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수 요조 

영화감독, 작가, 책방주인 등

다양한 수식어 가진 가수

페미니즘에 눈뜨며

‘헬페미 활동가’ 닉네임도

 

가수, 배우, 영화감독, 작가, 책방주인. 데뷔 10년차인 싱어송라이터 요조(37·본명 신수진)는 다양한 수식어를 가졌다. 책 읽는 것이 가장 좋다는 그는 현재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이름은 ‘책방무사’. 오늘도 무사히 보내자는 뜻이다. 제주도에서 산 지 2년째인 그는 2015년부터 서울 북촌에서 운영하던 책방무사를 최근 제주로 옮겼다. 책방 바로 앞에 학교가 위치해있어 초등학생 손님들이 많이 놀러온단다.

2007년 데뷔한 그는 ‘에구구구’, ‘좋아해’, ‘뒹굴뒹굴’ 등으로 이름을 알렸다. TV광고, 드라마 OST에도 다수 참여했다. 가장 최근 발표한 앨범은 ‘나.아.당.궁(나는 아직도 당신이 궁금하며 자다가도 일어납니다)’이다. 수록곡 ‘보는 사람’, ‘늙음’ 등에서 그의 깊은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본다’는 것은 세상 속에서 나의 관심을 드러내는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세월호 사건’ 이후 이것이 굉장히 무력하고 방관자·겁쟁이의 태도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친박 시위대를 보며) 정신적으로 잘 늙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죠.” 요조의 말이다.

뮤지션이자 책방 주인인 그를 누군가는 ‘헬페미 활동가’라고 부른다. 2015년 가을 쯤 처음 책방을 연 그는 운영 6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페미니즘 서적의 비중이 자연스럽게 늘어났다고 했다. 페미니즘에 눈을 뜬 뒤 무서운 기세로 페미니즘 도서를 읽어나갔다. 그러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관련 서적들이 책방 한편을 차지하게 됐다. 어느 날은 한 남자 고등학생이 찾아와 “페미니즘에 대해 알고 싶다”며 책 추천을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요조는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페미니즘 활동에 열중하고 있다. 책방을 운영하며 페미니즘 근육을 단단히 키워가고 있는 셈이다.

최근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을 출간한 그를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페미니즘 얘기로 2시간을 보냈다. 인터뷰 전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녹음하고 왔다는 그는 얼핏 피곤해보였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얘기를 할 때만큼은 눈이 빛났다. “‘홍대 여신’이라는 수식이 왜 불편한지 페미니즘을 공부한 뒤 명확하게 깨달았다”는 그에게서 언어를 되찾은 이의 행복함을 엿볼 수 있었다.

 

-페미니즘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됐나.

“결정적인 계기는 칼럼니스트 김태훈씨의 글(지난 2015년 한 패션지에 실린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제목의 칼럼)이었다. 그 글을 읽기 전에는 페미니즘에 관심도 없었고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그 칼럼을 보고 난 후 ‘아니, 어떻게 IS와 페미니즘을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노가 분명한 행동으로 이어지게 했던 것은 강남역 여성살인사건이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은 내가 ‘보는 사람’으로만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자각했다.”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후 삶이 달라졌을 것 같다. 가수로서도, 신수진이라는 개인으로서도 변화를 느끼지 않았나.

“내면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저는 데뷔 이후 외모로 굉장히 많은 평가를 들어왔다. ‘홍대 여신’이라는 타이틀을 지금까지도 달고 음악을 하고 있다. 스물일곱에 요조라는 이름으로 데뷔했으니 10년간 들어온 셈이다. 저는 예쁘다는 칭찬도 많이 들었으나 동시에 저게 뭐가 예쁘냐는 욕도 많이 들었다. 어느 자리에 가든 음악보다도 ‘홍대 여신’이라는 타이틀이 먼저 언급됐다. 그걸로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이 정의되곤 했다. 제가 홍대 여신이라는 명칭에 불쾌해 하면 그건 그것대로 욕을 먹었다. ‘칭찬해주는 건데 왜 그러냐. 배부른 소리 한다’는 식이었다. 당시에는 페미니즘이나 여성혐오에 대한 개념화가 안 돼 있었을 때라 왜 불쾌한지 스스로 정의내리지 못했다. 그러다 페미니즘에 눈을 뜨고 페미니스트라고 인정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명쾌해졌다. 내가 왜 화가 났었는지, 왜 오랜 기간 스트레스를 받아왔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홍대 여신’이라는 간판 아래서 음악해온 10년이라는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내 나름대로 다른 행보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어떤 활동을 하게 됐나.

“자연스럽게 책을 찾게 되더라. 페미니즘 서적을 정말 열심히 찾아 읽었다. 그렇게 2개월 정도 지나니까 책방에 페미니즘 책이 자연스레 많아졌다. 그때 마침 원더우먼 페스티벌이라는 행사에서 강연을 하게 됐다. 저는 책방 주인이니까 책을 팔겠다고 했다. 책방을 운영하게 된 이유 등과 함께 제가 인상 깊게 읽은 페미니즘 도서 10여권을 소개해드렸다. ‘이건 누가 언제 쓴 책이고, 어떤 내용이고, 이런 점이 너무 인상 깊었고, 이런 고민을 갖고 계신 분에게 굉장히 요긴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처음에는 다들 쭈뼛쭈뼛 하시더니 나중에는 다들 너도나도 책을 사고 싶어 하시더라. 구매자에게는 돈 대신 매니큐어나 머리핀, 생리대 등 간단한 물품을 받았다. 끝나고 책을 구매한 분들과 기념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는데,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방향성을 알게 됐다. 각자 할 수 있는 역량이라는 게 있지 않나. 과격하고 급진적으로 하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하게 연대해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저도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은 셈이다. 가끔 영페미 분들이 책방에 와서 고마움을 표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더 강하게 책임감을 느낀다.”

2015년 혼성 듀오 니들앤젬(Needle&Gem)의 에릭과 함께 만든 ‘루시’라는 노래는 페미니즘 공부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노래에는 여성혐오에 대한 요조의 비판적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요조와 에릭은 ‘루시’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여성이 겪는 여성혐오를 꼬집는다. “우리에겐 루시라는 친구가 있어요. 찬란한 스무 살이죠. 그녀는 참 예뻐요. 그녀의 입술은 최고급 루비와도 같아요. 그녀의 미소는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거예요. 하지만 그녀는 당신의 꽃이 아니에요. 그녀는 당신의 베이비가 아니에요. 그녀는 그저, 루시예요.”(‘루시’ 노래 가사 중)

-‘헬페미 활동가’가 되겠다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 것 같다.

“농담처럼 하긴 한 건데, 어쨌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저는 좀 멘탈이 약하고 겁쟁이 스타일이라서 과격하게 잘 못한다. 그래도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너무 좋다.”

 

-요조님이 추천한 책을 읽거나 요조님의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는 사람이 있었나.

“생각이 바뀌었다기보다는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졌다. 근데 저는 그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말 한 마디를 할 때도 ‘이거 여혐 발언이야?’라고 물으면서 제 의중을 살핀다. 예를 들어 제가 뭔가 먹을 것을 줬을 때 ‘요조 시집가도 되겠네’라는 반응을 보이면 저는 다 지적한다. 또 제가 화장을 안 했을 때 외모에 대해서 말하면 ‘나는 내가 화장을 할 자유가 있듯이 안 할 자유가 있다’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는 건 무례한 것’이라고 정색하고 얘기한다. 그러니까 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이해는 못해도 눈치는 본다. 저는 그 ‘눈치 봄’이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말하기 전에 ‘이건 하면 안 되는 말인가?’라고 한 번 걸러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사고의 프로세스를 개선해나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배우로도 영화에 출연한 바 있고, 감독으로도 영화 연출을 하셨는데, 요즘 한국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다루거나 여성의 서사를 다룬 작품이 많이 없다. 그런 현상을 보며 어떤 문제의식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영화가 알게 모르게 우리를 학습시켰는가’를 깨닫고 난 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화에 나오는 한정적인 여성 캐릭터나 남성 위주의 시나리오 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안 좋은 의미로’ 새로웠다. 그래도 지금은 그런 문제점을 (많은 이들이) 인식하기 시작했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려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앞으로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믿고 싶다.”

-노래 가사 중에서도 여성을 대상화하거나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것들이 많다. 특히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심각한데.

“기본적으로 여성을 대상화한다는 점에서 화가 나지만 창작자로서 분노하는 지점이 또 있다. ‘진부하다’는 데서 오는 불만이다. 예술가라면 클리셰를 기본적으로 경계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은데, 최근의 노래들을 살펴보면 그 메시지가 놀랄 만큼 한결 같고 획일적이다. 참 게을러 보인다. 노래 속에서 여성이 소비되는 방식은 워낙 오랫동안 지속돼온 문제이기 때문에 (아이돌 그룹의 노래뿐만 아니라 옛날 노래들 가운데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금방 바뀔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점점 많은 분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더디지만 점차 변화할 것이라는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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