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폭력은 여성을 배제하고

무력화하는 조직적 차별·의도적 행위”

학교·기업 ‘성평등 교육’ 의무화

기업, 기관에 성폭력 전담 기구 마련

2차 피해 막기 위해 피해자에 대한

근거 없는 루머 처벌 강화 등 제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YWCA연합회,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등 여성인권단체들이 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YWCA연합회,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등 여성인권단체들이 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여성학회가 4일 ‘검찰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검찰 조직의 자성 없는 은폐는 권력형 성폭력의 전형”이라고 지적하며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학교와 기업에서 ‘성평등 교육’을 의무화하고 모든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 ‘성폭력 진상조사위원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여성학회는 이날 오후 성명을 내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은 사회적 능력을 갖춘 여성들을 고용, 직무, 승진, 인사의 모든 분야에서 배제시키고, 무력화시키는 조직적인 차별이며 의도적 행위”라며 이같이 밝혔다. 한국여성학회는 사회구조적인 불평등을 개선하고, 일상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성평등 지식을 생산하고 교육해온 학술단체다.

먼저 학회는 용기 있는 폭로로 검찰 내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한 서지현 검사를 비롯해 “‘한샘 사건’ 피해자를 포함한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이들의 용기에 지지를 표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은 여성의 인권과 노동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행위라는 점을 짚었다. 학회는 “직장 내 성폭력은 여성을 조직에서 배제하고 주변화 시키는,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폭력의 작동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 8년 동안 성추행 피해자였던 서지현 검사는 인사 불이익을 당했지만, 가해자는 조직에서 승승장구했다”며 “남성숙 전 성균관대 교수의 해임 건에서 알 수 있듯 직장 내 성희롱을 경험한 70%의 여성은 직장을 떠나거나, 쫓겨난다”고 말했다.

남성숙 전 교수는 3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2015년 대학원장이던 이모 교수에게 강제추행과 성희롱을 당한 사실이 알려진 뒤 ‘재임용 부적격’ 통보를 받는 등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여성노동자회가 지난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103명을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74명(71.8%)이 불이익 조치와 따돌림 등으로 회사를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성희롱 피해자 10명 중 7명 정도가 회사를 떠나는 것이다.

학회는 “정부, 검찰, 민간기업이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해 관대하게 조처해 온 것은 여성이 일터에서 거리에서 가정에서 겪는 수많은 폭력을 방치하고 재생산하는데 일조하는 것”이라며 “이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사회구조의 문제로 보지 않고 개별 여성에게 고통을 전가하면서 조직 내 모든 구성원이 함께 해결해야할 문제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여성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성애화하고 성적 대상화하는 문화에 모두가 공모하도록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직장 내 성폭력 문화 척결을 위한 정부와 민간기업의 책임 있는 노력을 촉구하며 △모든 학교·기업 ‘성평등 교육’ 의무화 △민간기업, 검찰, 공무원 등의 조직체에 성폭력 전담 기구 마련 △성폭력 피해자·신고자의 2차 피해 막기 위해 피해자에 대한 근거 없는 루머를 퍼트리는 이들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의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학회는 “정부는 성폭력 가해자와 기업 관행에 대해 엄중하게 처벌해 성폭력과 성적 대상화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폭력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면서 “더 나아가 검찰을 필두로 공공기관과 민간기관 전체에 성폭력 진상조사 위원회를 설치하고 성폭력 관행이 더 이상 한국 사회에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한국여성학회의 성명서 전문이다.

직장 내 성폭력 문화 척결을 위한 한국여성학회 입장

한국여성학회는 서지현 검사, 한샘 사건의 피해자를 포함한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이들의 용기에 지지를 표한다. 한국에서 성폭력 생존자의 피해 말하기의 역사는 짧지 않지만, 2016년부터 문단과 영화계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 영역에 걸친 성폭력 피해의 폭로는 최근 한림 성심병원을 이어 아시아나 항공사, 학계, 경찰, 법조계, 정치 등의 모든 영역으로까지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은 성폭력이 가부장제의 낡은 관습과 관행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능력을 갖춘 여성들을 고용, 직무, 승진, 인사의 모든 분야에서 배제시키고, 무력화시키는 조직적인 차별이며 의도적 행위이다.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사실이 드러나기 어렵고 이들의 지속적인 해결 요구가 묵살된 것은 가해/피해의 구도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조직화된 범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사회 정의와 공정함을 구현해야 할 검찰 조직의 자성 없는 은폐는 권력형 성폭력의 전형을 보여준다.

직장 내 성폭력은 여성을 조직에서 배제하고 주변화 시키는,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폭력의 작동 방식이다. 지난 8년 동안 성추행 피해자였던 서지현 검사는 인사 불이익을 당했지만, 가해자는 조직에서 승승장구했다. 성균관대학교 남정숙 교수의 해임 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직장 내 성희롱을 경험한 70%의 여성은 직장을 떠나거나, 쫓겨난다. 직장 내 성폭력은 여성의 인권과 노동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 행위이며 실질적인 위협으로 작동한다. 그러므로 정부, 검찰, 민간 기업이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해 관대하게 조처해 온 것은 여성이 일터에서 거리에서 가정에서 겪는 수많은 폭력을 방치하고 재생산하는데 일조하는 것이다. 이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사회구조의 문제로 보지 않고 개별 여성에게 고통을 전가하면서 조직 내 모든 구성원이 함께 해결해야할 문제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성애화하고 성적 대상화하는 문화에 모두가 공모하도록 만들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안태근 검사의 성추행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비롯하여 검찰 내부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전수조사가 검찰 외부 구성원의 주도하에 분명하고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모든 민간 기업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이나 오락거리로 취급하는 문화를 근절해야 한다. 정부는 구체적인 성폭력 가해자 및 기업의 관행에 대한 엄중한 처벌로써 성폭력과 성적 대상화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폭력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더 나아가 검찰을 필두로 공공기관 및 민간기관 전체에 성폭력 진상조사 위원회를 설치하여 성폭력의 관행이 더 이상 한국 사회에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전체 사회 구성원의 인식과 행동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강력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성폭력 피해 호소를 가로막는 2차 피해와 불이익조치에 대해서도 엄중히 대처하여 피해자들과 조력자들이 적극적으로 성폭력에 대항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한국여성학회는 사회구조적인 불평등을 개선하고, 일상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성평등 지식을 생산하고 교육해온 학술단체로서 직장 내 여성의 성적 대상화 및 성폭력 문화 척결을 위한 공무원, 검찰, 경찰, 공기업 및 민간 기업의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 및 민간 기업의 진정한 반성과 성찰이 요구되며, 이에 한국여성학회는 아래와 같은 근본적인 대책을 주장한다.

- 모든 학교 및 기업에 ‘성평등 교육’을 의무화하라.

- 민간기업, 검찰, 공무원 등의 조직체에 성폭력 전담 기구를 마련하라.

- 성폭력 피해자 및 신고자에 대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조직 내, 그리고 온라인에서

피해자에 대한 근거 없는 루머와 악담을 퍼트리는 이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라.

 

2018년 2월 4일

제34대 한국여성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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