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지난 9월 26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지난 9월 26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문재인 정부는 지난 9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촬영에 사용되는 위장 카메라의 수입, 판매 규제, 유포자 강력처벌, 피해자 지원강화, 성범죄 예방 교육’ 등의 내용이 담긴 ‘디지털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디지털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마련 토론회’에서 장우성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사이버수사과장은 “인터넷에 음란물 마니아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다. 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이트 운영 및 광고업자, 웹하드와 헤비 업로더, 음란 인터넷방송업자와 BJ를 ‘3대 공급망’으로 보고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3대 공급망 중 하나인 웹하드 업체를 대변하는 김호범 디지털콘텐츠네트워크협회(웹하드협회) 회장은 “웹하드나 P2P사이트에 대해 제기되는 피해촬영물 유통에 관한 문제들을 개선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고 기술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 “정부 대책은 피해자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웹하드협회 관계자는 협회가 자체적으로 불법영상 삭제를 위한 ‘민간단체’를 준비 중이라고 발언한 바 있고, 웹하드협회의 필터링 기술을 이용하여 피해자 지원에 나서겠다면서 정부가 직접 새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낭비라고 주장했다.

현재, 정부 정책 방향과 여성들이 요구하는 방향은 같다. 불법영상 촬영뿐 아니라 불법영상 유통 전부를 원천 차단하는 것. 그러나 김호범 회장의 말에 따르면 웹하드협회가 원하는 바는 이와 다르다. 웹하드가 자체적으로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것은 디지털성범죄 생산유통에 대한 정부 규제를 막겠다는 것이고, 피해영상 삭제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유통차단 기술을 자신들이 독점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여성을 착취하는 온라인 성산업들이 불법촬영 영상물을 통해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소라넷은 불법촬영 영상물을 미끼로 성매매 업소와 도박사이트로부터 엄청난 홍보 수익을 올렸고, 웹하드 업체 또한 법 규제망을 요리조리 피해 가면서 불법촬영 영상물들로 수많은 다운로드 수와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웹하드 업체들이 민간단체를 만들어 직접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자율규제를 하게 해달라고 주장한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누가 봐도 명명백백할 것이다.

국정감사 이후로 정부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지금도 디지털 성폭력 피해는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다. 웹하드엔 하루에 수만 건의 불법촬영 영상이 업로드된다. 여성의 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성들에 의해 거래되고 있으며, 피해자들은 대인공포증과 우울증 등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심지어 자살에 이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우리는 디지털성범죄로 인해 이미 많은 친구와 자매들과 딸들을 잃었다. 웹하드의 불법유출영상 게시물엔 “유작입니다. 내려주세요”라며 낄낄거리는 댓글들이 달리기도 한다. 고통으로 죽어간 여성들의 죽음이 또 한 번 모욕당하고 있다.

모든 여성은 디지털성범죄의 잠정적 피해자이다. 일상용품과 구분 안 가는 수많은 몰래카메라들 때문에 여성들은 이제 마음 놓고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이를 또 하나의 사업기회로 보고, 디지털영상 삭제기술이나 몰카 판별제품 판매 등으로 여성들의 피해 사실을 이용하여 돈벌이하는 남성들도 존재한다. 결국 여성들은 온라인 성착취의 거대한 구조 안에서 이중, 삼중의 피해를 받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피해여성에 대한 여타의 지원 없이 지금까지 개개인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이 문제를 방치해왔다. 

 

지난 8월 18일 서울 강남 일대에서 열린 ‘디지털성범죄 아웃’ 시위 현장. ⓒ강푸름 기자
지난 8월 18일 서울 강남 일대에서 열린 ‘디지털성범죄 아웃’ 시위 현장. ⓒ강푸름 기자

여성들은 오랫동안 디지털성범죄에 대해 정부가 강력한 해결 의지를 갖고 규제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우리는 정부에게 소라넷 폐지 및 불법촬영 영상이 올라오는 웹하드 규제, 물통, 안경, 펜 등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몰카 장비에 대한 집중단속, 유포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피해자 지원대책을 요구했다. 그것만이 불법영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의 대책은 미미했고, 디지털성범죄가 만연해짐에 따라 여성들의 사회적 불안은 날로 커졌다. 그런데도 웹하드협회는 뒤늦게 열린 디지털성범죄 피해방지 정책토론회에 나와 ‘자율규제’를 외치고 있다. 그들은 현재 웹하드와 공유망에 올라와 있는 영상들이 ‘불법이 아님’을 주장하면서, 자신만의 기준으로 불법과 합법을 정하려 하고 있다. 과연 그들이 말한 ‘자율규제’로 온라인상에 자행되는 여성들에 대한 폭력과 성적착취를 끝낼 수 있는가? 또한, 웹하드 협회와 유착된 시민단체가 여성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단체로서 논의에 참여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웹하드 업체와 헤비업로더 외에도 경찰에서 제시한 ‘3대 공급망’에는 음란물 사이트와 광고업자, 음란 인터넷방송업자와 BJ가 포함되어있다. 이들 역시 강력한 규제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들의 이익은 명백하게 여성들의 기본권과 대치된다. 문재인 정부는 여성에 대한 성착취를 통해 돈을 버는 음란물 유통 산업에 대해 단호하게 근절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디지털성범죄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3대 공급망의 대표들을 모아놓고 의견을 수렴한다는 것은 현재 정부의 의지가 보여주기식이라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당장 여성단체들과 대화의 테이블을 만들고 여성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을 만들어 실행하라! 9월 26일 정부 종합대책 발표에서 밝혔던 내용들을 당장 실행하라! 이대로 미루다간 전쟁의 시체가 쌓여가듯 매시간 여성 피해자들이 쌓여갈 것이므로 ‘디지털성범죄 피해 방지 및 해결’을 공약 우선 과제로 실천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반성착취 여성행동 성매매, 포르노를 비롯한 여성 성상품화와 여성착취에 대항하고자 만들어진 페이스북 페이지입니다. 여성폭력 문제에 관한 카드뉴스 등의 콘텐츠들을 생산하며 캠페인 활동을 합니다. 주로 성매매합법화 주장에 대한 반박과 성매매 실태 바로 알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매매 문화와 강간문화를 고발하며 해외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여성운동 활동가들의 연대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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