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Wide Women(WWW)은 세계 각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연재 첫 순서로 베트남 여성의 소식을 전합니다. 

 

베트남에도 고부갈등이 있을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어머니는 자신의 취향에 맞게 신혼집의 인테리어를 바꾸어 놓는다. 자신과 부인을 존중해달라는 아들의 부탁에 어머니는 갑자기 나타난 여자에게 곱게 키운 아들을 뺏겼다며 가슴을 치고 오열한다.

 현재 베트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인 ‘쏭 쭝 버이 메 쫑(Sống chung với mẹ chồng)’의 한 장면이다. 직역하자면 ‘남편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어요’ 라는 의미인데 주인공이 예기치 못하게 시어머니와 한집에 살게 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현실감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악독한 시어머니와 온순한 며느리, 그리고 그 가운데 낀 무기력한 아들이 등장해서 갈등을 빚는 내용은 한국의 아침에 자주 등장하는 드라마의 줄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극 중에서 시어머니가 아들 내외를 향해 내뱉는 대사 또한 이와 비슷하다.

‘어디서 굴러들어왔는지 모르는’ 며느리는 ‘내 모든 것을 바쳐 최고로 키워 낸 아들을’ 뺏어 간 괘씸한 여자이고 따라서 ‘새로운 여자를 만나면 그만’인 존재에 불과하다. 손자를 낳아주지 못하는 며느리가 못마땅한 시어머니는 아들이 ‘세상에 한 명뿐인 엄마’의 뜻에 따라 ‘이 애 아니면 다른 애’로 대체할 수 있는 며느리와 헤어질 것을 종용한다. 결국 고된 시집살이에 지친 며느리가 떠나가고 시어머니의 마음에 드는 새 며느리가 들어왔지만 완벽한 현모양처인 줄로만 알았던 그녀가 결혼 후 돌변해 폭언과 기행을 일삼는 바람에 구관이 명관이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 주요 줄거리이다.

 

베트남 드라마 ‘쏭 쭝 버이 메 쫑’의 한 장면 ⓒ유튜브 영상 캡처
베트남 드라마 ‘쏭 쭝 버이 메 쫑’의 한 장면 ⓒ유튜브 영상 캡처

고부갈등을 다룬 드라마 ‘쏭 쭝 버이 메 쫑’, 베트남 내에서 폭발적인 인기 끌어

소위 말하는 막장임이 분명한 이 드라마에 많은 사람이 열광한 이유는 그것이 현재의 베트남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게 이어지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당 드라마는 방영 내내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2017년 베트남 구글 검색어 3위에 오르기도 했다. 드라마가 종영한 지 6개월이 넘은 현재까지 인터넷에는 드라마에 대한 공감과 분노의 글이 꾸준히 오르내린다. 과연 이 드라마의 어떤 점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사실 베트남에서의 고부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집살이로 인한 고부간의 마찰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시부모와 며느리가 다툼 끝에 상대를 살해하는 뉴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유명 일간지의 독자 상담 코너에는 시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토로하는 며느리들의 글이 넘쳐난다. 시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이 며느리의 도리라는 이들과 결혼은 부부가 행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의견이 인터넷 안과 밖에서 끊임없이 부딪힌다. 순종과 복종을 미덕으로 알던 시부모 세대와 자의식을 가지고 성장한 며느리 세대가 가치관의 간극을 메우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뗏(tết:베트남의 구정 명절)을 앞두고 명절 음식 반쯩(bánh chưng:찹쌀떡 만두)을 판매하고 있는 모습. ⓒ송수산 여성신문 글로벌기자단
뗏(tết:베트남의 구정 명절)을 앞두고 명절 음식 반쯩(bánh chưng:찹쌀떡 만두)을 판매하고 있는 모습. ⓒ송수산 여성신문 글로벌기자단

유교문화와 전쟁의 영향이 결합한 베트남의 가부장성

실제로 호찌민에서 만나 본 젊은 여성 가운데 결혼 후 겪게 될 시부모님과의 관계에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호찌민 내 명문대학교를 졸업한 A의 경우 오랜 시간 교제했던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시집살이에 대한 걱정과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결혼을 미루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결혼 후 시댁과의 관계에서 희생과 양보를 강요당한다며 가능하다면 결혼을 최대한 늦추고 싶다고 답했다. 또 다른 여성 B의 경우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에게 시부모님과의 합가는 절대 불가하다고 확답을 받았다며 결혼이라는 것은 부부 사이의 약속일 뿐 시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선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들 외에도 고부 갈등을 비롯한 가부장적 관습을 이유로 외국인(서양인)과의 결혼을 희망하는 여성들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집안마다 가풍이 다르고 거주지나 환경에 따라 인식이 달라진다는 것을 전제하더라도 많은 여성들은 결혼 생활에서 부딪히는 가부장성에 불만과 피로감을 느끼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남성과 여성, 그리고 노인과 어린아이가 동등하게 평등한 것이 사회주의의 미덕이라고 믿고 있는 이들은 이처럼 베트남 가정에 존재하는 가부장성에 대해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그 원인을 아시아 문화의 한계,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서 찾는다. 남성이 귀한 대접을 받는 유교 문화에 전쟁에서 많은 남성이 전사해야 했던 환경적 요인이 결합되어 지금의 가부장제를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밀레니얼 세대, 가부장제의 부자연성 인식하기 시작

한 가지 고무적인 현상은 밀레니얼 세대(8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가 지향하는 가치관의 변화이다. 결혼한 지 1년 남짓 되었다는 여성 C의 경우 현재 남편과 함께 호찌민 시내의 친정 부모님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결혼 생활에서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역할을 원한다면 여성들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결혼으로 인해 고충을 겪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여성들 스스로 결혼이 남편과 자신이 동등하게 협력하는 관계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지 돌아볼 것을 지적했다. 결혼을 앞둔 남성 D 역시 결혼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자기 또래의 젊은이 중 부인이 어머니와 가깝게 지낼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자신과 여자 친구가 결혼을 하는데 부모님에 대한 고민이 왜 등장해야 하는지 반문한 그는 결혼 후에도 맞벌이를 하는 만큼 결혼 생활에서 부인을 존중하며 동등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호찌민에서 만나 본 젊은이들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보고 듣고 겪어 온 가부장성이 부자연스러운 것이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결혼이라는 것이 동등하고 독립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가정이란 남편이나 부인 일방의 희생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베트남 최대 명절인 뗏(tết:베트남의 구정 명절)을 앞두고 남편의 가족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을 만나겠다는 여성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여성들의 차지였던 음식 장만이 남성들의 참여나 구매를 통해 해결하는 방식으로 변화되는 모습도 보인다.

베트남 젊은이들의 이런 진취성이 오랜 세월 굳어진 가부장성과 고부갈등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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