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 최저임금으로 비정규직 가장 큰 고통

ㅇ대학 용역 청소원으로 일한 지 갓 한 달을 넘긴 ㄱ씨(39)는 아침 6시 40분부터 일을 시작해 오후 4시 30분에 퇴근한다. 이렇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고 받는 월급은 기본급 42만1490원에 월차·생리 수당을 합한 45만원.

퇴근 후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도 하지만 하루에 벌 수 있는 돈은 만원 안팎이다. 이 돈으로 ㄱ씨는 3급 장애판정을 받은 남편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둘, 이렇게 네 식구의 한달 생계를 꾸린다. 결국 매달 적자를 보면서 근근이 살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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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계에서는 도시근로자 가계지출의 20% 수준인 최저임금을 50% 수준으로 올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아파트 건설현장의 일용직 여성노동자.

역시 ㅇ대학에서 용역 청소원으로 일하는 ㄴ씨(64)씨는 이 학교에 온 지 3년이 지났고 용역회사에서 일한 지는 이미 7∼8년이 넘었다. 그러나 ㄴ씨의 한달 월급은 47만원 정도. 현재 혼자 살고 있는 ㄴ씨는 이 돈으로 생활을 유지하기에도 빠듯하다. 노후도 걱정되지만 당장 쓰기도 바빠 저축은 꿈도 못 꾼다. 오히려 빚을 안 진 것만도 다행이다.

현재 법정 최저임금은 42만1490원. 그러나 위 경우처럼 실제 이 금액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제의 본래 목적인 저임금 해소나 소득분배 효과를 보기는커녕 생계유지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따라 노동계와 여성노동단체에서는 올해 9월부터 1년 간 적용될 최저임금을 지난 해보다 50% 인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해의 경우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심의위원회에서 제시한 18세 단신근로자 실태생계비의 80.4%에 불과했다. 또한 통계청에서 발표한 3인 가구 실태생계비의 21.8%, 도시근로자 월평균 가계지출의 19.8% 수준으로 매우 낮았다.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한여노협) 왕인순 부대표는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부분이 30∼40대 이상의 여성가장이어서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전국여성노동조합과 한여노협이 지난 달 용역업체 여성노동자 5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4분의 1이 여성가장이거나 독신가구였다. 또한 가족 중 생계비를 벌고 있는 사람은 평균 1.77명에 불과했다.

노동시장에서 가장 낮은 임금수준에 있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 특히 용역 여성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은 곧 기본급을 의미한다. 전여노조 인천지부 황영미 부지부장은 “용역업체들이 최저입찰가 방식으로 위탁업체와 계약하기 때문에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까지 임금이 내려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비현실적 최저임금으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이 더욱 악화됨에 따라 양대노총은 지난 달 24일 최저임금심의위원회에 오는 9월부터 1년간 적용될 최저임금을 현재보다 52%가 인상된 64만1162원으로 결정할 것을 요구했다.

여성노동단체 역시 최저임금을 노동자 평균 정액급여의 50% 인 60만원 수준으로 끌어올리라고 주장한다.

이 외에도 여성노동단체들은 최저임금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으로 최저임금심의위원회에 비정규직이 참여하는 구조를 만드는 방법을 제시한다. 또한 심의위에서 생계비를 산출할 때 18세 단신노동자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보고 29세 단신근로자를 기준으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재계의 입장은 아직 통일되지 않았으나 거센 반발이 일 전망이다. 16.6%가 인상됐던 지난 해의 경우도 최저임금 심의과정에서 재계가 탈퇴해 버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측은 “지난 해 최저임금이 결정된 후 업체로부터 많은 항의 전화를 받았다”고 밝힌다.

중앙회 관계자는 “지금까지 평균 7∼8%씩 인상됐던 최저임금이 지난해 16.6%가 인상돼 부담이 컸다”면서 “영세한 중소업체의 경우 큰 폭의 인상율은 인건비 부담을 늘릴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최저임금은 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8월 5일까지 고시가 돼, 오는 9월부터 1년간 적용되게 된다.

송안 은아 기자sea@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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