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민사린’들, 행복하십니까?
대한민국의 ‘민사린’들, 행복하십니까?
  • 강푸름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7.12.26 18:15
  • 수정 2018-01-01 0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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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결혼’을 말하다]

기혼 여성이 겪는 성 불평등

생생히 담은 웹툰 ‘며느라기’

성차별 자각한 주인공 민사린에

공감하는 여성들에 인기 

그렇다면 현실의 ‘민사린’들은?  

여성들 “결혼 후 며느리·아내에 

부여되는 역할·책임 부담, 불합리”

 

수신지 작가의 웹툰 ‘며느라기’ 속 주인공 민사린 ⓒ수신지 작가
수신지 작가의 웹툰 ‘며느라기’ 속 주인공 민사린 ⓒ수신지 작가

결혼 뒤 여성이 겪는 성 불평등 현실을 생생하게 담은 웹툰 ‘며느라기’(작가 수신지)가 20~40대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며느라기’의 주인공 ‘민사린’은 가부장제와 결혼제도 아래에서 여성들이 겪는 불합리함을 담담하게 그려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속 주인공 ‘김지영’이 경력단절여성이 겪는 일상적 차별과 구조적 불평등을 드러낸 여성문제의 아이콘이었다면, ‘민사린’은 결혼제도에 억압된 기혼 여성의 아이콘인 셈이다. 그렇기에 ‘며느라기’는 현재 한국사회의 성 불평등을 이야기하는 기록물로서 가치를 지니게 됐고, 여성들의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는 소통의 창구가 됐다.

“제가 할게요. 저한테 주세요. 제가 다 할게요.”

선한 눈이 웃는다. 입에서는 “내가 다 하겠다”는 말이 버릇처럼 흘러나온다. ‘며느라기’ 연재 초반, 주인공 민사린의 모습이다. 작가는 작품 속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며느라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춘기, 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되면 겪게 되는 며느라기라는 시기가 있대. 시댁 식구한테 예쁨 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그런 시기. 보통 1, 2년이면 끝나는데 사람에 따라 10년 넘게 걸리기도, 안 끝나기도 한다더라고.”

작가의 말처럼, 결혼 후 며느라기를 맞이한 여성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며느리로서 책임과 의무를 자처한다. 심지어 결혼 전 애인의 집에 놀러갔을 때조차 여성은 ‘왠지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무엇이라도 도와야겠다’는 불안함을 갖는다. 그렇다면 그 ‘당연함’과 ‘불안함’은 어디서 올까? ‘사위(남자)는 손님, 며느리(여자)는 일꾼’이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답은 정해져있다. 지독하고도 뿌리 깊은 가부장제다.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로 구성된 한국사회에서 결혼 후 여성은 시‘댁’의 사람이 되고, 식구 중 가장 낮은 지위에 속하면서도 집안의 갖가지 대소사를 챙겨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주인공 민사린은 며느리이자 아내로서 갖게 되는 각종 책임에 대한 불합리성을 이제 막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상황을 헤쳐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렇다면 현실의 민사린들은 어떨까? 그들은 과연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결혼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이미 결혼한, 혹은 결혼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20~40대 여성 20명에게 결혼 후 며느리와 아내로서 갖게 되는 역할과 책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웹툰 ‘며느라기’ ⓒ수신지 작가
웹툰 ‘며느라기’ ⓒ수신지 작가

◇“사위는 백년손님, 며느리는 ‘도리’ 지켜야 하는 일꾼” 

여성들이 결혼 후 가장 힘든 점으로 꼽은 것은 “시댁과의 관계” “가사노동과 육아” “크고 작은 집안 행사를 모두 챙겨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결혼 6년차라는 이현희(가명·37·서울 영등포구)씨는 “결혼 전에는 부모님 생신 정도만 챙겼고 가족 전체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제사나 명절에 준비할 것도 특별히 없었다. 김장도 따로 하지 않아서 그냥 내 몸 하나만 잘 건사하면 됐다”면서 “그런데 결혼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시댁 제사와 명절, 시부모님 생신, 친척 모임까지 내가 챙겨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더라”고 토로했다.

특히 그는 시댁과 갖는 주기적인 모임에 물리적인 노동력과 감정노동이 뒤따른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이씨는 “차로 10분 거리에 사는 시댁에서 2주에 한 번씩 식사를 한다. 가면 식사준비와 설거지는 거의 내 몫이다. 그런데 남편은 혼자 사는 어머니가 안쓰러우니 자주 가자고 한다”며 “그 마음을 이해하지만 시어머니 댁만 가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짜증난다. 또 본인은 넉살이 없어 장모님께 전화 드리기 부담스럽다면서 나에게는 자기 어머니를 잘 챙겨달라고 하더라. ‘효도는 셀프’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더 큰 싸움이 될까봐 꾹 삼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혼 전으로 돌아간다면 결혼에 대해 좀 더 심사숙고 할 것 같다. 결혼은 두 사람만의 결합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에서의 결혼은 ‘나와 너’의 결합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안 간의 관계 맺음으로 확장된다. 그 과정에서 보다 많은 책임과 희생을 요구당하는 이는 여성이다. 김지은(가명·36·인천 부평구·비혼)씨는 “결혼을 하면 남성도 사위나 남편으로서 역할을 갖게 되지만 여성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남자는 백년손님에 가깝다면 여자는 며느리와 아내로서 도리를 지켜야 한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고 말했다. 

결혼 후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동생을 곁에서 지켜봤다는 김씨는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고 주부로 살던 동생은 아이를 낳으면서 ‘나’가 아닌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더라”며 “제부가 승진 후 야근이 잦아지면서 가사와 육아는 모두 동생의 몫이 됐다. 한번은 동생이 심한 독감에 걸렸는데 시어머니가 안부전화를 하면서 자기 아들 아침밥 걱정부터 했다는 얘길 전해 듣고 한숨이 나왔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어 김씨는 “며느라기를 보면서 배우자를 선택할 때 경제력과 인성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이 얼마나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리고 있는지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웹툰 ‘며느라기’ ⓒ수신지 작가
웹툰 ‘며느라기’ ⓒ수신지 작가

◇“친정보다 시댁 우선해야 하는 것 불합리해”

여성들은 결혼 후 친정보다 시댁을 우선해야 하는 것에서 특히 불합리함을 느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남1녀를 둔 결혼 23년차 임채원(46·서울)씨는 “시댁에서 며느리에게 바라는 점이 너무 많아 부담스럽고 힘들다. 그로 인해 친정에는 자연히 소홀하게 되더라. 그래서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다”며 “결혼 전으로 돌아간다면 독신으로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결혼 16년차라는 40대 여성 전모(47·서울 서대문구)씨는 “결혼 후 시댁에서 가장 많은 불합리함을 느꼈다”며 “며느리가 사위보다 해야 하는 일이 월등히 많고 우리사회가 그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혼 전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또 결혼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혼자서 해보고 싶은 게 많다”며 “결혼하지 않고 파트너와 함께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결혼 20년차에 자녀 2명을 두고 있다는 강민성(46·서울)씨는 “결혼 후 내 책임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며 “제사, 어버이날, 명절, 생신 등 각종 행사 때 친정보다는 시댁이 우선시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그는 “결혼 후 나 자신이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 힘들었다”며 “결혼 전으로 돌아간다면 혼자 좀 더 자유를 느끼고 싶다”고 밝혔다.

30대 여성 이주희(32·경기 평택)씨도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언제나 시댁이 먼저다. 친정을 먼저 가고 싶은데 남편이 싫어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며 “(결혼 전으로 돌아간다면) 다시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 시댁 부모님들은 며느리를 너무 당연하게 부려먹는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결혼하면 누군가의 엄마, 아내, 며느리로 살아가야 한다. ‘나’라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라며 “아이가 아플 때도 괜히 내가 죄인이 되는 것 같다. 시댁에 건강한 아이를 낳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인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결혼 2년차라는 이수지(가명·27·대전)씨는 결혼 1년차 때 시어머니 생일상 차리기, 임신 초기 시댁 방문 등에 대해 남편과 논쟁을 벌이며 매우 힘들었다고 당시 소회를 전했다. 이씨는 “임신 7개월 때 시댁 식구와 펜션에 놀러갔는데 거기서 시어머니 생일상을 차려드렸다”며 “왜 시어머니들은 며느리가 생기면 생일상을 받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엄마 생일상도 차려본 적 없는데 시어머니 생일상을 차리고 있다는 생각에 서글펐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또 이씨는 “임신 초기와 말기 때 장거리 이동은 금지 사항이었는데 시어머니가 ‘당장 애 나올 것도 아닌데 안 오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웹툰 ‘며느라기’ 주인공 민사린(오른쪽)과 그의 남편 무구영이 결혼식 후 하객들에게 축하를 받고 있다. ⓒ수신지 작가
웹툰 ‘며느라기’ 주인공 민사린(오른쪽)과 그의 남편 무구영이 결혼식 후 하객들에게 축하를 받고 있다. ⓒ수신지 작가

◇여성은 결혼 후 남성보다 더 많은 부담 떠안아 

이들의 토로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결혼 후 각종 책임과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취업준비생인 20대 여성 남모(24·서울 강북구·비혼)씨는 “여성들이 결혼 후, 특히 출산 후 직장 내에서 업무나 승진 등에 불이익을 받는 걸 주변에서 많이 전해 들었다. 그러나 남자들은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후에도 직장에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면서 “여자는 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한국사회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어 결혼관에 대해 “언젠가 마음이 맞는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하겠지만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여성의 결혼 여부는 경제 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서울시가 지난 20일 발표한  ‘2017 성(性)인지 통계: 통계로 보는 서울 여성’에서 기혼여성 취업자 중 상용근로자(고용계약 1년 이상) 비율은 44.2%로 비혼여성(61.1%)보다 16.9%p 낮았다. 반면 남성은 비혼남성 53.6%, 기혼남성 54.1%로 혼인상태별 상용근로자 비율 차이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의 승진, 노동시장에서의 차별, 성폭력 등 공적 가부장제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도 심각하지만, 여성의 일상을 파고드는 성차별 또한 중요한 문제”라고 짚었다. 이 교수는 “가부장제 문화를 해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웹툰이나 소설 등의 재현물을 통해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매우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며 “그것들을 통해 20대 여성이나 비혼 여성들은 다른 방식의 삶을 꿈꿀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현재 많은 젊은 세대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고, 기성세대는 그들의 목소리에 세심하게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특히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는 것, 애 낳지 않는 것을 이기적인 것으로 볼 게 아니라 그들의 생존전략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2040 여성 폭풍 공감, 웹툰 ‘며느라기’

웹툰 ‘며느라기’(작가 수신지)는 결혼 후 며느리가 된 여성이 겪는 성차별과 불합리함을 그려낸 작품이다. ‘시댁 내에서의 불평등’을 만화로 쉽게 풀었다. 기존의 웹툰 플랫폼이 아닌 작가 개인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연재한다는 점도 색다른 요소로 작용했다. 작가의 세밀한 관찰력과 담담한 화법, 편안한 그림체는 독자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중 가장 일등공신은, 작품 기저에 깔린 고발의 목소리다. 며느라기는 가부장제와 결혼제도 하에서 여성들이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남성들이 그동안 어떤 방식으로 가부장제를 답습해왔는지 낱낱이 드러낸다. 며느라기의 최근화는 ‘좋아요’가 3만개가 넘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며느라기를 ‘2017 오늘의 우리만화’에 선정했다. 심사위원회는 “신혼인 여성이 평범해 보이는 일상 안에 깔린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인식해가는 과정을 거악에 대한 묘사 없이도 서늘하게 그려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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