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수/상지대학교 인문사회대 부교수

올해에도 어김없이 반복이다. 우리 나라가 아열대 기후에 진입한 것 같다는 사람들의 주장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비와 굉장한 무더위가 반복 중이다. 사람들은 무더위를 피해 엄청난 ‘서울 엑소더스’를 감행하고 있다는 소식이며, 이 인파의 이동은 내가 사는 작은 도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가 사는 곳은 영동고속도로를 끼고 있는 강원도의 원주이다. 햇수로 8년째, 이제 제2의 고향이라 할 만한 곳이 되었다. 그런데 이 곳에서 보는 세상의 질서는 때론 참 다르다. 특히 휴가철의 교통상황이 그렇다. 이곳에서 서울까지는 고속버스로 정확하게 1시간 30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다. 그런데 서울에 사는 친구나 선후배들은 한결같이 이 곳을 5∼6시간이 걸리는 굉장히 먼 곳으로 기억한다. 그네들은 휴가철에만 이 곳을 지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피서철이 되면 어김없이 ‘서울 엑소더스’의 여파 때문에 지역에 사는 우리까지도 엄청난 교통난에 시달리게 된다. 고속도로도, 산자락의 계곡도, 땀흘리며 농사를 짓는 작은 마을의 농로까지도 많은 인파가 점령한다. 이렇게 인파와 교통난에 시달리면서도 이들이 탈출을 감행하는 것은 답답한 서울을 벗어나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의 끝자락이라도 느끼기 위함일 것이다.

지방에 사는 나는 이럴 때 참으로 유유자적이다. 인파가 북적댈 때에는 집에서 편안히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다가 돌아갈 길이 바빠 얼마 즐기지도 못하고 서둘러 피서객들이 서울을 향할 즈음이면 우리 가족은 수건과 반바지만 싸들고 치악산 구룡사 맑은 계곡으로 내닫는다.

해가 뉘엿 넘어갈 때까지 아무도 없는 계곡에 발 담그고, 책 몇 줄 읽고, 나무 향기 맡고 집으로 돌아오면 더위도 함께 달아나 버리고 없다. 엄청난 교통난 역시 이 곳에서는 항상 반대로 경험한다. 아침에 떠나 서울에 도착하는 길은 더 수월해지고 특히 명절에는 가득 밀려있는 반대차선을 보면서 신나게 서울로 달려갈 수 있기도 하다.

이렇게 지방에서 사는 즐거움을 남모르게 느끼고 있지만, 사람들은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눈치이다. 사실 매번 균형있는 지역발전을 외치지만 우리 사회에서 중앙과 지방의 문제는 남성과 여성의 거리만큼이나 멀고 바뀌기 힘든 문제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중앙에 사는 사람들은 피서철의 고통은 물론 일상적인 매연, 스트레스, 교통난에도 불구하고 그 곳을 벗어나지 않는다. 중앙에 집중되는 또 다른 혜택과 뚜렷하게 근거없는 자부심이 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남성들이 고된 업무와 스트레스를 하소연하면서도 마초적인 남성의 권위를 버리지 않음과 똑같다.

균형있는 지역발전은 피서철에 서울을 탈출하는 사람만큼 지역에 분산, 정착, 지원하면 가능할 것이고, 균형있는 성별 발전은 그 만큼의 남성들이 권위주의적 남성에서 탈출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더운 여름, 지방에서 여성으로 주변인으로 사는 즐거움을 곰삭이면서 그래도 아쉬운 균형있는 발전에 대해 한자락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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