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는 ‘국가·사회가

요구하는 재생산 위한

성적 규범, 삶의 규범을

수행하지 않은 죄’

 

최근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는 이런 장면이 등장해 많은 여성들을 경악케 했다. 극중 인물인 이수아와 서지태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합의한 상태다. 그러나 피임 실패로 임신 8주차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수아는 임신중지를 결심한다. 출산은 두 사람뿐 아니라 태어날 또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기에 함께 책임지겠다는 합의와 준비가 필요한 일임에도, 서지태는 “아이 낳고 나서 이혼해 줄 테니 대신 아이를 낳아달라”며, 이수아에게 “신고하겠다”고 협박을 한다. 이후 서지태는 임신중지를 원하는 이수아에게 임신 초기부터 먹어야 한다며 약을 건네고, 계속해서 이수아의 의사와 무관하게 행동한다.

2010년,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시술 병원을 고발하고 나서면서 이후 남편이나 남자친구에 의한 고소가 증가했다. 2012년 헌법재판소 판결의 대상이 되었던 사건도 상대 남성이 고소한 사건이었다.

임신중지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사실상 대부분 당사자나 상대 남성, 가족들이기 때문에 대체로 임신중지를 이유로 한 고소는 고소인이 상대 남성이나 그 남성의 가족인 경우가 많다.

2013년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임신중지를 한 여성에게 최종 200만원의 선고가 내려졌던 사건을 보면,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음주, 폭력을 행사했고 경제적 여건도 어려운 상태에서 심지어 남편이 임신 상태인 부인을 칼로 위협까지 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이 임신중절을 하자 남편이 아내를 고소한 것이다. 당시에 남편은 자신은 병원에 함께 가지 않았고, 동의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자신의 낙태방조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주장했고, 법원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여성에게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그리고 시술한 의사는 징역 6개월에 자격정지 1년 처분을 받았다. 남편은 무죄였다.

2016년 사건의 경우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이혼을 결심한 이후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남편이 위자료 액수를 두고 싸우다가 아내와 시술 의사를 낙태죄로 고소했다. 이 사건에서도 아내만 벌금 400만원을 받았다.

특히 이런 식의 악의적 고소가 가능하고, 남성은 쉽게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이유는 모자보건법 상에 배우자 동의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낙태를 위해서는 남성의 동의가 필요하고, 불법이 되는 상황에서는 남성의 책임이 쏙 빠지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현실은 임신중지가 불법인 상황을 이용한 성폭력까지도 벌어진다는 것이다. 2010년에도 낙태를 도와주겠다며 미혼인 임신부를 유혹해서 흉기로 위협하고 성폭행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있었고 2013년에도 이런 식의 범죄가 있었다.

이런 현실에서 과연 낙태죄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수십 년 동안 ‘낙태죄’ 폐지를 위한 운동이 일었고, ‘낙태죄’ 폐지 요구가 지니는 의미도 좀 더 구체적이고 구조적인 맥락으로 확장됐다. 이 요구가 무엇을 의미할까? 그 동안 가장 대표적으로 논의된 것은 임신중지를 한 여성을 처벌하는 법률을 폐지함으로써 여성의 자기 몸과 삶에 대한 결정권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자기 몸과 삶에 대한 결정’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당연히 임신을 지속할 것이냐 중지할 것이냐의 문제만 결부된 것만이 아니다. 그야말로 자기 자신으로 인지하고 주체성을 가질 수 있는 몸, 스스로의 삶에 결부된 다양한 조건과 맥락들이 이 ‘결정’의 의미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성에 대한 통제는 이러한 우리의 몸과 삶에 대한 결정권을 다양한 방식으로 침해한다. 어떠한 성별정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몸을 어떠한 모습으로 드러내며 살아갈지, 어떤 행동과 태도를 보여야할지, 누구를 만날 것인지 말 것인지, 그 대상은 누구인지, 혼자 살 것인지 동거를 할 것인지 결혼을 할 것인지와 같은 다양한 삶의 방식과 그 국면에 특정한 성적 규범과 삶의 양식이 정답처럼 요구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장애 여부, 국적, 나이, 지역, 학력 등에 따라 또다시 삶의 여러 조건들이 제한되거나 혹은 배제, 낙인으로 내몰리는 일이 발생한다.

‘낙태죄’는 국가와 사회가 이 조건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돼왔다. 즉 ‘낙태죄’는 생명을 죽인 죄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요구하는 재생산을 위한 성적 규범과 삶의 규범을 수행하지 않은 죄’인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해 온 것이다. 그래서 ‘낙태죄’는 사실 섹슈얼리티에 대한 자율성을 침해하는 죄라고도 할 수 있다.

같은 이유에서,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임신이 통제된다. 이성애와 성별이분법의 규범을 따르지 않은 이들, 이 사회가 ‘정상’으로 여기는 몸과 다른 몸을 가진 이들, 질병을 가진 이들, 이곳에서 오래 거주하기를 거부당하는 이들, 출산보다는 노동 인력으로 먼저 고려되는 이들, 나이가 어리고 결혼을 하지 않은 이들 등에게는 오히려 임신이 죄가 되거나 임신한 몸이 사회적 부담이 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임신을 하고 출산까지 이어지더라도 그 당사자와 아이의 삶을 보장할 사회적 조건이나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가와 사회는 이들에게 사실상 임신을 하지 말거나 중단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낙태죄 폐지 요구는 이제 단지 ‘임신을 중단할 권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가와 사회가 원하는 정상성과 효율성의 기준에 따라 생명을 관리·통제하고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면서, 그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낙태죄를 유지해 온 그 구조를 변화시킬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 비로소 이 사회가 원하는 생명이 아니라, 우리의 총체적 삶을 보장하는 과정으로서의 생명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아이를 낳는 게 행복’이라는 요구에 얽매이고 통제되는 삶이 아니라 홀로, 혹은 누구와 어떠한 형태로 삶의 공동체를 꾸리고 살아가든 그 삶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우리가 원하는 사회이다. 낙태죄를 폐지하는 것은 그 변화를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다. 낙태죄 폐지는 단지 임신 여부에만 관련된 요구가 아니라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요구일 수밖에 없다. 임신중지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되듯이, 그 변화를 위한 요구의 책임도 여성만의 몫이 아니다. 다른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함께 낙태죄를 폐지하자. 그래야 변화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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