어려울뿐더러 대권후보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희박하다. 여성정치인들이 정치생명을 연장하고 영향력을 키워나가기 위해선 좀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중요한 정치 사안이 있을 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성정치인들은 드물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없이 협상력을 배우고 명성을 얻기는 어렵다는 것.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정우영 사무총장은 “보수적인 우리 사회에서 여성정치인들이 튀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부정적으로 비치기 때문에 여성 정치인 스스로도 혹시 튀면 어쩌나 조심조심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여성 정치인은 여성다워야 한다, 너무 똑똑해서도 안된다는 이중 잣대가 엄연히 존재하는 정치풍토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기존 정치판에 끼어드는 것은 여전히 여성의원들의 몫이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거부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알려 나가는 여성정치인, 남성의원들과 마찬가지로 재선·중진을 거쳐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여성정치인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이김 정희 기자 jhle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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