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검사와 작가가 본 ‘마녀의 법정’

주인공 검사·판사·변호사·

성폭행범도 모두 여성

원래 제목은 ‘여검사들’

검찰 문화 달라지고 있지만

남성중심 조직 구조 여전

대중문화 콘텐츠 통한

반성폭력, 성평등 확산 중요

 

KBS2 ‘마녀의 법정’의 주인공으로, 출세 지향적이며 법정에서 승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마이듬(정려원)은 공중파 드라마에선 쉽게 볼 수 없던 캐릭터다. ⓒKBS2TV
KBS2 ‘마녀의 법정’의 주인공으로, 출세 지향적이며 법정에서 승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마이듬(정려원)은 공중파 드라마에선 쉽게 볼 수 없던 캐릭터다. ⓒKBS2TV

지난달 말 종영한 KBS2 ‘마녀의 법정’은 여성·아동 대상 성범죄를 집중 조명한 드라마다. 여성 주인공이 나온 법정 드라마가 처음은 아니지만, 실제 검찰의 28%에 불과한 여성들이 중심이 된 검사 드라마는 드물다. 여성아동범죄전담부 리더인 ‘정의, 소신, 좌천의 아이콘’ 민지숙 부장검사(김여진), 10년 차 수사관 손미영(김재화), 수석검사 장은정(전익령) 등이다. 특히 출세 지향적이며 법정에서 승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마이듬(정려원)은 공중파 드라마에선 쉽게 볼 수 없던 캐릭터다. 서사의 몸통은 남성 기득권자들의 느와르이긴 하나, 여성에게 수동적이고 보조적 역할만 주던 젠더 공식을 깨 호평을 받았다. 

극중 여아부가 담당하는 사건들은 실제 범죄와 맞닿아 있다. “무죄를 받았으면 무고로 갚는다. 이게 성폭행 재판의 기본”이라는 가해자, 언론 보도 등으로 신상이 알려져 고통받는 피해자, 피해자의 처신을 비난하는 시선, 언론의 선정적 보도 행태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가해자가 마신 술은 참작 사유고, 피해자가 마신 술은 범죄의 원인 제공으로 보는 왜곡된 사회 통념도 보여준다. 여성가족부가 제작 지원한 작품이다. 방영 시작 2주 만에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고, 지연방송 한 차례를 제외하면 동시간대 1위를 놓친 적 없다.

드라마의 안과 바깥을 이어보며 못다 한 이야기들을 들어보고 싶었다. 몇 년간 이 시나리오를 준비한 정도윤 메인작가와, 바쁜 와중에도 이 드라마만큼은 챙겨 봤다는 문지선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여성아동범죄조사부 검사를 지난 8일 만났다. 

- 어떤 계기로 만들게 됐나.

정도윤(정) : 아무도 안 한 주제라서 했다. 여성·아동 대상 성범죄를 다룬 드라마가 없었다. ‘돈 크라이 마미’ 등 성범죄를 다룬 영화는 많이 나왔는데, 대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직접 복수하는 내용이라 찝찝했다. 사법기관을 통한 정의 구현은 불가능한 걸까? 가끔 성범죄 사건을 어렵게 추적해 기소하는 검사들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이런 검사가 실제로 있다니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더라. 

문지선(문) : ‘마녀의 법정’은 최근 사회 현안으로 떠오른 젠더폭력 이슈를 발 빠르게 다뤘다. 디지털성범죄만 봐도, 문재인 대통령이 심각한 문제라고 언급했지만 그게 뭔지도 잘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범죄가 있고 엄청난 피해를 낳는다는 걸 극화해서 보여주는 게 파급력이 크다.

- 주인공 검사도, 부장검사도, 판사도, 변호사도, 기자도, 성폭행범도 여성이다. 

: 원제는 ‘여검사들’ 이었다. 처음부터 여성만 넣으려고 했다기보다는, 성범죄를 다룬 드라마를 공중파 방영한다면 여성이 많은 그림이 덜 불편할 거라고 봤다. 익숙한 4~50대 남성보다 여성이 부장검사를 맡는 편이 시청자들이 보기에 편안하지 않을까? 여성 피의자를 남자 검사 둘이서만 조사하는 그림은 불편하지 않나? 여자 가해자(2화)도 나오는데, 남자 판사라면 공정하게 판단하지 않고 살짝 봐줄 것 같았다. 그렇게 여성들이 늘었다. 나중에야 깨달았다. 대본 리딩 자리에 갔더니 여배우들이 쭉 앉아있고 남자는 둘 뿐이었다. 

: 작가님은 여성이 많아야 자연스럽고 편안하므로 여성을 넣으셨다지만, 남자들이 보기엔 안 그럴 거다. 그리고 여성도 다수일 땐 남성을 성희롱할 수 있다. 조심해야 한다.(웃음) 주체적인 여성을 그린 건 의미 있는 시도다. 요새 김숙 씨, 박나래 씨 등을 앞세운,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담은 대중문화 콘텐츠가 인기이기도 하고. 

 

KBS2 ‘마녀의 법정’ 속 여성아동범죄전담부 소속 검사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마이듬 검사(정려원), 민지숙 부장검사(김여진), 서유리 검사(최리), 손미영 수사관(김재화), 장은정 수석검사(전익령). ⓒKBS2TV
KBS2 ‘마녀의 법정’ 속 여성아동범죄전담부 소속 검사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마이듬 검사(정려원), 민지숙 부장검사(김여진), 서유리 검사(최리), 손미영 수사관(김재화), 장은정 수석검사(전익령). ⓒKBS2TV

 

KBS2 ‘마녀의 법정’ ⓒKBS2TV
KBS2 ‘마녀의 법정’ ⓒKBS2TV

: 마이듬은 주인공이니 능력이 있어야지. 똑똑하고 일 잘하는 여자들, 속물적이어도 할 말은 하는 캐릭터가 좋다. 정의롭고 분노에 찬 여성 캐릭터, 나쁘진 않은데 아마추어 같기도 하다. 실제 검사들은 하루에 사건 15건씩 처리한다는데 하나하나에 분노할 수 있을까. 그렇게 묘사하면 시청자가 보기에도 너무 피곤할 듯했다. 사건은 담백하게, 검사들의 모습은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극중 여성 검사들 스타일에도 신경 썼다. 바쁜데 어떻게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겠나. 여성 검사들 평소 의상이 검은색, 곤색, 회색, 흰색 딱 4색이더라. 효도신발, 워킹화 같은 신발 신고. 정려원 씨에게도 그렇게 주문했다. 옷 굉장히 잘 입는 분인데도 그렇게 입고 나가서 좋았다. 물론 드라마라지만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많이 들었다. (마이듬이) 7년 차 검사고 출세를 포기했다지만 너무 선배한테 대드는 거 아니냐고. 

: 일리 있는 지적이다. 검찰은 수직적 위계질서에 기초한 조직이고, 내부엔 아직도 여성의 실력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있다. ‘여성은 마음이 약해서 제대로 못할지도 모른다’ 식이다. 여성아동범죄조사부도 남녀 성비를 반반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특수부는 안 그러는데. 

- 극중에선 검찰 내 성차별도 다룬다. 마이듬은 자신이 해결한 병역 비리 사건의 브리핑 기회도, 특수부 발령 기회도 남성 선배에게 빼앗긴다. 직속 상사인 부장검사의 성추행 사건을 고발한 대가로 좌천된다. 

: 오 부장(전배수)이 회식 자리에서 여기자를 성추행하곤 사건을 은폐하려 드는 모습이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오 부장 역 배우의 연기가 너무 리얼해서 그 분 딸이 ‘우리 아빠 왜 저러냐’며 울었다더라.

: 극중 여성들이 그건 성희롱이라고 명확하게 지적하는 장면이 시원하고 좋았다. 실제 검찰 룸살롱 문화는 많이 사라졌다. 문제는 남성중심적 조직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했느냐다. 

: 여성이 검찰 조직 내에서 승진하고 목소리를 내는 데 최대 걸림돌은 육아 문제일 것 같다.

: 맞다. 육아를 하지 않는 남성의 삶을 표준으로 하는 조직 문화는 여전하다. 요즘은 육아휴직을 많이 쓰는 추세고, 검찰 내에선 계속 인사가 있으니까 업무 공백을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임신, 육아휴직, 난임으로 인한 병가... 이런 게 이어지다 보면 성취를 보여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커리어에 치명타가 된다. 발령 때문에 아이를 아예 친정에 맡겨두는 여성 검사도 있다. 공공기관인 만큼 선도적으로 변화해야 하는데 현실을 보면 많이 아쉽다. 

: 직업을 막론하고 여자는 아이가 있으면 전쟁이다.  

: 결국 남성중심 구조가 문제다. 검찰 조직엔 애초에 여성이 적다. 지난 10년간 검사장 아래로는 한 기수에 3명 정도만 여성이었다. 아직도 여성 비율이 30%가 안 된다(편집자주 : 여성 검사는 2000년 전체 검사의 2.4%(29명), 2015년 28.2%(559명)였다.). 제가 13년 차인데, 부장검사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여성이 정말 없다. 치열한 승진 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여성도 드물다. 일에 대한 열정이 없는 게 아닌데 경쟁을 피한달까. 남성들은 승진 목표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들은 업무 이외에도 육아 등 여러 역할을 동시에 소화하려니 그런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조직에서 인정받는 곳보다 마이너한 곳에 주로 머물게 된다. 

고위직, 정책결정직에 여성이 가야 바뀐다. 의사결정권자의 DNA가 조직을 결정한다. 물론 소수의 여성이 고위직에 오른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다른 여성들의 입장을 대변한다기보다는 ‘남성 검사 엑기스’ 같은 느낌일 수도 있으니까. 여성이 늘어나는 게 중요하다. 어느 조직이건 의미 있는 비율의 여성이 있어야 한다. 

성범죄 본질은 위계를 이용한 폭력

: 실제 피해자에 대한 편견도 깨고 싶었다. 모두 미디어 속 전형적인 피해자처럼 행동하진 않더라.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여러 공판에 참석했는데, 한 번은 성폭행당할 뻔한 여성 피해자가 법정에 나왔다. 남성 가해자를 너무 때려서, 폭행죄로 역고소 당할까 봐 신고를 망설였다더라. 피해자는 가해자를 지목하며 ‘쟤 왜소해서 내가 제압할 수 있을 정도였다’면서도 ‘저놈이 어버이날 전날 범행하는 바람에 내가 자식들을 못 봤다. 화나고 창피했다. 꼭 처벌해 달라‘고 했다. 

: 극화 과정에서 일부 현실 왜곡은 불가피하지만, ‘마녀의 법정’은 성범죄의 본질이 위계를 악용한 폭력이라는 점을 대체로 잘 보여줬다. 다만 여교수가 남성 제자를 성폭행하는 에피소드의 경우, 여성이 성폭행을 저지르는 사건을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깊이 와 닿진 않았다. 

: 수위를 조절하느라 그 정도지, 실제 판결문을 보면 엽기적인 사건이 너무 많다. 시원한 판결은 드물다. 특히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 사건이 그렇다. 우리나라 법정 성범죄 형량이 외국에 비해 낮지 않은데 왜 그럴까. 판사가 가해자의 입장을 고려한다더라. ‘주택부금도 남았고 자식도 둘 있고, 가해 증거는 불분명한데 내가 피해자 말만 믿고 이 남자를 힘들게 만들어도 되나’ 식으로. 

: 사실 성범죄만 양형이 낮다고 볼 순 없다. 사회의 인권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장기형이 능사가 아니며 범죄자는 교화될 수 있다는 논의가 활발해졌다. 살인해도 징역 10년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성폭력은 살인보다 덜 중한 범죄라고 여겨지므로 3년 정도로 양형이 고정됐다. 또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와 합의하는데, 합의했다고 또 형을 깎아 준다. 

- 정부와 여당이 ‘젠더폭력방지기본법’ 제정 논의 중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한 인식과 근본 구조를 바꾸기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 여성에 대한 폭력은 개인적인 범죄가 아닌 사회 문제로 봐야 한다. 그 나라의 성별 불균형 정도가 여성폭력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조항 폐지 전만 해도 피해자가 ‘독하다’, 가해자에겐 ‘독한 년 만난 죄’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하루아침에 바뀔 것 같지 않다.

여성폭력에 대한 반응은 성별에 따라 다르다. 남성과 달리 여성은 피해자에게 감정이입한다. 여성들은 평소에 사건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느낀다. 실제 범죄 상황에서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무서워 저항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들은 ‘드라마 같은 데서 이런 상황을 많이 봤는데 무서워서 꼼짝 못했다’고 말한다. 이런 경우 법적으론 기소가 불가능하다. 성폭행으로 인정되려면 피해자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만 한다. 이런 한계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 일단 제대로 실형을 받는 가해자가 늘면 피해가 줄어들 것 같다. 가해자가 처벌받는 걸 봐야 피해자도 치유된다더라. 극중(12화)에 성폭행 피해자가 20년 만에 가해자가 처벌받는 걸 보고 치유된다는 내용의 에피소드가 있다. 시청자를 가르치는 느낌이라 재미는 없지만 꼭 넣고 싶었다. 

: 여성폭력이라는 주제가 무궁무진하다. 폭력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여성의 삶과 생각, 가장 아픈 부분을 조명할 수 있다. 다음엔 약간 깊게, 장르물처럼 또 다뤄 주시면 좋겠다.  

: 내년 방영 예정작 중 여성 원톱 법정물이 세 편이다. 다양한 시선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여가부의 제작 지원도 이번에 힘이 됐다.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한 반성폭력, 성평등 확산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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