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페미, 4일 ‘여기컨 - 여성기획자 컨퍼런스’ 개최 

이직·포트폴리오·경력단절 등 여성기획자 고민 나눠

 

4일 서울 강남구 선릉로 디캠프 6층에서 ‘여성기획자 컨퍼런스 - 여기컨’이 열렸다. 참가자들이 테크페미 스탭 옥지혜씨의 강연을 듣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4일 서울 강남구 선릉로 디캠프 6층에서 ‘여성기획자 컨퍼런스 - 여기컨’이 열렸다. 참가자들이 테크페미 스탭 옥지혜씨의 강연을 듣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10년~20년 연차의 여성 기획자는 드뭅니다. 경력단절로 3년차, 8년차 여성 기획자가 특히 많죠. 여성 기획자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기획자가 되고 싶은데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기획을 잘 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죠?” “개발자와 소통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10~20년차 가뭄”에 테크업계 여성 기획자들이 뭉쳤다. 테크업계 페미니스트들의 모임인 ‘테크페미’가 지난 4일 연 ‘여기컨 : 여성 기획자 컨퍼런스’에선 테크 업계 종사자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취업, 이직, 육아, 경력단절, 유리천장 등 여성 기획자로서 일상에서 생생하게 겪는 일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털어놓는 자리였다. 대학생·직장인·경력단절 여성 등 150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했다.

이날 서울 강남구 선릉로 디캠프 6층에서 열린 컨퍼런스에는 옥지혜 테크페미 스탭, 정인혜 슈퍼팬 기획자, 양효진 베베템 대표, 야놀자 강미경 PM(Product Manager·이하 매니저) 등 선배 여성 기획자들이 연사로 나섰다. 이들은 자신들의 창업 및 이직 사례를 발표하고 참석자들의 질문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강미경 야놀자 프로덕트 매니저가 강연을 하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강미경 야놀자 프로덕트 매니저가 강연을 하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이직 무조건 두려워만 말라

지원회사 기획서 써보는 것도 도움”

오픈 메신저를 통해 주최 측에 고민을 보낸 사람들 대부분은 평상시 경력관리와 이직 고민을 털어놓았다.

패널로 참석한 강미경 야놀자 매니저는 “이 회사가 ‘나랑 안 맞다’고 생각이 들면 과감하게 퇴사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안 맞는 회사에 왜 이렇게 오래 다녔지?’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도 감점 포인트예요. 자기 자신의 강력한 무기만 있다면 면접에서 잦은 이직에 대한 어떤 공격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강미경 매니저는 7년 동안 7번의 이직을 한 그야말로 ‘이직의 달인’이다. 첫 회사를 나와 들어간 두 번째 회사는 구조조정을 했고, 회사생활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스타트업 ‘딩고’에서 기획자로 일한 경력도 있다. 그는 “수차례 이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사실 ‘주니어’라면 시행착오를 겪을 기회가 별로 없어 최소 2년은 한 회사에서 일해 보는 것을 추천해요. 하지만 이직을 두려워하진 마세요. 평상시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고, 꾸준히 블로그를 운영하세요. 지원했을 때는 어떤 이유로 회사가 채용하는지 뒷조사가 굉장히 중요해요. 품을 들여 해당 회사의 ‘역기획서’를 직접 써보는 것도 좋고요.”

양효진 대표는 이렇게 조언했다. “다섯 번이나 인턴을 하다 보니 ‘이제는 정규직을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안 맞던 회사를 계속 다녔어요. 정말 절박했고 경력을 쌓고 싶었죠. 주변에서도 ‘근속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지금 와서 보니 이런 케이스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다만 여전히 한 회사를 오래 다니는 것에 대한 요구가 큰 것도 무시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강미경 야놀자 프로덕트 매니저, 양효진 베베템 대표가 참가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강미경 야놀자 프로덕트 매니저, 양효진 베베템 대표가 참가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개발자와 소통’ 중요…당당하게 요구하라

이해할 때까지 묻고 피드백 받기

개발자와의 소통과 관련된 고민도 적지 않았다. “개발에 대해 기초적인 부분조차 모르는데 기획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개발자와 커뮤니케이션 잘하는 방법을 알려 달라”는 구체적인 질문도 나왔다.

양 대표는 “개발자와 이야기한다고 해서 어렵게 이야기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저는 ‘내가 대표니까 내 말 들어야 해’ 이게 아니라 ‘나는 하나도 모르는데 어떻게 해야 해?’ 이런 식으로 접근했어요. 제가 경력이 없다는 걸 이용해서 오히려 저한테 더 많은 부분을 설명해달라는 걸 어필했죠.”

강 매니저도 개발자와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는 개발자에게 이해할 때까지 설명해달라고 했어요. 만약 개발이 어렵다면 안 되는 기술적인 한계를 저에게 설득하라는 거죠. 이런 부분이 쌓이면 나중에는 개발자가 굳이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논리’와 ‘지식’이 생겨요.”

 

정인혜 슈퍼팬 기획자가 강연 도중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정인혜 슈퍼팬 기획자가 강연 도중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하루에 한 시간은 무조건 독서

끊임없이 기록하는 습관 

기획을 잘 하는데 필요한 습관 등 근본적인 고민도 빠지지 않았다. 정인혜 기획자는 “기획자는 성공사례가 여러 개 있을수록 더욱 좋다”며 “성공사례를 여러 번 만들 수 있는 자신만의 ‘내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당위성’부터 생각하는 게 좋다”며 “그래야 힘든 상황이 있어도 견뎌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 기획자가 기획한 영어교육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앱) ‘슈퍼팬’은 출시 2개월 만에 앱스토어 교육매출 1위를 달성했다. 다른 영어교육 앱과 달리 ‘좋아하는 영상으로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는 데 차별화를 뒀다. 컴퓨터공학과를 전공해 앱 디자인과 개발을 하며 대학 생활을 보낸 정 기획자는 현재 교육 스타트업 퀄슨에서 슈퍼팬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제가 기획을 하는 데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습관은 ‘독서’와 ‘기록’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꼭 독서를 하고 독서노트를 쓰고 있어요. 평소 마인드맵으로 책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생각을 확장시키기도 하죠. 최근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던 책은 ‘생각정리 스킬’이라는 책이었어요.”

 

양효진 베베템 대표가 강연을 하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양효진 베베템 대표가 강연을 하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10년차 이상 현장서 보기 드물어 

“여성 기획자간 네트워크 중요” 

끊임없이 살 길을 모색하지만 여성 기획자들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결혼과 출산으로 10년~20년차 이상의 여성 기획자와 고위 관리직을 현장에서 보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실제로 올해 미국 테크업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8%가 멘토가 적거나 없다고 답했고, 42%는 동종업계 내 롤모델이 없다고 답했다.  

유리천장에 균열을 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양효진 대표는 “저조차도 경력단절 때문에 창업을 결심했다. 마케터로서 커리어가 끊겼는데, 다시 시장에 돌아가면 몸값은 헐값이 되더라. 그러나 본인이 다시 시장을 개척하면 몸값이 뛸 수 있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여성 기획자들 간의 네트워크를 강조했다. “제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도 저처럼 오랫동안 회사에 다녔다가 창업한 사람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버티라’고 얘기해주는 거죠. 주변에서 이런 희망적인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날 연사로 나선 테크페미 스탭 옥지혜씨도 “기획자는 직접 산출물을 내지 않아 정성적인 평가를 받는다. 때로는 업무 외적인 ‘여성의 평판’이 여성 기획자들의 평가 잣대가 되기도 한다”며 “직장 내 성평등 문화를 위해 페미니스트 동료와 연대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런 자리를 계속해서 기획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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