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변호사의 이러시면 안됩니다 - 8]

 

그래도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의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회식모임에서 하급 여성직원에게 자리를 안내해 주겠다고 하던 중에 상급 남성직원의 손이 여성직원의 어깨와 등 쪽에 잠깐 닿았단다. 별다른 성적 언사는 없었다고도 했다. 이런 경우도 성희롱으로 볼 수 있는 거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성희롱 여부를 논할 때는 성희롱 의도가 없어도 된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이런 접촉도 성희롱에 해당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맞다. 어떠한 언사나 행동이 성희롱인지 아닌지 여부를 따질 때에는 가해자에게 성희롱을 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는 문제 삼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도 대법원도 모두 그 입장이 일치하고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앞의 사례와 같은 경우까지도 성희롱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좀 어색한 점이 있다. 이를테면 기지개를 켜려고 팔을 쭉 뻗었는데, 그러던 중에 정말 ‘의도치 않게’ 옆 사람 몸에 손이 닿았다면? 만원 지하철 안에서 뒷사람에게 떠밀리다보니 앞 사람 몸에 닿았다면? 아마 이 같은 ‘의도치 않은’ 경우까지 모두 성희롱으로 보아야 한다면 성희롱 가해자 아닌 사람이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폐를 끼친 것은 맞지만, 폐를 끼치는 모든 행위가 성희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법이다. 

성희롱·성폭력과 관련한 어느 심포지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형사책임의 기본적인 대원칙은 행위자에게 고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성희롱 판단에 있어서는 행위자의 고의나 의도를 묻지 않겠다고 하니, 이는 원칙론 차원에서 본다면 부정합적일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것 아니냐고. 현행법에서 성희롱을 형사범죄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는 점은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책임을 부과함에 있어서 의도 유무를 따져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에 함부로 흘려들을 만한 지적은 아닌 것 같다. 

이 같은 논란에는 ‘의도’라는 개념에 대한 다소간의 오해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하나의 언동에 대하여 작용하는 의도는 두 단계로 나누어질 수 있다.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려고 하는 의도가 첫째 단계라면, 그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 무언가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둘째 단계의 의도가 된다. 

성희롱이 성립함에 있어서 행위자의 의도를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은 맞다. 그런데 여기서 따질 필요가 없는 의도란 단순한 의도가 아니라 ‘성희롱 할’ 의도라고 보아야 한다. 성적 욕망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의도 또는 행위동기로서의 성적 의도이거나 상대방을 성적으로 괴롭히고자 하려는 의도, 그러니까 엄밀히 나누어 말하자면 ‘둘째 단계의 의도’를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따져 보아야 하는 의도도 있다. 이 의도란 ‘말이나 행동을 하려고 하는’ 의도를 말한다.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나 의사로서의 의도만큼은 적어도 인정되어야 비로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상대방을 ‘바보’라고 부른다면 상대방은 굴욕감을 느낄 것이다. 내가 ‘바보’라고 말하면서 상대방을 욕보이거나 괴롭힐 의도까지는 없었더라도 마찬가지다. ‘바보’라고 말한 것이 내 의지에 따른 것이고, 그래서 ‘바보’라고 말하려는 의사가 나에게 있었다면 나에게는 그 말에 따른 책임이 있다. 하지만 내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던 중에 생각지도 않게 잠깐 혀가 꼬여서 ‘으랍오’ 라는 소리가 새어나왔는데, 그 소리를 상대방이 ‘바보’라고 들은 것이라면? 아무리 상대방이 ‘바보’라고 들었다 한들, ‘바보’라고 말할 의사 자체가 나에게 없었는데도 내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떤 사람이 상대방 여성과 말다툼을 하던 끝에 몸싸움을 하게 되었는데, 상대방 여성이 이 사람의 머리카락을 잡아서 쥐어뜯자 그에 반격한답시고 상대방 여성의 입술과 귀를 깨물다가 급기야는 그 여성의 상의를 끌어내려서 가슴까지 깨물어 상처를 입혔단다. 대법원은 폭행에 대한 보복의 의미로 한 행위여서 성욕을 자극·흥분·만족시키려는 주관적 동기나 목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여성인 상대방의 입술과 귀, 가슴을 입으로 깨문 행위는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여 강제추행 유죄로 판단했다. 이 판례에서도 상대방 여성의 신체를 깨물고자 하는 행위의도 자체까지 불필요하다고 본 것은 아니다. ‘성적인 동기’나 ‘성적인 목적’으로서의 의도까지는 필요치 않다는 뜻이다. 

조금은 복잡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의문은 해소되었다. 만지려는 의도 없이 닿기만 하였던 것이라면 이를 성희롱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의 사례에서 여성직원 본인도 남성직원이 의도적으로 만졌다고 느끼지는 않았고 잠깐 닿았던 것으로 느꼈다고 했단다. 성희롱의 성립여부를 따질 때에 의도 자체를 아예 논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행위자에게 성적인 욕망을 충족하려고 하는 성적인 의도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이다. 행위 자체에 대한 의지나 의사는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이러한 판단기준이 책임에 관한 일반적 원칙이나 이치에 반하는 것도 아니다. 

성희롱을 예방하고 이에 대처하자는 것이 상식에 벗어난 기괴하고 요상한 세상을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상식적인, 너무나도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닿은’ 사람에게 억지로 책임을 물으려하지 않더라도 책임을 물어야 마땅한 ‘만진’ 자는 세상에 아직 많다. 그러면 만진 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강력한 제재가 응당 필요하지 않겠나. 만져놓고는 닿은 척 오리발 내미는 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만졌는지 닿았는지는 잘 따져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다. 상식적인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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