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여년 세워진 세계 최초

사회적 공동주택단지 ‘푸거라이’ 

연간 임대료 88유로센트

은화 1냥, 3번의 기도,

‘존경할 만한 사람’ 만

살 수 있는 도시 속의 도시

 

아우구스부르크 시청 앞 광장에는 지금도 풍요와 번영을 기원하는 여신 동상으로 장식한 대형 분수가 물을 뿜어내고 있다. ⓒ박선이
아우구스부르크 시청 앞 광장에는 지금도 풍요와 번영을 기원하는 여신 동상으로 장식한 대형 분수가 물을 뿜어내고 있다. ⓒ박선이

김영희 조형작가의 책꽂이에서 『세계를 걷는다-서독편』을 발견하고 환희의 비명을 질렀다. ‘공연 페스티벌 참가’라는 이번 여행의 기본 콘셉트에 몰두한 나머지, 여행 안내 책자 한 권 챙겨오지 않은 허당 모녀에게 드디어 지침서가 확보됐기 때문이다.

책은 고색창연했다. 요즘 같아서는 무슨 소린지 모를 ‘해외여행 자유화’(그렇다, 그 전에는 업무 출장 외에 일반 여행은 어려웠다)가 막 시작된 1989년 초판이다. 일본책을 그대로 번역해서 ‘고향 입맛에 맛는 스시집’이 중요 정보로 나올 정도로 무신경한 부분이 있지만, 당시에는 엄청 베스트셀러였다. 독일 통일 전 ‘서독편’이라 동독 부분이 핑크색으로 칠해져 있긴 했지만, 어차피 우린 뮌헨을 중심으로 바이에른 지방만 다닐 거니까 노 프라블럼! 영화 ‘파리로 가는 길’, 원 제목 ‘파리는 거기 있어요(Paris Can wait)’란 말처럼, 독일은 거기 있으니까. 중세 이후 600년 넘게 변하지 않은 도시들이 뭐 고작 28년 동안 변했겠어?

그래서 첫 목적지로 찍은 곳이 아우구스부르크. 이름에서 확 느껴지듯, 고대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이름을 딴 도시다. 잠깐 세계사 공부. BC(기원전) 15년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로마 군단이 알프스를 넘어 게르만 땅으로 진군했다. 남프랑스의 수도 유적에서 보듯, 로마제국은 강에서 상수도를 끌어와 깨끗한 마실 물을 확보했고, 야외극장을 지어 문화생활을 했던 고도의 문명 사회였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첫 장면을 기억하시는가? 빗자루를 거꾸로 꽂은 것 같은 장식 투구에 갑옷을 갖춰 입은 로마군과 곰털, 늑대털을 뒤집어 쓴 것 같던 게르만인들의 전투 장면을? 로마의 눈에 비친 게르만인들은 사냥과 약탈로 살아가던 야만인이었다. 알프스를 넘어 만난 세상이 얼마나 기막혔으면 야만의 땅, 즉 바바리아(Bavaria)라고 불렀겠는가. 아우구스부르크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군대의 병참 도시로 번영의 터를 닦았다. 중세에는 독일 은화를 모두 이곳에서 찍었다고 한다. 시청 앞 광장에는 지금도 풍요와 번영을 기원하는 여신 동상으로 장식한 대형 분수가 물을 뿜어내고 있다.

 

아우구스부르크에는 세계 최초의 사회적 공동주택단지인 ‘푸거라이’가 있다. ⓒwww.fugger.de
아우구스부르크에는 세계 최초의 사회적 공동주택단지인 ‘푸거라이’가 있다. ⓒwww.fugger.de

아우구스부르크에 가려고 한 이유는 세계 최초의 사회적 공동주택단지인 ‘푸거라이’(Fuggerei)를 보는 것이었다. 1521년 이 도시의 금융가이자 대 부호였던 야콥 푸거가 지은 푸거라이는 67개의 건물, 교회와 박물관, 식당, 카페, 기념품 가게와 공원, 142가구의 살림집이 있는 ‘도시 속의 도시’다. 공식 홈페이지(www.fugger.de) 정보에 따르면 푸거라이는 1521년 ‘도움이 필요한’ 아우구스부르크 시민을 위해 지은 이래 지금까지 그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1만5000㎡(약 4500평)의 주택단지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7개의 출입문과 정식 도로명을 지닌 골목, 분수대와 광장을 갖췄다. 가구별로 독립된 출입문과 뒤뜰을 둔 타운하우스 형태 3층집은 모두 노란색을 칠해 인형의 집처럼 앙증맞고 예뻤다. 지난 500년간 주민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증조부였던 건축가 프란츠 모차르트로, 그가 살던 집에 명패도 붙어있다. 장바구니를 든 주민들이 집에 들어가는 모습에서 진짜 이곳이 오늘날도 ‘살아있는’ 주거 공간이란 실감이 났다. 2017년 연간 임대료는 88유로센트. 우리 돈으로 약 1130원이다. 공산주의 국가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일이!!!

 

세계 최초의 사회적 공동주택단지인 ‘푸거라이’에는 아우구스부르크 시민이며, 가톨릭 신자, 존경할만한 사람만이 입주할 수 있다. ⓒ박선이
세계 최초의 사회적 공동주택단지인 ‘푸거라이’에는 아우구스부르크 시민이며, 가톨릭 신자, 존경할만한 사람만이 입주할 수 있다. ⓒ박선이

집 구경, 골목 구경을 하던 딸이 정말 부러워했다. 지금 서울에서는 실 사용면적 7평짜리 오피스텔도 보증금 제외하고 월 50~60만 원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딸과 나의 궁금증은 푸거라이 운영 철학을 보며 조금은 풀렸다. 1521년 이 주택단지를 지을 때 푸거는 유럽 최고의 금융가로 왕궁을 사들일만한 부자였다. 루터의 종교개혁을 촉발한 ‘면죄부’ 판매를 독점했던 야콥 푸거가 푸거라이를 완공한 것이 종교개혁 4년 뒤였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푸거는 무조건 ‘가난한 사람’을 돕기로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푸거라이 입주 자격을 아우구스부르크 시민이며, 가톨릭 신자이며, 존경할만한 사람으로 규정했다. 입주 조건은 독일 은화(플로린) 1냥과 하루 3번의 기도(주기도문, 성모송, 사도신경),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는 부분이다. 그는 장인(craftsmen)과 일용 노동자(day labourers)가 구걸을 하거나 비참한 가난 속에 살아서 안 된다고 선언했다. 진짜 가난한 극빈자나 거지를 위한 정책은 정부나 교회에서 맡아야 한다고 했다.

독일 은화는 1521년 무렵 도시 장인의 1주일 치 봉급에 해당한다. 즉 연봉의 53분의 1을 주택임대료로 낸 것이다. 그에 비하면 오늘날 임대료는 상징에 불과하다. 푸거라이를 운영하는 푸거라이 재단은 이 사회적 공동주택의 사명이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해 자립하려는 사람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회적 책무를 감당하되, 자립을 요구하는 16세기 자본가의 철학이 21세기에도 뚜렷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평범한 주택가 한 가운데 위치한 홍등가. 독일에서는 강제, 구금, 인신 매매 등 범죄행위만 없는 성매매가 합법이다. ⓒ박선이
평범한 주택가 한 가운데 위치한 홍등가. 독일에서는 강제, 구금, 인신 매매 등 범죄행위만 없는 성매매가 합법이다. ⓒ박선이

푸거라이를 찾다가 다른 것도 찾았다. 불법 주차 딱지를 떼이거나 견인당하는 데 턱없을 정도로 공포증이 있는 나는 푸거라이 주변에서 차 세울 곳을 찾다가 골목골목 들어가서 아무 표시가 없는 주차장을 발견했다. 그런데 건너편 2층집 창가에서 젊은 여성이 차에서 내리는 우리 모녀를 빤히 내다보는 것이다. 네모난 창문에 장식 등을 꾸몄기에 여고생이나 대학생 쯤 되는가 싶었다. 혹시 거주자 우선 주차장인가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런 표시가 없다. 가서 물어볼까 하다가 뭔가 좀 어색해서 빨리 다녀오기로 했다.

푸거라이를 보고 약간 흥분해서 돌아왔는데, 이젠 그 집 말고도 그 거리 모든 집 창문에 줄줄이 발그레 한 장식등이 켜진 것 아닌가. 그렇다. 평범한 주택가 한 가운데 문자 그대로 홍등가가 있었던 것이다. 동양인 중년 여성과 아가씨가 이 동네엔 왜 나타났나, 하고 봤을 것이다. 딸도 눈치를 챘다. 한국은 성매매금지법이 제정돼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집창촌이 사라졌지만 독일에서는 성매매에 강제, 구금, 인신 매매 등 범죄행위만 없다면 완전히 합법적인 자유업이다. 단, 국세청에 사업자 등록을 하고 소득세를 내야한다. 그러나 과연 이 ‘자유업’에 종사하는 여성들 가운데 얼마나 ‘자유’로이 직업을 택했을까. 딸이 물었다. 동유럽 여성들이 서유럽 성매매 산업에 동원되고, 거대한 성매매 지하 조직이 종종 뉴스가 되는 마당에.

Tip. 로만틱 가도

로마 군대가 알프스를 휘돌아 북으로 북으로 진군했던 길을 로만틱 가도, 즉 로마의 길이라고 부른다. 알프스 북쪽 기슭의 퓌센에서 출발하는 로만틱 가도는 가장 북쪽 뷔르쯔부르크까지 약 300km에 이른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경제 부흥을 꿈꾸던 서독이 새로운 개념으로 제시했다. 이 가도를 따라 로텐부르크, 뇌르트링겐 등 중세 도시들이 잇닿아 있다. 가장 남쪽 도시인 퓌센 근처에는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가 세운 노이슈반슈타인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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