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성폭력 문제는

영화계에도 비일비재

‘나도 당했다’ 넘어

‘당하지 않겠다’로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을 폭로한 후 성폭력 근절을 외치는 각계각층 여성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 ‘미투(#MeToo)’ 물결이 뜨겁다. 미투 캠페인은 미국 할리우드 여성 영화인들이 자신들이 당한 성폭력 사건을 폭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런데 한국은 사실상 2016년부터 미투 운동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단과 영화계 등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폭로가 이어졌고, 이어 문화 예술계에 만연한 성폭력을 뿌리 뽑자는 성폭력 근절 운동이 시작됐다. 법조계만이 아니다. 영화계에서도 성희롱과 성추행은 비일비재하다. 문화 예술계는 좀 더 진보적일 거라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이 사회의 공기다. 

어느 영화제 뒤풀이에서 있었던 일이다. 심사위원이었던 모 유명 중견감독이 자리한 노래방이었다. 술 취한 감독은 여성 피디와 블루스를 추고 있었다. 일명 블루스 타임이었다. 나 역시 떠밀려 감독과 원치 않는 블루스를 춰야 했다. 춤 다음엔 탬버린. 그리고 감독 옆에 앉아 따라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감독이 나더러 뭐하냐고 물었다. “이번 영화제에 단편 상영한 감독입니다.” 그러자 감독은 한마디 툭 던졌다. “넌 감독 같은 거 하지 말고 가수나 해라.” 백번 양보해서 칭찬으로 한 말이었을 것이다. 웃자고 한 농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왜 그토록 기분이 나빴을까. 그럼에도 왜 가만히 있었을까. 왜 감독 멱살을 잡지 못했을까. 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못했을까. 두고두고 후회했다.  

영화 스탭으로 일할 때다. 영화사 제작 발표회가 끝나고 투자사가 와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고 했다. 스탭과 막내들은 빼고 윗사람들만 모여 룸살롱으로 2차를 간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한국 영화에서 수없이 봤던 룸살롱 장면이 눈앞에 줄줄이 스쳐 지나갔다. 술자리에는 여성도 있을 터인데 나와 같은 여성들이 도우미라는 이름으로 술 시중을 들고 성희롱을 당하는 자리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어쩔 수 없는 관행이라며 눈을 감고 분위기를 맞출 것인가, 한술 더 떠 명예 남성이 될 것인가.

우연히 내가 졸업한 학교 출신 남성 영화감독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여성을 만났다. 눈물을 흘리는 여성 앞에서, 나이가 어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영화감독을 꿈꾸는 젊은이를 우습게 봤을 그 감독이 떠올랐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성폭력은 성과 젠더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전형적인 갑을관계 권력구조에서 발생한다.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자신보다 약자를 성적으로 유린하는 것이다. 서 검사는 남성 중심적인 검찰 조직에서 여성 검사로서 끊임없는 차별과 언어폭력, 성희롱에 시달려야만 했다고 털어놨다. 서 검사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듯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사회적 기득권의 표상인 검사, 전문직 여성이라 할지라도 결코 성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처럼 지독한 남성중심 사회에서 성폭력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겪는 지극히 일상적인 폭력이다. 폭력을 폭력이라고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모든 여성들의 경험이다.

서 검사의 마지막 한마디가 가슴을 쓰게 후빈다. 아프고 아프다. “피해자가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절대 스스로 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고요. 성폭력 피해자는 절대 그 피해를 입은 본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서 검사가 성폭력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가해자인 남성의 문제라는 걸 깨닫는 데까지 무려 8년이나 걸렸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부당한 폭력의 희생양이 되었음에도 폭력을 폭력이라고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던가. 한국 사회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서 검사가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지난날 수 없이 성희롱을 목도하고서도 침묵했던 그리고 다른 피해자와 같이 연대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뼈저리게 반성한다. 

서 검사는 단지 희생자로만 머물지 않았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불합리한 폭력을 참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생존자로서 기억하고 용감하게 발언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희생자로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여성 모두는 침묵을 뚫고 포기하지 않는 생존자가 되어야 한다. ‘나도 당했다’가 아니라 이제는 ‘당하지 않겠다’가 돼야 한다. 결국 생존자들의 중단 없는 목소리만이 한국 사회 곳곳에 공기처럼 만연해 있는 남성들의 성폭력 불감증을 끝장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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