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jpg

미행으로 시작해서

감금·폭력·살인까지

20대여성 10% 스토킹에 시달려…


최근 인기가수 ㅇ씨의 스토킹 피해사례가 드라마로 제작돼 주목을 받으면서 다시금 ‘스토킹’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스토킹(관심 있는 상대를 병적으로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행위)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수년 전이지만 이제 매체를 통해 ‘스토킹’이라는 용어를 접하게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알려진 피해자는 인기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각에서는 “언론이 스토킹 개념을 ‘스타들의 인기척도’ 식으로 몰고 가 범죄인식을 희석시켰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사회인식과 달리 스토킹 피해자는 일반인의 경우 더 많고 인기여부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98년 S기업 사회정신건강연구소가 여성 1천3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의 30%인 400명이 “스토킹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바 있다. 미국의 경우 여성의 8%, 남성의 2%가 스토킹 피해자로 알려져 있으며 국내에선 20대 여성의 약 10% 정도가 스토킹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스토킹의 피해 정도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괴로움을 호소한다. 특히 수개월간, 길게는 수십년간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것이 스토킹 범죄의 특성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고통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정신과 의사들은 “상황이 끝난 후에도 후유증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심각한 범죄인 스토킹을 근절하기 위한 대책은 특별히 마련돼 있지 않다. 범죄학 연구자들은 스토킹을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방적인 폭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피해자들이 스스로 스토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스토커에 대해 “정말 사랑하나보다” 식의 동정표를 행사하는 사회적 분위기 역시 피해자를 더욱 괴롭고 위험한 상황으로 내모는 주 요인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법에 의존하려 할 때조차도 우리 나라는 스토킹 처벌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납치나 폭행을 당하지 않는 경우엔 단지 경범죄 처벌법으로만 고소할 수 있을 뿐이다.

스토킹은 피해자 뿐 아니라 피해자 가족의 삶을 통째로 망가뜨리는 심각한 사회범죄다. 범죄학자들은 미행으로 시작한 스토킹이 감금과 강간, 살인이라는 대형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스토킹 처벌법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3-1.jpg

“도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건지 알 수가 없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 집안형편이 어려워 회사에 취직해 일했던 ㅇ(31)씨는 공부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없어 서른 나이에 수능시험을 봐서 1999년 S대에 입학했다. ㅇ씨가 같은 과에 편입한 ㄴ(27)씨를 직접적으로 알게 된 것은 작년 ㅇ씨가 수강신청을 부탁한 학생이 대신 ㄴ씨를 추천해주면서부터. ㅇ씨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다른 친구들과 함께 그에게 저녁식사를 사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ㄴ씨는 작년 8월경부터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ㅇ씨를 하루에도 수차례 찾아오고 점심때마다 같이 먹자고 했다. 점점 부담스러워진 ㅇ씨는 어느 날 나씨에게 “나는 널 동생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난 나이도 많고 갈 길이 바빠서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ㄴ씨는 쫓아다니는 행동을 그만두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집요해졌다.

스토커 대부분 멀쩡한 보통사람

작년 9월 ㅇ씨의 핸드폰에는 “XX년, X같은 년, 이러면 안돼”라는 음성녹음이 남겨져있었다. 이러한 협박은 한달반 가량 지속되었다. ㅇ씨는 “너 학교생활 끝나고 내 인생 끝났으니까 니가 나 안 죽이면 니가 죽는다”는 ㄴ씨의 메시지를 듣고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됐다.

“그 이중적인 면, 너무 끔찍해요.” ㅇ씨가 가장 경악스러워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바뀌는 ㄴ씨의 행동이다. ㅇ씨가 핸드폰에 저장된 메시지를 다른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다는 것을 알게된 ㄴ씨는 ㅇ씨를 찾아와 “내가 정말 잘못했으니 메시지를 지워달라”고 간곡히 애원을 했다는 것이다. ㅇ씨는 그의 태도를 보아 메시지를 지워주고 용서해주면 모든 상황이 끝나겠거니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ㄴ씨는 그 이후로 주위 사람들에게 오히려 자신이 ㅇ씨로부터 성희롱과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나를 후레자식 만든 책임을 지라”고 위협했다. 증인에 따르면 ㅇ씨는 학교에서 ㄴ씨의 협박에 기절해 쓰러진 적도 있고 ㄴ씨에게 얻어맞아 학교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져 보건소에 실려가기도 했다.

ㅇ씨가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스토킹’임을 인식하게 된 것은 작년 12월 남동생을 통해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성상담소에 상담을 요청하게 되면서부터다. 상담소 측은 “ㅇ씨의 피해는 전형적인 스토킹 사례”라고 말한다.

스토킹 범죄가 일찍 공론화된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스토킹은 △친밀한 관계에 있는 경우 △정신병적 스토킹 △복수를 위한 스토킹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과반수의 스토커가 피해자의 전 애인이거나 데이트 상대로 “결코 떠나보낼 수 없다”는 집착과 소유욕을 보인다. 그러나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스토커 중에는 정신분열이나 우울증 또는 이상성욕 등의 정신병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멀쩡한 보통사람이라고 말한다.

피해자 가족의 삶까지 통째로 망가져

“피해자는 스토커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지만 스토커는 피해자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성폭력상담소 하은주 상담부장은 “스토킹의 핵심은 ‘공포’”라고 말한다. ‘죽이겠다’는 협박을 당하면서 몇 개월에서 몇 년까지 스토킹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갈 수가 없다.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스토킹 피해자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이 증상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생명에 위협이 될 만큼 끔찍한 일을 겪었을 때 나타나는 것으로 교통사고나 전쟁을 겪은 이후의 정신적 후유증과 비슷하다. 피해자들은 가해자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보았을 때 혹은 남성 모두에게서 두려움을 느낀다. 전화벨만 울려도 깜짝 놀라며 생활 전반이 위축된다. 또 학업이나 취직, 결혼 등 진로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ㅇ씨의 주치의에 따르면 ㅇ씨도 마찬가지 증상을 보이고 있다.

‘남녀관계가 다 그런 것’ 인식이 더 문제

스토커와 피해자를 바라보는 주위의 왜곡된 시선은 피해자를 이중삼중 괴롭히고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주 요인이다.

ㅇ씨와 ㄴ씨가 다니고 있는 S대의 경우 사건을 중재하겠다고 관계자들이 모여 내린 결론은 “둘 다 서로 연락하지 말고 학업에만 열중할 것”이었다. ㅇ씨는 “내가 얻어맞아 굴러 떨어진 것을 보고도 학교측에선 ‘둘이 어떤 사이냐’ ‘어디까지 갔냐’면서 화해하라고 했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구타당한 여학생에게 ‘폭행 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면서 가해자와 같은 취급을 하다니…”

같은 과 동기들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해주는 듯하던 학생들이 고소가 들어갈 즈음엔 소위 ‘왕따’를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보고 칼로 찔린 것도 아니잖냐고 해요”

경찰서에서도 “이게 무슨 부부싸움도 아니고…”식의 조사를 받은 ㅇ씨는 “주변사람들의 반응이 모두 내게 폭력”이라고 말한다.

신경정신과 의사 ㅈ씨는 “스토킹을 겪게되면 아무리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 해도 제대로 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된다”면서 “주변인들이 피해자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도와주지 않으면 회복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경범죄, 협박 등 처벌로 대응 어림없다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택하게 되는 것은 법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토킹에 대한 법적 대책이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스토킹처벌법이 마련돼있지 않은 우리 나라에서는 개별적인 대해서 법적 처벌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집에 무단 침입했으면 주거침입죄로, 구타를 당하면 폭력죄로, 납치를 당하면 체포·감금죄로 고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물리적인 유형으로 가해진 경우가 아닌 대부분의 스토킹은 피해자에겐 ‘피를 말리는 공포’지만 법적으로는 처벌 근거가 없거나 단순히 경범죄에 해당할 뿐이다.

박경식 경찰대학 수사교관(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 범죄학 석사)은 “현재 스토커에 대한 법적 처벌이 피해자의 피해에 대한 보상이 되는가, 그만한 형량이 규정되어 있는가를 검토해 본다면 절대로 ‘NO’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1999년 5월 ‘스토킹처벌에관한특례법안’이 국회에서 의원입법안으로 제출되었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 있고 그 이후엔 언론의 초점에서 벗어나면서 별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스토킹은 수년 혹은 수십 년간 피해자와 그 가족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범죄다. 그럼에도 우리 법은 스토커를 벌금형 혹은 구류 정도로 처벌하고 있어 피해자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선 살인사건 피해여성의 1/3이 남자친구나 남편에 의해 살해되며 이중 90% 이상이 가해자가 살해되기 전 피해자를 스토킹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성범죄 상담가들과 범죄학자들은 “더 큰 범죄로 확대되기 전에 스토킹 처벌법을 제정하여 스토커를 피해자로부터 격리시키고 범죄에 상

m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