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3차 정기포럼

진화학자 장대익 서울대 교수

‘공감의 반경과 제2의 기계 시대’

A.I.와 살아갈 미래

사회성은 진화할까

 

장대익 서울대 교수 ⓒ미래포럼
장대익 서울대 교수 ⓒ미래포럼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오래된 명제다. 사회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46억년 지구 역사에서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문명’을 건설하고 꽃피웠다. 장대익 서울대 교수는 “인간의 문명이 고도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공감능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다른 생물 종과 구분되는 인간의 강력한 사회성이 문명 건설과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우리가 앞으로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과도 ‘사회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인간의 사회성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발현될까.

장 교수는 11월 23일 서울 종로구 교보생명에서 열린 미래포럼(이사장 이혜경) 주최 3차 정기포럼에서 ‘공감의 반경과 제2의 기계 시대’를 주제로 강연했다. 진화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장 교수는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학사 졸업 후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생물철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학도로 출발했지만 과학철학자와 진화학자로 활동하며 진화론의 개념적 쟁점들과 사회성의 진화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최근 펴낸 『울트라 소셜』을 통해 진화생물학, 동물행동학, 영장류학, 뇌과학, 심리학, 행동경제학, 인공지능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 성과를 ‘초사회성’(ultra-sociality)이라는 키워드로 꿰어냈다.

“외계인 과학자가 지구에 도착해 45억년 지구 역사를 훑어보고 어떤 생명체가 인상깊었을지 질문하고 답을 받는다면 뭐라고 답할까요?”

장 교수는 조금은 엉뚱한 물음으로 강연 포문을 열었다. ‘외계인의 시선’으로 지구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자는 취지의 질문이었다. 그는 “호모 사피엔스는 20만년 전 지구상에 태어난 젊은 종에 존재감도 미미하지만 문명을 만들어낸 유일한 종이라고 생각하고 흥미롭게 관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화의 역사에서 인간이 침팬지와 분기된 건 600만년 전이다. 침팬지와 유전적 차이가 겨우 0.4%에 불과한 인간이 문명을 창조하는 동안 침팬지는 거의 변화 없이 진화했다. 왜일까. 침팬지와 인간의 결정적 차이 중 하나가 사회 집단의 크기에 있다고 장 교수는 짚는다. 로빈 던바는 인간의 신피질비 크기에 기초해 인간의 사회 집단 크기가 평균 150명 정도라고 예측한다. 한 사람이 제대로 사귈 수 있는 친구의 수는 최대 150명이라는 이야기다. 평균 54마리로 구성된 침팬지에 비해 2.7배나 큰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대화와 같은 사회적 상호작용이 진화됐다는 것이다.

 

장대익 서울대 교수는 11월 23일 서울 종로구 교보생명에서 열린 미래포럼 주최 3차 정기포럼에서 “인간의 문명이 고도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공감능력’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미래포럼
장대익 서울대 교수는 11월 23일 서울 종로구 교보생명에서 열린 미래포럼 주최 3차 정기포럼에서 “인간의 문명이 고도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공감능력’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미래포럼

장 교수는 인간에게만 있는 ‘공감 능력’에 대해서도 침팬지 실험 동영상을 통해 확인시켜줬다. 침팬지 두 마리가 협력을 해야 보상이 주어지는 실험에서 침팬지는 협력은 했지만 보상은 평등하게 분배하지 않고 자기 이익만을 챙겼다. 반면, 비슷한 실험을 인간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을 때는 상반된 결과가 나왔다. 똑같이 협력해도 한 명에게만 많은 보상을 주는 실험에서 많은 보상을 받은 아이가 자신의 것을 적게 받은 아이에게 나눠준 것이다. 침팬지와 인간을 가르는 차이가 여기서 나온다. 인간은 다른 생명에 비해 표정과 마음을 읽는 능력도 뛰어나다.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실제로 그 행동을 할 때 나의 뇌 속에서 벌어지는 것과 똑같은 일이 일어나게끔 해주는 ‘거울신경세포’도 인간에게만 존재한다.

인간을 “지구의 정복자”로 만든 공감 능력은 로봇과도 통할까. 보행로봇을 만드는 다이내믹스의 연구원들은 테스트를 위해 걷고 있는 로봇을 막대기로 밀거나 발로 차는 실험 영상을 공개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이 영상에 악플을 달았다. 고통을 당하지 않는 로봇임에도 인간을 닮았다는 이유로 연민을 느낀 것이다. 인간의 공감 능력은 이처럼 외적으로 인간과 닮을수록 커진다. 따라서 인간에게 반응하고 인간과 소통하는 로봇은 더 이상 기계 덩어리가 아니다. 어쩌면 인간은 사무치는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머지않아 로봇의 힘을 빌리게 될는지도 모른다. 장 교수는 “인간의 표정을 읽고 대화할 수 있는 로봇이 등장한 지금, 인간의 사회성은 발전과 퇴보의 기로에 서 있다”며 “영화 ‘허(HER)’에서처럼 사회에서 인간이 필연적으로 느끼는 소외감 등에서 벗어나 보기 위해 기계와의 소통에 의존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의 말을 인용해 “아직 ‘문명의 사춘기’인 지구가 풀어야 숙제”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