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인 여성캐릭터와 여성중심의 서사가 담긴 ‘여성영화’에 대한 목마름이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남성이 무리지어 나오고 남성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속칭 ‘알탕영화’에 지친 탓이겠지요. 이에 <여성신문>은 배우, 감독, 영화 제작자, 평론가, 영화인협회 등 영화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 한국 영화판의 현황을 들여다보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여성영화에 대한 

여성감독, 배우, 관객의 

열망 나날이 높아져

“문화 다양성 확보 못하면

영화산업 언젠가 도태할 것”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와 여성 중심의 서사가 담긴 ‘여성영화’를 요구하는 관객이 점차 늘고 있다. 남성이 무리지어 나오고 남성 중심의 서사로 진행되는 속칭 ‘알탕영화’에 지친 탓으로 보인다. 젠더 이슈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면서 남성 중심의 영화에 대한 비판 또한 터져 나오고 있다. 영화 ‘군함도’, ‘브이아이피’ 등은 스타 배우를 대거 기용해 흥행몰이에 나섰지만 여성을 남성의 서사를 위한 도구로 이용하거나 성적 착취 혹은 살해 대상으로만 그려 지적을 받았다. 소위 대작 영화들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고 줄지어 고배를 마시면서 영화산업 내에서도 여성주의 영화에 대한 시각이 미약하나마 달라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아버지의 이메일’, ‘암사자(들)’ 등을 연출하고 저서 『그건 혐오예요』 를 출간한 홍재희 감독은 “남성연대 서사, 남성이 그리는 여성 캐릭터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지금이 영화산업을 바꿀 수 있는 기회다. 여성의 목소리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면 결국 또 취향의 문제로 전락할 것”이라며 “이러한 목소리를 공개적인 자리로 끌고 나와 담론으로 확장시켜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바라는 여성영화에 대해 “상대를 대상화하거나 소수자의 인격을 지우지 않고도 극을 이끌어가는 영화”라고 말했다. 홍 감독은 “이성애자 남성의 이야기를 복사하는 영화는 더 이상 필요 없다”며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영화는 여성이 세상을 바라보는 다채로운 시각을 담은 영화”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2000년 후반부터 영화가 거대담론 서사로 바뀌면서 소위 ‘국뽕’영화, 블록버스터, 액션스릴러밖에 남지 않게 됐다. 그 속에서 여성은 잠시 벗고 나왔다가 사라진다”면서 “여성이 자신의 성에 대해 탐구하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느끼는 섹슈얼리티를 얘기할 수 있는 영화가 나오길 바란다”고 제언했다.

영화 제작자가 원하는 여성영화는 무엇일까. 영화제작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내가 바라는 여성영화는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고, 관음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고, 남성적 시선으로 필터링하지 않고, 등장인물 중 여성을 형식적으로 끼워 넣지 않는 영화”라며 “나아가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여성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말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심 대표는 영화 ‘접속’(1997),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2011), ‘카트’(2014) 등에 이어 최근에는 ‘아이 캔 스피크’를 선보였다. 영화사에 굵직한 기록들을 남기며 영화에 꾸준히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왔다. 

“여성영화가 나와야 한다”는 외침에는 관객의 목소리만 담긴 것이 아니다. 여성 배우들의 절박한 요구 또한 포함돼있다. 여성영화의 증가는 곧 여성 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는 활동 영역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15일 한겨레21이 마련한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민주주의’ 강의에서 ‘음모론 시대의 남성성과 검사 영화’를 주제로 강연한 페미니스트 문화평론가 손희정씨는 “(여성 캐릭터들은) 대개 대사가 열 마디 안쪽이고, 대체로 성상납을 하거나 강간당하거나 혹은 살해당한다”며 “남배우들은 자신의 연기를 닦고 훈련할 장이 있지만 여배우들은 훈련받을 공간이 없다”고 지적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남성영화에 밀려 여성 배우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에 여성 배우들은 말하기 시작했다. 배우 엄지원은 지난해 개봉한 ‘미씽’을 홍보하며 영화계 현실을 꼬집었다. “남자들 피 흘리고 욕설 난무하는 영화 보느라 다들 얼마나 피곤했나.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렸고 새로운 이야기를 할 때가 됐다” “충무로에 좋은 남자배우는 많은데 좋은 여자배우는 없다고 한다. 여자배우가 없어서 없었을까, 아니면 쓰이지 않아서 없었을까.”

영화 ‘미옥’으로 돌아온 배우 김혜수는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포스터에 총 든 여성캐릭터가 나왔다고 해서 여성 영화가 완성된 건 아니다. 일부라 하더라도 관객들이 진심으로 원하고 있으니 이제 제대로 해야(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여성 캐릭터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연출가가 많이 있어야 한다.”

남성들만 무리지어 나오는 엇비슷한 스토리의 영화들로는 한국 영화계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이제 여성 영화감독, 배우, 관객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다. 조혜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는 12일 오후 서울 중구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린 ‘성평등 구현을 위한 영화정책 포럼’에서 “현재 한국 영화계는 인구 구성의 반인 여성의 이야기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한국 영화산업이 문화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언젠가 도태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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