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세계 다국적 기업들이 씨앗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조금만 유전자 변형을 해도 미래세대까지 로열티를 받아낼 수 있는 수익의 블루오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것이 기아해결의 방법이라고 말하지만,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씨앗산업은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시키고 더 많은 기아인구를 만들고 있다. 기업의 상술에서 씨앗을 지켜 식량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가배울토종씨앗포럼’이 마련됐다. 

 

 

강지연 여성학 연구 활동가
강지연 여성학 연구 활동가

여러 강줄기가 바다에서 만나 듯 토종씨앗운동에 나서게 된 여러 단체들은 각기 다른 경험들을 가지고 토종씨앗살림운동에서 만나게 됐다. 그들이 어떠한 계기와 경험 속에서 토종씨앗살리기운동에 나서게 되고 이 운동에서 만나게 됐는지를 보면 토종씨앗의 다양한 의미들을 알 수 있다. 토종씨앗살림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들은 토종씨드림, 전국여성농민회(전여농), 흙살림, 전국귀농운동본부, 가배울, 씨앗도서관 등이다. 그들이 어떻게 이 운동에 나서게 됐는지 그 이야기로 토종씨앗살림 포럼 마지막회를 시작하고 토종씨앗의 의의가 무엇인지, 어떻게 토종씨앗을 살릴 것인지로 마무리했다.

토종씨드림의 초대 회장인 안완식 박사는 1985년 농촌진흥청에서 유전자원 연구와 종자 연구 분야의 책임자로 토종자원의 수집과 연구를 30여년 해오면서 우리나라 토종종자의 급속한 사라짐을 목격했다. 퇴임 후 2008년 토종종자 씨드림을 결성했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이뤄진 ‘토종 유전자원 수집단’ 활동으로 토종씨앗운동의 기초를 세운다. 토종씨드림의 현 대표인 변현단씨는 공동체 농장을 운영하다 농업진흥청에서 신품종 옥수수 종자를 주어 심었고 다음해 씨앗을 받아 심었는데 농사를 망치게 됐다고 한다. F1 종자로 당해에만 수확이 좋고 매해 새로 사서 심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종자의 문제를 깨닫고 토종씨앗운동에 나서게 됐다.

전여농은 2004년 비아 깜페시나(농민의 길)라는 국제 소농조직의 종다양성 위원회에서 연대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때 토종종자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고 2007년 토종씨앗운동을 시작한다. 인도, 필리핀 등에서는 이미 GMO종자가 다국적기업으로부터 들어와 재배되고 있었는데 GMO 작물을 위해 사용된 제초제의 피해, 종자 가격의 상승 등 여러 문제들이 발생되고 있었다. 전여농은 토종씨앗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대대로 씨앗을 심고 거두는 역할들을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여성농민단체로서 적극적으로 이 운동을 추진하게 된다.

흙살림은 유기농업과 전통농업을 연구하다 토종씨앗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05년 농민들의 전통농업을 연구하기 위해 전통농업위원회를 설립했다. 농민들의 경험을 알아보기 위해 조사를 했는데 옛날 농사법은 거의 사라졌고 그래도 토종씨앗은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2007년 토종씨앗 조사와 연구를 시작하고 2011년 토종연구소를 설립했다.

문화단체로 설립된 가배울은 해남, 강진 문화 답사를 하다 강진의 옛 손맛 음식으로 2013년 꾸러미를 시작했다. 이 음식들이 토종작물들로 만들어졌으며 동네 아짐들이 토종농사를 짓는 마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토종농사가 농경사회 이래 여성들의 농사문화, 공동체 문화, 음식문화의 바탕이라는 인식으로 토종씨앗운동에 나서게 됐다.

씨앗도서관은 2015년 홍성의 씨앗도서관을 시작으로 안양, 광명, 수원, 포항, 공주, 춘천, 서울 상일동 등에 있는데 주로 도시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토종씨앗의 지역 지킴이로서 지역 토종 작물의 씨앗을 찾아내고 지키는 일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도시 텃밭에 필요한 종자를 빌려주고 수확한 씨앗을 다시 반납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이렇게 우리나라 토종종자의 수집과 보존활동을 하면서 사라져가는 토종작물의 현실로부터, 당해만 수확이 좋고 매년 사서 써야 하는 F1 종자의 문제로부터, 먼저 종자 문제를 겪고 있던 국가들과의 연대로부터, 전통농업으로부터, 여성들의 토종농사문화에 대한 재인식으로부터, 각 지역의 도시텃밭으로부터, 토종씨앗운동은 시작돼 10년의 역사를 맞았다.

토종씨앗의 의의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 생물 다양성의 급속한 감소다. 세계 작물종은 75%가 멸종했고 미국은 95%가 사라졌으며 한국도 3% 정도 남아있다고 한다. 쌀의 경우 1451품종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는 40여종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단작은 병충해가 왔을 때 농사를 거의 망치게 되는 문제가 있다. 환경과 기후의 변화 속에서 종의 다양성이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지켜줄 수 있다.

다음으로 토종씨앗은 종자 주권과 식량 주권을 지킬 수 있는 교두보다. 현재 3개의 다국적 종자회사가 인수·합병돼 세계 종자 시장의 71%를 지배하고 있고 종자의 품종과 가격을 조정하고 있다. 한국도 IMF 때 몬산토, 신젠타, 노바티스 등 다국적 회사가 종자회사를 인수해 한국 종자 시장의 70%를 점령했다. 우리나라 종자이지만 몬산토에서 판매하는 청양고추 씨앗도 로열티를 내야한다. 또한 현재의 신품종 씨앗들은 당해에는 수확이 좋지만 다음해에는 쭉정이가 되는 F1종자이거나 아예 씨앗을 받을 수 없는 터미네이터 종자다. 농민들은 매해 씨앗을 사서 심어야하며 기업들의 시장 독점으로 씨앗의 가격 또한 상승하고 있다. 농업을 시작한 역사 이래로 농민들은 씨앗을 받아 농사를 지어왔지만 이제 농민들은 종자에 대한 주권을 잃어버린 것이다. GMO의 위험성으로부터,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지킬 수 있는 식량주권의 확보도 토종씨앗으로부터 시작된다. 토종씨앗운동은 농업에서 부차적인 존재로 인식돼온 여성농민의 역할에 대한 의미 있는 재발견이기도 하다.

이러한 토종씨앗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제 토종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여성들은 70~80대가 가장 많고 적어도 60대다. 토종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할머니들이 안 계시면 씨앗도 사라져버리고 만다. 토종씨앗을 수집하고 종자은행에 보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토종씨앗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끊임없이 재배하는 것이다. 씨앗이 기후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살아남고 스스로 진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농부가 농사를 짓고 소비자도 함께 소비를 해 주어야 가능하다. 우리보다 먼저 토종씨앗살리기에 나선 일본은 소비자들이 힘을 보태기 위해 일정 금액을 기탁하고 콩, 또는 콩 가공품을 받는 콩밭 트러스트 운동을 했다.

토종씨앗을 살리기 위해 농민들이 토종씨앗으로 매해 농사를 짓는 것이 중요하며 도시텃밭의 도시농부들이 자신들의 먹거리로 토종씨앗으로 심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토종농사를 지원하고 토종작물을 소비하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함께 해야 토종씨앗살리기 운동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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