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정치인 ‘신사’로 호명

수상자 중 여성은 한 명뿐 

‘신사’라는 기준에서

여성은 자연스럽게 배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제19회 백봉신사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제19회 백봉신사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연말 국회의장실에서 문자 메시지 한통을 받았다. ‘2017년 백봉신사상 설문조사를 실시하며, (중략)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으로 국회 출입기자 전원에게 보낸 것이다. 국회의장의 활동, 공지사항 등을 안내하는 일상적인 메시지 중의 하나였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일하는 국회에서 정말 남성인 ‘신사’를 선정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어 ‘백봉신사상’에 대해 찾아봤다. 제헌 국회의원인 백봉 라용균 선생을 기리는 기념사업회(회장 정세균)가 1999년 만든 상으로 정치부 기자들에게 설문조사하고, ‘자기통제력과 정직성, 공정성, 원칙준수, 유연성, 균형성 등을 갖춘 신사적인 국회위원에게 수여한다’고 한다.

12월 28일 열린 시상식에서 300명 중 최고의 정치인은 ‘신사’로 호명됐다. 기념회의 당연직 회장을 맡고 있는 정세균 국회의장은 “신사적인 국회의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면서 “백봉신사상 만큼 권위와 자부심을 갖게 하는 상이 없다”고 말하고 사회자도 “300명중 최고의 신사로 선정된 분들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사로서 활동을 기대한다”고 격려했다.

정치인의 덕목과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장황하게 설명해도 ‘신사’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게 설명 가능하다. 이날 10명의 수상자 중 여성은 심상정 의원 한명 뿐이고, 역대 수상자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이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정치이론가인 조지 레이코프 교수가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고 하면 코끼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고 한 것처럼, 정치를 남성의 전유물인 것 마냥 ‘신사’라는 기준에서 여성은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1999년 15대 국회 당시 여성 의원은 9명으로 3%에 불과했기에 주최 측은 여성을 간과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20여년이 되도록 성차별적인 용어는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중진 여성 국회의원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조배숙 국민의당 의원에게 의견을 묻자 “이왕이면 바꾸는 게 낫겠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언어조차 남성중심적으로 보편화돼버렸다. 신사 대체할 단어로 ‘선비’가 비슷한 것 같은데 이마저도 남성적 단어다. 바꾸고 싶어도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시상식 축하객으로 참석한 여성의 말이다. ‘신사’상은 정치권에서 남성적의 언어, 남성적 기준의 사소한 해프닝이다. 문제는 의회와 정당의 다수인 남성에 의해 조직의 각종 기준과 규칙이 만들어져왔고, 지금도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확대를 위해서는 정치권에서 여성의 언어와 기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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