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명당 70명이

호흡기 질환으로 죽는 한국

엔진공회전부터 멈추자

 

 

이대로 가면 몇 명이 죽어나갈지 예측할 수 있는 통계가 우리에게 제대로 없다. 그런데 최근 매년 독일에서만 약 6만6000명, 유럽연합 회원국 내에서는 약 40만명이 죽어가고 있다는 연구보고가 작년 10월 경 나왔다. 젠더폭력 이야기가 아니다. 미세먼지로 인한 사망자 수이다. 물론 사망 원인을 미세먼지 하나로 단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 산하 유럽환경행동(European Environmental Agency) 발표 자료라고 한다면 그냥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닐 것이다. 2017년 9월 오이시디(OECD) 발표 ‘2017년 건강통계’ 자료를 보면 한국의 호흡기 질환 사망률이 2013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70명으로 나온다. 앞서 언급한 자료에서 추론할 수 있는 미세먼지로 인한 독일의 사망률이 10만명당 80명이다. 그런데 최근 서울 중심 수도권 대기질 악화가 독일보다 더 심각한 상황임을 고려하면 미세먼지로 인한 죽음의 문제가 우리에게서도 매우 심각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까지 손가락질을 중국을 향해서만 하였다. 편하다는 이유로 자동차를 포기하지 못한다. 최근 초미세먼지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서울시에서 대중교통 이용을 무상으로 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에게서 원인을 찾고 나만의 편안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행태가 바뀌지 않고 있다.

그래도 마스크를 쓰고 내 자식들 체육활동 금지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 수는 늘어나는 듯 하다. 언론매체에서도 미세먼지에 대응하는 요령을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 결국 이런 흐름을 보면 ‘각자도생’하자는 식이다. 초미세먼지가 심각하니까 비싼 마스크 쓰라고 한다. 외출 삼가하고 공기청정기 사서 집안공기 관리를 하자는 식이다. 돈 있는 사람들이 또 유리한 환경이 됐다. 불편하더라도 초미세먼지 발생의 가장 큰 원인인 지나친 냉난방을 자제하고 자동차를 포기하자는 제안은 없다. 화력발전소 가동 중단도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에서 상징적으로 취하는 조치나 친환경구조 구축만큼 중요한 것이 사회 구성원의 행동 변화다. 하지만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의식해서인가? 손가락을 우리에게 향하자는 성찰적 제안을 누구도 하지 않는다.

관리된 조건에서 측정해 발표하는 미세먼지 수치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우리는 서로에게 미세먼지를 뿜어대고 살고 있다. 어린이집에 공기청정기를 기부하고 내집 창문을 꽁꽁 닫고 공기청정기를 사용하는 부모가 내 아이를 태우려고 어린이집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엔진공회전을 습관적으로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다반사다. 택배기사가 엔진을 켜놓은 채 물건을 내리고 올리는 작업을 한다. 본인의 건강은 관두고라도, 지나가는 행인에게 내가 미세먼지를 뿜어대고 있다는 의식은 찾을 수 없다. 그렇게 낭비하는 기름값은 관두고라도. 소위 자가용을 모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엔진공회전을 하면서 미세먼지를 뿜어대는 파렴치에 대한 부끄러움은 당연히 없다. 게다가 야외도 아닌 지하주차장도 상관없다.

대기환경보전법 59조에 따라 엔진공회전은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5분 이상 엔진공회전을 하면 과태료 5만원을 내야 한다. 물론 너무 덥거나 추우면 법적용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덥지 않거나 춥지 않으면 정차 즉시 엔진을 끄는 운전자가 몇 명이나 되나? 개인적인 관찰이긴 하지만 그런 사람을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춥거나 더워도 가능한 엔진을 켜지 않다가 정차 시간이 길어지면 가끔 켜고 끄면 된다. 불편해도 그렇게 해야 한다.

단속주체인 지자체에 전화를 해도 담당직원 반응은 대체로 뜨뜻미지근하다. 인력도 부족하겠지만, 뭐 그까짓 것 갖고서 전화했냐는 느낌이다. 민원접수가 오면 의례껏 반응해야 한다는 영혼없는 공무원의 전형만을 경험한다. 이런 일방적 주장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공무원이 있다면 본인 스스로 엔진공회전을 철저하게 안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라.

여성운동이 무엇인가? 페미니즘이 무엇인가? 환경, 평화와 분리할 수 없는 가치를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은 공유하고 있다. 정치는 표를 의식해서 비겁하게 숨고 있다. 현장 공무원은 본인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단속규정이기 때문에 그리 능동적 대처를 안한다. 지위 고하, 보수와 진보, 계층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국민스포츠로서 엔진공회전이 자리를 잡았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일상에서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은 차별과 억압, 폭력의 문제를 찾아냈다. 이제 나설 때이다. 편안함과 무관심 속에서 점점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을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너무 소소한 문제제기를 했다고 생각하시는가? 운전대를 잡으면서 생각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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