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여성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 결과 다양한 답이 나왔다. “너무 어색하겠지만 어쩌겠는가. 그냥 참고 몸에 맞춰 살겠다.”(32세 회사원) “짜증나겠지만 좀 여성스러운 남자로 살지 않을까?”(29세 회사원·동성애자) “어떻게 남자들 속에 껴서 살겠나. 못 살지.”(47세 주부) “난 문제될 게 없을 것 같다. 여자랑 결혼해서도 잘 살 수 있을 거다.”(25세 학생·이성애자)
그런데 남성의 몸을 참지 못하고 몸의 형태를 여성으로 돌리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트랜스섹슈얼의 경우는 어찌 보면 보통 여성들보다 더 여성성이 강한 사람인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무엇이 여성적인 것인가’
도깨비방망이 이야기는 ‘과연 무엇이 여성인가’ ‘무엇이 여성적인 것인가’를 되묻게 해주는 좋은 예다.
성정체성과 성역할에 대해 연구해 온 많은 학자들은 사람의 ‘성’을 몇 가지 속성을 통해 나타내왔다. ‘염색체가 무엇인가’ ‘성기구조와 신체모양은 어떠한가’ ‘어느 두뇌가 발달했는가’ ‘사랑과 섹스의 지향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등이 그 구분기준이다.
흔히 성염색체 하면 XX와 XY만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XO, XXY, XYY…도 존재하며, 성기도 음경과 질 뿐 아니라 간성(양쪽 성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으로 태어나는 아기도 종종 있고 둘 다 가지고 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다양한 ‘성’의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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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적이고 생물학적인 특성만으로 성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신은 수리능력이 뛰어난가 언어능력이 뛰어난가, 적극적인 성격인가 수동적인 성격인가, 여성을 사랑하는가 남성을 사랑하는가, 어느 쪽 성에게도 성적매력을 느끼지 않는가 아니면 양쪽 다에게 느끼는가,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하는가 남성이라고 생각하는가, 중성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모르겠는가…
이렇게 다양한 개인의 특성을 조합으로 만들면 수도 없이 많은 ‘성’이 탄생할 수 있다. 김영옥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전임연구원은 “최근 학계의 연구들은 고정적이며 영구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섹스(sex:해부·생리학적 성)의 영역까지도 동요하고 부유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며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는 소수자에 대한 배려 뿐 아니라 남/여라는 이분법적인 사고틀 안에서 배제되어온 ‘또다른 정체성’에 주목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젠더(gender:사회적 성)의 이분법적 구분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연구자료들도 적지 않다. 미국 안보국 분석과에서 조사한 ‘성행동에 관한 CIA 보고서’에 의하면 인디아, 미얀마, 오만, 폴리네시아 등 다양한 사회 형태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남성들이 인정되어 왔고 잘 정의되어 왔고 높은 사회적 존경을 받는 역할을 맡아왔다. 보고서는 “만일 미국 사회에 지금처럼 강력한 사회적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미국에서 여성의태(gynemimiesis:남성의 여성복장착용)는 훨씬 더 보편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인디언 부족에서 인정받았던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3의 성’ 버디치(berdache)를 연구한 웬디 수잔 파커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무한히 나뉘어질 수 있는 성의 스펙트럼의 분산 속에서 오직 한 가지 또는 다른 한 편을 선택하도록 강요받고 있다”며 “버디치에 대한 이해는 인류가 성의 무지개가 펼쳐 보이는 아름다운 스펙트럼 속 그 어느 곳에 놓이게 되던지 간에 그 아름다움을 사랑할 줄 아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고추냐 조개냐’ 구분 문제있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노최 영숙 연구원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규정이 성역할 구분을 낳았고 그것은 곧 성차별을 가져왔다”며 “그 틀 안에서 자신의 몸과 성격과 욕구를 끼워 맞추느라 얼마나 답답하게 살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서울퀴어영화제 프로그래머 서동진씨는 <퀴어아카이브 Queer Arhive> 4월 프로젝트를 통해 트랜스젠더, 드랙퀸, 크로스드레서 등을 다룬 영화를 상영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복잡한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란 것이 굳이 꼭 두 개의 성별이 있어야 하는지 엉뚱하게 묻는 것일 따름입니다. 아니, 그 두 개의 성별이란 것이 그렇게 한결같은지, 분명한지 묻자는 것입니다.”
그의 질문이 엉뚱하고 황당한 것일까. 혹시 개인의 다양한 해부학적, 생리적, 지적, 심리적, 성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고추냐, 조개냐’ 두 단어로 성을 구분하는 우리의 관행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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