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그룹 신년사 분석

성평등 관점 안보여 

‘다양성’ 조차 언급 없어 

가족친화적·성평등한 직장

근로자 조직몰입도 증가

 

각 기업의 신년사는 한 해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2018년 국내 10대 그룹의 신년사를 분석한 결과, ‘여성’이란 단어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성평등’ ‘다양성’ 관련 키워드를 언급한 곳도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10대 그룹인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GS, 한화, 두산, CJ, 신세계 등은 1월 초 일제히 신년사를 발표했다. 공통으로 이들 그룹은 세계적 흐름인 보호무역주의와 4차 산업혁명 등에 대비한 경영 밑그림을 제시했다. 수익구조 개편과 상생 경영 그리고 동반 성장과 같은 큼직한 기조도 지난해와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CEO스코어가 올해 10대 그룹 신년사 키워드 빈도를 분석한 결과 ‘사업’이 32회로 가장 많았고, ‘가치’ ‘고객’ ‘혁신’이 각각 26회로 뒤를 이었다. 이어 ‘변화’ ‘성장’ ‘경쟁’ ‘시장’ ‘미래’ ‘역량’이 10위권에 올랐다.

 

그나마 주목할 만한 점은 일·가정 양립 키워드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10대 그룹 중에서는 롯데, 신세계, SK 등이 근무 형태 혁신에 방점을 찍었다. 각각 롯데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신세계는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SK는 ‘일하는 방식의 혁신’ 등을 언급했다. 근로시간 단축과 일·가정양립을 중시하는 추세에 발맞춰 기업 문화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일과 생활의 조화를 뜻하는 ‘워라밸’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신 회장은 지난달 2일 2018년 신년사에서 “오늘날 사회는 워라밸, ‘욜로(Yolo)’ 등의 용어가 통용될 정도로 삶의 질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신 회장은 “변화의 흐름을 빠르게 읽어내고 예상을 뛰어넘는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기업만이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며 “모든 임직원이 ‘Lifetime Value Creator’라는 점을 새기고 고객의 삶에 가치를 더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정용진 신세계 회장은 조직 내 근무환경에 주목했다. 정 회장은 “올해는 우리의 업무 방식을 새롭게 혁신하는 한 해가 돼야 한다”며 “올해부터 시작된 ‘주 35시간 근무제’는 우리 그룹이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시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 회장은 “업무 시간 안에 주어진 업무를 모두 마치고, 퇴근 이후의 ‘휴식 있는 삶’과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의 질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SK는 4가지 중점과제 중 하나로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제시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임직원이 올해 실천해야 할 과제에 대해 “같은 조직과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일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프로젝트 중심의 공간에서 협업과 공유를 활성화하는 업무 공간을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롯데그룹은 현재 유통업계 최초 남성직원 1개월 의무육아휴직제 등을 도입하며 일·가정양립 문화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남성 의무 육아휴직제’ 도입 1년 만에 남성육아휴직자가 1000명을 돌파했다.

또한 롯데백화점은 남성 직원 배우자가 출산하면, 1개월간 의무적으로 육아휴직에 들어간다. 휴직은 근로자의 별도 신청 없이 1개월간 자동으로 시행하고 있다. 소득 감소 등을 이유로 휴직을 피하는 경우가 없도록 휴직 기간 정부 지원금과 별도로 통상 임금 100%를 보전해준다.

신세계그룹은 올해부터 대기업 최초로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국내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으로, 주 35시간 근무는 유럽이나 해외 선진 기업들에서나 볼 수 있는 새로운 근무형태다. 신세계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9-to-5제’를 시행하고 있다.

SK하이닉스 또한 워라밸 기업문화 혁신에 나서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범 운영이 핵심이다. 여기에 유연근무제를 확대하고 수평적 소통을 위한 호칭 체계를 변화하는 등 10대 그룹 중에서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10대 그룹 신년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 순위. ‘사업’  ‘가치’ ‘고객’ ‘혁신’ ‘변화’ 등이 5위권에 속한 반면 ‘여성’ ‘성평등’ ‘다양성’ 관련 키워드는 찾아볼 수 없었다. ⓒCEO스코어
10대 그룹 신년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 순위. ‘사업’ ‘가치’ ‘고객’ ‘혁신’ ‘변화’ 등이 5위권에 속한 반면 ‘여성’ ‘성평등’ ‘다양성’ 관련 키워드는 찾아볼 수 없었다. ⓒCEO스코어

기업들은 이제 조직 내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성평등 문화 조성에 앞장서야 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남녀 근로자의 가족친화문화인식과 남녀평등문화인식이 조직몰입에 미치는 효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의 직장이 가족친화적이고 남녀평등하다고 느낄수록 근로자들의 조직몰입도가 증가한다.

김양희 젠더앤리더십 대표는 “사실 기업 입장에서는 ‘여성’이나 ‘성평등’ 관련 키워드를 말하긴 어려울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를 포괄하는 개념의 ‘다양성’조차 언급이 없었다는 것은 의아하다. 다양성은 획일적이고 관료적인 기업 문화를 바꿀 수 있는 핵심이자 경영 분야의 혁신을 위한 토대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기업 내 성평등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조직 체계부터 변화해야 하는데 현재 기업들은 단편적인 부분에만 집중하고 있다. 조직 내 ‘젠더통합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라며 “회사의 경영철학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면서 유연성, 개방성 등 민첩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