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이대 의대생 동아리 주최로

‘Feminism × Medicine’ 세미나 열려

 

서울 강남의 한 대학병원에 다니는 5년 차 간호사 A씨에게 ‘미투’ 운동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그는 병원장이나 병원 임원들이 참석하는 술자리엔 절대로 가지 않는다며 “그들은 늘 룸살롱에서 ‘블루스 타임’을 갖는다. 한 후배는 멋모르고 따라갔다가 온갖 성추행과 성희롱을 겪고 난 후 퇴사하겠다며 펑펑 운 적 있다”고 말했다. 한 전문의는 단톡방에 간호사가 의사와 성관계를 하는 내용의 성인만화를 올렸으나, “실수”라고만 말했을 뿐 사과하지 않았다. 한 교수는 “XXX호 입원 (10대 여성) 환자가 늘씬하고, 피부도 보들보들하더라. 잡아먹고 싶다” “이 (임산부) 환자는 뚱뚱하고 여드름도 있어서 뭘 해주기가 싫다”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병원도, 의과대학도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보건의료 종사자와 예비 의료인들은 이미 학교와 일터에서 겪은 성폭력을 폭로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3시부터 이화여대에서 열린 ‘Feminism × Medicine’ 세미나에 참석한 여성들은 ‘미투’(#Me_Too) ‘#의료계_내_성차별’ 포스트잇 운동에 동참하고 서로 연대했다. 이화의대·의전원 페미니즘 동아리 WTH가 마련한 행사다. 

 

지난 10일 오후 3시부터 이화여대에서 열린 ‘Feminism × Medicine’ 세미나 현장. ⓒ이세아 기자
지난 10일 오후 3시부터 이화여대에서 열린 ‘Feminism × Medicine’ 세미나 현장. ⓒ이세아 기자

“최근 한 레지던트가 학생들 MT에 따라가서 술을 마신 상태에서 후배들을 만지고 나중엔 여자 방에 들어가 속옷을 몰래 촬영해 학내에서 파문이 일었다.”

“모 대학병원 교수는 성추행을 일삼기로 유명하다. 이 교수가 친구에게 “난 너만 보면 거기가 서, 꼴려”라는 말을 대놓고 했다.”

“병원장과 회식하는 날, 중요한 자리라며 간호사들이 동행하게 했다. 노래방에서 간호사를 병원장 옆에 앉히고 술 따르고 같이 춤추게 했다.”

“학생 때 외과 레지던트들과 회식을 했다. 레지던트들이 여학생들 손을 잡고 데리고 나가서 블루스를 췄다.”

“어떤 동아리 선배들은 모임 때마다 “좋은 곳”이라며 후배들을 룸살롱에 데려간다. 동아리 회장이 이에 반대하자, 선배들이 동아리 지원을 끊었다. 동아리원들은 룸살롱에 다니는 사람들이 속한 다른 동아리로 옮겼다.”

“선배가 술자리에서 옆에 앉게 하더니 팔을 주무르고 손을 자신의 입 쪽으로 가져가며 입술을 내밀었다.”

“모 정형외과 교수가 회식 때마다 여학생을 자기 무릎 위에 앉히고 술 먹었다.”

“한 교수는 성추행은 여성이 옷차림을 주의하지 않아서 일어난다며 “견물생심”이라고 했다.”

“한 남성 교수는 “여학생들은 담배 피우지 마세요. 아이 낳기 전에는... 그리고 남학생들은 담배 피우는 여자 만나지 마세요. 키스할 때 얼마나 더러운 데에 입술을 박고 있는지도 모르지?”라고 했다.”

“저학년 때부터 “여자 의사는 남자 의사 만나서 결혼하는 게 최고야. 남자 의사는 여자 의사와 결혼하는 게 최악이고”라는 얘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어느 병원 모 과는 ‘전공의 할 사람 좀 보내달라’ 면서 ‘우리는 당직실 같이 쓰기 불편해서 여자는 안 뽑는다’고 한다.”

“여자가 정형외과나 신경외과 하려고 하면 “여자가 그 험한 과를 어떻게 하려고 해?” 하면서 아예 T.O. 배정을 하지 않는다. 한 번은 정형외과 지원하겠다는 여자 인턴이 “자궁을 떼고 오면 뽑아주시겠습니까?”라고 해서 간신히 뽑혔다.”

“어떤 과는 전공의 10명을 뽑는데, 상위 점수 10등까지 모조리 여자였다. 여자로만 뽑을 수 없다며 5등에서 잘랐다.”

“학생 때부터 “여자는 소아과지”, “여자는 편한 과 가서 시집 잘 가면 되지” 라는 얘길 귀 따갑게 들었다.”

“교수님 이르시길, “같은 능력의 여자 의사랑 남자 의사가 있으면 당연히 남자 뽑죠. 여자 의사는 일을 열심히 안 하고 애 보러 칼퇴근하니까.”

“결혼한 여자 의사가 회식에 불참하거나 정시 퇴근한다는 이유로 “이래서 여자는 키워봤자 소용없어”라고 한다.”

 

지난 10일 오후 3시부터 이화여대에서 열린 ‘Feminism × Medicine’ 세미나 현장.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지난 10일 오후 3시부터 이화여대에서 열린 ‘Feminism × Medicine’ 세미나 현장.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미투’ 고발 속 의료계는 여성혐오에 찌든 세계이자, 권위를 악용한 성추행과 성희롱이 공공연히 벌어지는 곳이다. ‘메디게이트’, ‘넥스트 메디신’ 등 온라인 (예비)의료인 커뮤니티에선 요즘도 여성 간호사나 환자의 외모를 품평하거나 희화화하는 게시물, 성차별적인 표현을 담은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미나에 참석한 여러 의료인들은 “그런 사람들이 동료이고 환자를 진료한다니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의대나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성폭력·성희롱 사건은 대개 은폐된다.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의료계 특성상 자칫 고발자가 불이익을 받거나 ‘무고’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특히 교수나 병원 고위 관계자 등이 가해자인 경우, 기관 차원에서 조용히 무마하려 하거나 징계를 내린 후에도 가해자의 재입학이나 복직을 허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2011년 ‘고려대 의대생 집단 성추행 사건’ 가해자들은 징역 2년 6개월, 1년 6개월 등을 선고받아 출교 처분됐다. 하지만 이들 중 2명은 다른 의대에 재입학했다. ‘인하대 의대 21명 집단 성희롱 사건’ 가해자들도 무기정학, 유기정학, 근신, 사회봉사 등 징계를 받았으나, 정학 처분을 받은 7명이 징계처분무효소송을 냈고, 효력정지가처분이 받아들여져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공간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 창원 경상대병원 부교수는 간호사를 폭행·성추행해 정직 3개월 처분을 받고도 복귀해 현재 정교수로 승진했다. 국립경찰병원 모 의사는 성추행으로 벌금 500만원에 감봉 3개월 처분을 받았지만, 기간제 의사로 다시 채용돼 피해자와 한 공간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국여자의사회와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지난해 9월 정기 간담회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이보라 녹색병원 호흡기내과 과장·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도 “이게 현실이다. 강남 모 성형외과 의사들은 아무렇지 않게 마취 상태의 환자의 몸을 만지고 외모를 품평한다. 일부 남자 의대생들은 임신부들을 두고 “뚱뚱하고 돼지 같다”며 욕하기도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도 "의대 재학시절, 어느 교수의 수업 중 여자 속살을 마치 한 겹씩 벗기는 양 설명하는 일도 있었다. 비판 여론이 일면서 그 교수의 강의는 중단했지만..."라고 하며,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에도 문제 제기하는 사람이 ‘모난 돌’로 취급받는 게 의료계”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해결책은 “페미니즘 교육”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과장은 “최소한의 인성 교육 차원에서라도 의대생들에게 꼭 페미니즘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강한 외부의 압박 없이는 보수적인 의대도 의료계가 쉽사리 변화하기 힘들 듯하다”며 “그나마 의대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개선을 도모한다는 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윤 과장도 참석자들에게 “여러 후배들이 페미니즘을 통해 넓고 민감한 시야를 갖고 더 큰 부조리에 저항하고 행동하길 바란다. 여러분은 그럴 힘이 있다”고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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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전공의는 때리면 우니까 안 받아” “여학생은 출산 전 담배 안돼” 의료계도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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