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극장] 외국영화, 남자는 반말 여자는 존댓말?
[기울어진 극장] 외국영화, 남자는 반말 여자는 존댓말?
  • 남명희 영화학 강사
  • 승인 2018.01.30 17:25
  • 수정 2018-02-04 1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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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된 외국 작품은 두 세계의 만남이다. 여자와 남자, 어린이와 노인 등 상황은 같아도 상호 주고받는 언어와 관습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확한 번역이란 희망사항에 가까운 것이, 언어 사용자는 각 모국어 문화 안에서 이 정도면 알아듣겠지 하는 맥락에 따라 경제적으로 언어를 쓰기에 외국어와 모국어는 1대 1 대응이 결코 되지 않는다. 전체 맥락을 잡으면서도 사용된 낱말의 고유성을 얼마나 살리느냐에 따라 번역의 기술적 품질이 달려 있고, 이 실력은 들인 시간 및 받는 비용과 정비례한다. 하지만 보통 번역자의 실력이라고 하면 기술적인 면만큼 외국어로 된 작품을 해석하는 사고체계를 가리키고, 그 사고체계에 대한 평이 따라온다. 

1. 영화 ‘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2015) KBS 방송판 중

총리 부인: 괜찮으세요?

총리 : 괜찮아, 그냥 스친 것뿐이야.

총리 부인 : 당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총리 : 나는 괜찮아. 아무 일 없을 테니 걱정 마.

 

2. 영화 ‘레고 무비’(2014) 한국어 음성 녹음판 중

나쁜 경찰의 엄마 : 여보, 이리 오세요.

나쁜 경찰의 아빠 : 다리가 꼼짝하질 않아.

엄마 : 올라와요, 저녁 먹을 시간이에요. (스포일러 내용 생략)

아빠 : 알았어, 여보. 금방 올라갈게. 

 

위 예시는 영화 속 단역들의 대사다. ‘부부’ 관계가 개입하면 특정 성별만 상대방에게 존댓말을 한다는 그릇된 사고체계가 얼결에 보인다. 

이것이 더 나빠지면 주인공한테도 여자가 말을 하면 당연히 존댓말을 써야 긍정적인 인물이 된다고 판단하고 남성들의 반말을 감내하게 만든다. 디즈니 영화 ‘인사이드 아웃’과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자막판을 보면, 2010년대의 미국 시민이건 먼 옛날 은하계의 장군이건 남성 배우자의 반말에 여성은 존댓말로 답한다(두 작품의 한국어 음성 녹음판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서로에게 동등한 말투를 쓴다).

애매한 경우도 발생한다. 신분제가 존재하는 사극에서 신분이 높은 여자가 신분이 낮은 자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혹은 신분이 추락한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서 여성에게 굳이 존댓말을 쓰게 하는 경우도 있다. 신분이 낮은 남자의 반항성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여자한테만 반말을 쓰는 하층 남자가 등장하는 한국산 퓨전사극도 본 적 있다(신분제를 설명하는 장면으로서 곧 그 남자 목을 치려나 했는데 아니었다). 상냥함과 친절이 여성의 경우에만 존댓말로 표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분이 높은 남자가 성격이 상냥해서 혹은 생명의 위협 앞에 천민에게 존댓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영화 ‘에버 애프터’에서 산적에게 납치된 왕자는 끝까지 반말을 했으니까. 그리고 애당초 남자에게 그런 설정을 주는 극 자체도 적다.

3.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 중

스티브 : 고마워요, 샤론 (키스)

샤론 : 좀...

스티브: 늦었지.

샤론 : 내 말이! 갈게요.

스티브 : 그래.

(위 사례는 스티브가 샤론에게 키스하자마자 반말을 하고, 샤론은 어정쩡하게 스티브에게 존댓말을 계속한다는 점에서 곱게 보일 수가 없는 번역으로 악명 높다.)

 

이는 번역관계자들이 꾸준히 지적을 들어도 그 편견을 고치지 않고 반복하는 시스템의 문제다. ‘겨울왕국’의 안나는 제1왕위계승자인데도 하인들에게 존댓말을 쓴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선 연륜이 높은 레아 장군이 함교에서 다른 장교들에게 존댓말로 명령한다. 이는 음성언어를 자막으로 번역할 때 글자 수를 최대한 줄인다는 규칙과도 부딪친다. 여성이 말을 할 때는 규칙이고 뭐고 없다는 번역자, 감수자, PD, 수입배급사 모두의 편견을 드러낸다. 

지적을 듣는 번역 상당수는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적으로 잘 되었기에 결함이 눈에 잘 띄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일부분은 전체를 반영하고, 같은 문제가 반복 발생한다면 그것은 체계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기술적인 오역은 대부분 작업 여건의 문제고, 이는 번역자 개개인보다 번역을 의뢰하는 수입 및 배급사가 개선해야 나아질 수 있으며, 작업여건이 개선되면 차별적인 결과물을 바꿀 여지도 증가한다.

반말을 권력 사용으로 알고 남자에게만 반말을 주고 여자에게만 극존대를 시키는 것은 옹졸하다. 말은 두 명 이상이서 상호작용을 하는 도구이며 사회수단으로서, 성별을 떠나 평등한 시민으로서 공평한 어투를 쓰라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여자가 반말을 하면 드세 보일까 걱정하지 말자. 여자 말투를 못 고치겠으면 남자가 아무리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고 화를 내는 장면이라도 존댓말을 쓰라고 하자. 그래도 된다. 

 

KBS에서 방송한 ‘닥터 후’의 한 장면. 액션 담당인 리버송이 속내를 털어 놓는 매우 절절한 장면이, KBS 방송에서는 악당에게 존댓말로 화를 내는 모습으로 나온다. 감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KBS 방송화면 캡처
KBS에서 방송한 ‘닥터 후’의 한 장면. 액션 담당인 리버송이 속내를 털어 놓는 매우 절절한 장면이, KBS 방송에서는 악당에게 존댓말로 화를 내는 모습으로 나온다. 감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KBS 방송화면 캡처

개인적으로 걱정 반 기대 반인 작품은 주인공 닥터가 여성으로 바뀐 ‘닥터 후’다. 지금까지 KBS는 주인공 남성 닥터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여성 동행자들이 극존칭을 쓰고 닥터는 반말을 하게 했다. 이제 닥터가 여성인데 닥터가 반말을 고수하고 남성 동행자들이 극존칭을 쓸지 아닐지 모르겠다. 아니, 그 전에 닥터가 여성이 되었다고 KBS에서 수입을 그만두는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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