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옥, 김마리아, 남자현, 유관순, 이혜련, 정정화, 최복순 등 여성독립운동가들을 표현한 인물화. 부산지역의 고등학생 김다연, 김서연, 김서영, 박민아, 박설빈, 박지연, 성미현, 윤선미, 정유경 씨 등이 작업에 참여했다.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권기옥, 김마리아, 남자현, 유관순, 이혜련, 정정화, 최복순 등 여성독립운동가들을 표현한 인물화. 부산지역의 고등학생 김다연, 김서연, 김서영, 박민아, 박설빈, 박지연, 성미현, 윤선미, 정유경 씨 등이 작업에 참여했다.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보훈처 수형기록·명부 조사한다지만...

여성은 이름도 제대로 없던 시대

공식 증거 자료 조사만으로 부족

당시 여성의 삶에 대한 이해 필요

 

3·1독립운동은 남성의 전유물일까. 올해로 99주년을 맞이하지만 여성독립운동가의 존재는 극소수에 머물고 있다. 2018년 1월 기준 정부로부터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 1만4830명 중 여성은 296명(1.99%)에 불과하다. 일본의 제국주의에 맞서면서 평화를 꿈꿨던 여성들은 왜 보이지 않는걸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독립운동=남성’이라는 등식을 깨고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연말부터 여성독립운동가와 의병 발굴을 위한 밑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3·1 독립만세운동뿐 아니라 제주 해녀 항일운동, 광주 학생운동 등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약이 두드러진 활동을 집중 조사하고 △남성 독립유공자의 제적원부를 전수 조사해 여성의 인명을 밝혀내 독립운동 기여나 활약상을 역추적하고, △일제강점기 판결문, 범죄인 명부, 수형 기록을 포함한 자료의 전수 조사 △구한말 일제에 맞서 싸운 의병을 찾는 노력도 강화된다. 심사기준안 연구를 지난해 말까지 실시했고 이르면 4월 중에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여성의 독립운동을 규명하려면 조사방법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은 “서훈 대상자를 찾는 것은 독립운동을 증명할 자료를 찾는 작업인데, 당시 여성은 이름조차 제대로 없고 호적에도 올라가지 못했던 만큼 자료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크다”면서 “여성의 활동 일대기를 파악할 수 있는 삶의 궤적을 찾는데 꾸준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초기에 발굴된 여성독립유공자 대다수는 독립운동가 발굴 과정에서 단체와 연관된 인물이거나 기존 남녀가 동일하게 적용되었던 독립운동가 기준에 부합된 인물이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박환 수원대학교 사학과 교수도 “여성의 존재는 문서나 문헌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서 “포상하려면 기록을 중심으로 해야 하는데 여성 활동은 기록에 잘 안 나타나기에 주변의 방증 기록이나 구술 작업을 통해 심층적인 접근과 분석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독립운동의 개념 확대돼야

독립운동의 개념도 보다 확장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남녀의 역할 차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여성이 했던 역할을 보조적이고 하찮은 일로 여기는 성차별적 인식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이러한 고민없이 현재의 기준에서 조사만 확대해서는 일선의 독립운동가를 뒤에서 묵묵히 도왔던 여성들은 앞으로도 포함될 수가 없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을 위해 떠나는 자식의 옷을 기운 어머니’를 언급했던 것은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인식 전환을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난 1월 말 관련 토론회에서 말하기도 했다.

박환 교수는 “지금까지는 두드러진 활동이나 무장투쟁에 주목했던 것이 사실이고, 대통령 표창인 수감 기준 3개월 이하의 여성들도 많다”면서 “예를 들어 가게나 여관, 한약방 등을 운영하면서 독립군을 도왔을 수 있고, 간호를 하거나 의복을 만들고 밥을 제공하는 등의 활동도 있을 것이다. 충분히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여학생이 당시 독립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나 유관순 등 극히 일부만 알려져 있다”며 여성 특유의 활동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근대여성사 연구자인 신영숙 여성독립운동가기념사업회 기획위원장은 독립유공자의 가족 관계부터 접근해 추적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나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경우 참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앞서 말한 차리석의 아내의 경우에 대해서는 “당원증이라는 증거뿐만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 독립운동을 한 남편과 자식들을 먹여살리는 살림을 산 여성으로서 충분히 독립운동에 기여했다고 봐야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같은 논의의 근거 자료가 될 여성 독립운동 연구 자체가 크게 부족한 상황이어서 학계와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게 연구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와 함께 “독립운동의 새로운 기준 마련을 위해 일반 국민의 눈높이와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져야 하고, 정부가 다양한 의견을 청취할 필요가 있다”고 박 교수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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