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변호사의 이러시면 안됩니다 –9]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시쳇말로, 이게 실화인지 묻고 싶어질 정도였다. 이게 정말 성희롱이 아니라고?

국가인권위원회의 2014년 결정례 한 가지를 보자(14진정0417600). 진정의 요지는 두 가지 사실관계로 정리된다. 하나는 피진정인이 회식모임 2차 자리였던 노래방에서 진정인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피진정인이 진정인과 함께 참석했던 기관연수 중 단체사진을 찍을 때마다 옆으로 오라고 하며 진정인의 팔, 어깨, 허리 등을 잡은 적이 있었다는 것. 전자는 성희롱으로 인정되었지만, 후자에 대해서 인권위는 성희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피진정인이 진정인의 팔, 어깨, 허리 등을 수차례 잡은 사실 자체는 인정하였으면서도 말이다.

인권위는 이렇게 판단했다. 피진정인이 기관연수 중 사진촬영 시 진정인의 팔, 어깨, 허리 등을 수차례 잡아당긴 부분은, 기관연수를 떠나기 직전 노래방에서 있었던 피진정인의 성적 언동(진정인의 엉덩이를 쓰다듬은 것)으로 인하여 심리적으로 매우 불편한 상태의 진정인이 이 같은 예기치 못한 피진정인의 신체접촉으로 인해 불쾌감을 심하게 느꼈을 수 있다. 더구나 피진정인이 이러한 진정인의 심리상태까지 면밀히 고려하지 못한 점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이고 합리적인 여성의 관점에서 볼 때 성적 함의가 있는 성적 언동으로까지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가? 바로 이것이 인권위의 결정이다.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자.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면서 팔이나 어깨, 허리를 수차례 잡아당긴 행동이 정말 성희롱이 아니라고 하자. 그러면 이는 성희롱이 아니므로, 사람들에게 ‘이렇게 행동해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라고 권장할 만한 행동에 해당할 수 있는가? ‘사진을 같이 찍기 위해서 옆에 있는 여성의 팔이나 어깨, 허리를 잡아당겨도 성희롱이 절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니 괜찮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고? 진짜로?

어떤 말이나 행동이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유권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비록 그 말이나 행동을 권장하거나 용인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그 말이나 행동을 해도 무방하다고 사실상 승인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더구나 성희롱은 그 법률상의 요건만으로는 어떤 말이나 행동이 이에 해당하는지를 칼로 무 베듯 명확하게 판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왕왕 있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권위적 기관의 결정 선례는 매우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특정한 말이나 행동에 대한 성희롱 여부 판단에 있어서 인권위는 이러한 점을 깊이 고려하고 신중하게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체 주권’이라는 말이 법률적 용어인 것도 엄밀한 학술적 용어인 것도 아니지만, 그 말의 의미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거니와 그 취지에도 충분히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다. 나의 몸에 대한 권리는 오롯이 나에게 있는 바, 그 주인된 권리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함부로 침해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뜻이다. 어느 누구일지라도 나의 허락이 없는 한 함부로 내 몸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인권’이니 뭐니 하는 거창한 소리를 늘어놓지 않더라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 만한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연인이나 부부 간에도 ‘신체 주권’은 존중되어야 할 것일진대, 하물며 업무상 관계에서라면 이는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이와 같은 당연한 원칙에도 불구하고 팔이나 어깨, 허리를 잡아당긴 행위가 성희롱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이유야 어쨌건 누군가의 ‘신체 주권’은 이미 침해된 상태가 아닌가?

법원이 성폭력범죄로서의 강제추행죄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세간의 관점보다는 훨씬 더 엄격한 기준을 설정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범죄 인정 범위를 넓힘으로써 처벌 일변도로 나아가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며 국가형벌권은 필요최소한도에서 행사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손목을 잡은 행위만으로는 강제추행죄 성립은 현재 인정되지 않고 있는데, 이와 같은 대법원 판례에는 이러한 고민이 깔려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성희롱의 경우는 다르다. 형사범죄가 아니므로 국가형벌권 발동이 과다해질 것을 염려할 필요도 없다. 책임 범위가 넓어질 것을 우려하여 성적 모욕감을 줄 수 있는 성적 언동이라고 생각됨에도 이를 성희롱이라 하지 않는다는 것도 매우 기이하다. 논리상, 어떤 행동이 강제추행죄에는 이르지 않더라도 성희롱에는 해당할 수 있다. 그러니, 법원이 인정하는 강제추행죄가 아니기 때문에 성희롱에도 해당될 수 없다는 논리도 성립하지 않는다. 상식에 입각해서 규제될 필요가 있는 성적 언동이라면 성희롱으로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백보를 양보해서 생각해 보자. 팔이나 어깨를 동의 없이 함부로 잡았다는 것도 어떻게 보든 이상하기는 매한가지이지만, 어쨌거나 팔이나 어깨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좋다. 사안의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서는 성희롱으로 평가되기 어려울 수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허리를 만지면서 잡아끄는 행위가 성희롱이 아니라고? 일반적이고 합리적인 여성의 관점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불쾌감을 주는 행동에는 이르지 않는다고? 정말 그게 사실이라면 당장 오늘부터 필자도 누군가를 가까이 오게 해야 할 때 허리춤부터 잡아끌어야겠다. 뭐 어떤가? 일반적이고 합리적인 여성들은 성적 굴욕감이나 불쾌감을 느끼지도 않는다는 데 말이다.

누군가의 ‘신체 주권’을 침해한 행위라면 이는 일단 성희롱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다만, 구체적이고 상세한 전후 맥락과 경위 등에 따라서는 성희롱으로 인정하기에 부적절한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한하여 개별적으로 그 사유를 자세히 밝혀주면서 성희롱에 해당됨을 부인해 주면 족하지 않을까. 향후 유사한 사안이 진정 접수될 때에는 합리적인 상식과 경험칙에 보다 부합하는 인권위의 판단이 내려지게 되기를 기대한다. 국가인권위원회, 이러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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