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청년포럼, 문화·예술이 젠더를 묻다’ 3차 포럼

뮤지션 오지은·작가 손아람·

스타일리스트 이윤정 강연

 

24일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열린 ‘2017 청년포럼, 문화·예술이 젠더를 묻다’ 3차 포럼엔 (왼쪽부터) 작가 손아람 씨,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 스타일리스트 이윤정 씨, 뮤지션 오지은 씨가 참석했다. 사회는 문화평론가 손희정 씨가 맡았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4일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열린 ‘2017 청년포럼, 문화·예술이 젠더를 묻다’ 3차 포럼엔 (왼쪽부터) 작가 손아람 씨,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 스타일리스트 이윤정 씨, 뮤지션 오지은 씨가 참석했다. 사회는 문화평론가 손희정 씨가 맡았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문화예술과 젠더라는 ‘핫’한 주제를 결합한 토크콘서트가 11월 24일 열렸다.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열린 ‘2017 청년포럼, 문화·예술이 젠더를 묻다’ 3차 포럼 무대엔 뮤지션 오지은·스타일리스트 이윤정·작가 손아람 씨가 섰다. 초대가수로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도 참석했다.

 

지난 24일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열린 ‘2017 청년포럼, 문화·예술이 젠더를 묻다’ 3차 포럼 무대에 오른 뮤지션 오지은 씨가 강연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24일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열린 ‘2017 청년포럼, 문화·예술이 젠더를 묻다’ 3차 포럼 무대에 오른 뮤지션 오지은 씨가 강연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홍대 여신” 딱지 붙인 여성들의 

음악, 제대로는 들어봤나

정규앨범 세 장을 낸 유명 싱어송라이터이자, ‘홋카이도 보통열차’, ‘익숙한 새벽 세 시’ 등을 펴낸 베스트셀러 작가인 오지은씨는 이날 ‘여성’이라서 겪은 차별과 편견을 낱낱이 이야기했다. ‘여신’을 자처한 적 없건만 그는 언제부턴가 “홍대 여신”이 됐다. 한 남성 평론가는 그에게 “왜 사랑 노래만 부르느냐”고 물었다. 

그는 “왜 여자가 하는 사랑 노래는 창작자의 테마로서 폄하 당할까”라고 반문했다. “‘여자가 하는 일’, ‘여성성’으로 분류돼 폄하 당하는 현상이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맥주 신나게 마시고 예쁜 여자들과 노는 내용의 음악을 하는 밴드도, 데미안 라이스나 넬 등 작품 대부분이 사랑 노래인 남성 뮤지션들도 그런 질문을 받을까요?” 

여성의 음악이 제대로 평가받고 있느냐도 생각해볼 문제다. 여성 뮤지션의 수 자체는 결코 적지 않지만, 음악적 성과를 인정받은 여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각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늘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하나의 집합으로 호명된다고 오씨는 지적했다. “마치 외계인들을, 희귀종들을 부르듯이 말이죠.” 한해의 대중음악계를 정리하는 권위 있는 시상식인 ‘한국대중음악상’ 역대 수상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오 씨가 지난 10년간 대상을 받은 10팀을 분석해 보니, 여성 멤버가 있는 팀은 두 팀(3호선 버터플라이, 로로스) 뿐이었다. 심사위원도 대부분 남성이었다. 

“과연 여성이 남성보다 음악을 못해서 여성 수상자가 없는 것일까요? 여성의 목소리, 여성의 서사는 오해받고 왜곡된 채,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제 생각은 과연 비약일까요?”

인디 음악계에 만연한 여성혐오와 성폭력은 여성 뮤지션이 소수자라는 또 다른 증거다. 지난해 밴드 ‘쏜애플’의 보컬 윤성현 씨는 “음악에서 자궁 냄새가 나면 듣기 싫어진다”는 혐오발언으로 질타를 받았다. 이런 문화를 성찰하고 개선하자는 목소리도 눈에 띈다. ‘#인디씬_내_성폭력’ 고발 해시태그 운동, ‘록 페스티벌, 인디씬 내 성폭력에 반대하는 서명운동’ 등은 “페미니즘이 낳은 긍정적인 변화”다. 

“노래하다가 아, 이게 ’자궁 냄새‘ 포인트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제 자신이 작아지는 경험을 한 적 있어요. 그런데 페미니즘은 ‘자궁 냄새’를 드러낼 힘, 나는 이대로 충분하며 내 음악을 들어주는 이들이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 같아요. (...) 어떤 페미니스트가 악다구니를 쓴 덕에 지금 제가 조금은 나아진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도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거고요.”

 

지난 24일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열린 ‘2017 청년포럼, 문화·예술이 젠더를 묻다’ 3차 포럼 무대에서 스타일리스트 이윤정 씨가 강연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24일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열린 ‘2017 청년포럼, 문화·예술이 젠더를 묻다’ 3차 포럼 무대에서 스타일리스트 이윤정 씨가 강연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가부장제의 부조리 경험한

예고생, “반항의 아이콘” 되다

1995년 데뷔앨범 ‘문화혁명’으로 가요계를 뒤흔든 3인조 펑크밴드 ‘삐삐밴드’. 메인보컬 이윤정 씨는 “반항의 아이콘”으로 이름을 날렸다. 붉게 물들인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카메라를 삐딱하게 바라보며 “꼰대스럽고 답답한 사회를 비아냥대는” 노래를 불렀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이씨는 여전히 주목받는 예술가이자, 스타의 비주얼을 창조하는 콘셉트 디렉터다. 동시에 ‘좋은 엄마’, ‘좋은 아내’라는 역할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자기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평범한 한국 여성이기도 하다. 

이날 이씨는 “저는 늘 가부장 시대의 산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제가 가부장제의 피해자”라고 고백했다. 10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는 발레를 전공하는 “소녀소녀한” 예고생이었다. 갑작스러운 허리 부상으로 발레리나의 꿈을 접으면서 음악에 빠져들었고, 음악을 통해 자유를 꿈꾸기 시작했다. 대학 불합격 통보를 받던 날도 그는 친구들과 술 마시고 놀다가 밤늦게 귀가했다. 화가 난 아버지가 그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싹둑 잘라버린 그 밤, 삶이 바뀌었다. 아버지의 폭력적인 행동에 충격받아 두문불출하던 이 씨는 가출해 “혼자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한국에선 대중적이지 않던 일렉트로닉 음악에 흥미를 느껴 디제잉을 시작했다. “빡빡 민 머리, 눈동자에 새까만 칠을 하고, 늘 욕을 하고” 다녔다. “불안한 만큼 강하고 괜찮아 보여야 했”기 때문이었는데, 그게 연예 관계자들의 눈에 띄어 러브콜을 받다가 ‘삐삐밴드’로 데뷔했다.

요즘 이씨는 설치미술가인 남편 이현준씨와 일렉트로닉 듀오 ‘EE’로 활동하며, 일렉트로닉 밴드 ‘베리베리’ 활동도 준비 중이다. 스타들의 ‘콘셉트 디렉터’로도 명성을 쌓고 있다. 지난 1월 파격적인 변신으로 호응을 얻은 ‘소녀시대’ 서현의 솔로 활동 콘셉트도 그의 작품이다. 

그러나 “모든 반짝이는 순간 뒤엔 어려움이 있다”. 직업을 바꾸고, 결혼해 애를 낳고, 나이가 들수록 “여자라서 겪는 불평등”을 곱씹게 됐다. “가부장적 집안에서 태어난 곱게 자란 둘째 아들”과 결혼한 이후, 이씨는 생업에 육아와 가사까지 도맡아야 했다. 일에 바빠 맹장이 터지고도 한 시간이 지나서야 병원을 찾기도 했다. 힘들지만 자신이 택한 길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게 이 씨의 신조다. 그의 자세를 지켜본 남편도 달라지고 있다. 차려준 음식만 먹던 남편이 스스로 설거지, 분리수거를 했고, 저녁식사도 늘 가족과 함께 하게 됐다. 

“여자라서 우리에게 오는 서러움이 분명 있어요. 우리의 엄마들이 그랬고 그의 엄마들이 그랬죠. 제가 엄마 역할을 하면서 하고 싶은 것도 한다면, 그걸 보고 자란 제 아이 세대부터는 ‘여자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그는 같은 고민을 하는 여성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불평등과 부당한 일을 겪게 되면 욕하고 침 뱉고, ‘뭐 이 X발’ 이런 자세로 살아가세요. 가부장 시대의 산물에 너무 기죽지 말길 바라요. 겁먹지 말고, 웃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하는 게 중요해요.” 

 

지난 24일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열린 ‘2017 청년포럼, 문화·예술이 젠더를 묻다’ 3차 포럼 무대에서 손아람 작가가 강연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24일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열린 ‘2017 청년포럼, 문화·예술이 젠더를 묻다’ 3차 포럼 무대에서 손아람 작가가 강연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남성 젠더의 권력 성찰

않으면 나도 가해자”

페미니즘이 여성들만의 목소리는 아니다. 이날 강연한 손아람 작가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페미니즘이 왜 한국 사회에 필요한지, 왜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지 이야기해 온 ‘남성 페미니스트’다. 소설 『소수의견』 , 『너는 나다: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공저)를 펴냈고, 힙합그룹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래퍼로도 활동했다.

이날 그는 자신이 “가해자의 위치에 선 경험, 남성 젠더의 권력을 자각하고 반성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손 작가는 지난해 JTBC 예능 프로그램 ‘말하는대로’에 출연해 한국 사회의 성차별을 주제로 관객과 대화했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핸디캡을 없애야 남성도 자유로워진다” “여자가 연애하기 어려운 사회에선 남자도 연애하기 어렵다” 등 시원시원한 발언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사실은 “여성 출연자가 나가면 감당할 수 없는 공격을 받을 것 같다는 제작진의 판단에 대신 서게 된 무대”였다. 방송 후 대중의 반응이 놀라웠다. “공격받을 각오를 했는데, 격려 메시지가 오더라고요. 충격받았죠. 제가 여자였다면 “종종 얘기 나눌 수 있는 사이면 좋겠다” “건강하세용”이라는 메시지를 받았을까요? “메갈이니?”라는 말만 들었겠죠.”

현실에선 남성과 여성이 절반쯤 공존한다. 대중문화 콘텐츠 속 세상에선 왜 여성들이 주변부로 밀려날까? “여성 캐릭터는 대개 남성과 동등한 비중도, 주체성도 갖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패널 5명 중 1명만이 여성인 경우도 있고, 아예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 ‘남성 예능’도 많다. 영화산업의 성차별을 지적하기 위해 고안된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한국 영화는 아직도 드물다. 손 작가가 직접 각본을 쓴 영화 ‘소수의견’도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는 “콘텐츠 창작자들의 무의식에 뿌리내린 남성중심주의가 원인”이라고 봤다. “창작물의 한계를 논하면서 그 사회의 평균적인 문화 수준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의도적으로 ‘여혐’을 저지르지 않아요. 살면서 관찰한 사례들을 무의식적으로 작품에 쓰게 되는 거죠. 부끄럽지만 저도 그랬습니다. ‘소수의견’을 쓰면서 ‘남성 1인칭 시점’을 택했고, 여성이 등장하긴 했지만 남성이 중심인 세계를 그렸죠.” 

손 작가는 “최근 페미니즘이 대두되면서 남성중심적 콘텐츠를 만들어온 이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체감한다”며 “저 자신도 여러 비판을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거듭할수록 여성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페미니스트들의 말에 귀를 틀어막는 남성들에겐 어떻게 말을 걸어야 좋을까. 손 작가는 “동양인이 존재하지 않거나, 제대로 대표되지 않고 ‘주변’으로 소비되는 백인 중심 헐리우드 영화를 예로 들면 쉽다”고 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동양인이 겪는 차별’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공감합니다. 주류(백인 남성)가 문제 삼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던 문제죠. 똑같은 구조를 가진 ‘성차별’엔 왜 그렇게 무감각합니까?”

그는 젠더 문제를 유쾌하면서도 효과적으로 호출하기 위한 새로운 문화 운동도 제안했다. ‘여성 무주연 부문’, ‘최고 혹은 최악의 여성인물 부문’ ‘가장 그럴법한 남성인물 부문’ 등으로 나누어 각각에 맞는 영화를 선정하는 ‘벡델 영화상’이다. ‘최악의 영화’를 꼽자는 취지에서 열리는 ‘골든 라즈베리 어워드’에서 영감을 얻었다.

 

지난 24일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열린 ‘2017 청년포럼, 문화·예술이 젠더를 묻다’ 3차 포럼 현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24일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열린 ‘2017 청년포럼, 문화·예술이 젠더를 묻다’ 3차 포럼 현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7 청년포럼’은 지난 6월부터 약 반년간 세 차례에 걸쳐 열렸다. 대중문화평론가, 래퍼, 뮤지션, 방송작가, 영화감독, 예술가, 작가 등 다양한 여성 문화예술분야 종사자들이 무대에 올라 각자의 젠더 차별 경험과 성찰을 공유했다. 사전 참가 신청이 사흘 만에 마감될 정도로 큰 기대를 모았다. “페미니즘은 ‘팀플레이’며,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버티는 것만으로도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회자 손희정 문화평론가의 말처럼, 개개인의 고찰과 용기와 연대가 변화의 불꽃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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