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대는 다르나, ‘페미니스트로 생존하기’는 우리 모두가 당면한 과제로 보인다. 오늘 대화를 통해 서로 다른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이 비슷한 갈등과 고민을 안고 있음을 확인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가 꾸준히 접속하고 연대할 방도를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 그렇다. 그런데 바로 윗세대 페미니스트들과 교류하기가 어렵다. 중간 고리가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페미니즘 리부트’란 말 그대로 한 번 껐다가 켜진 것 아닌가. 

: 뚜렷한 세대 차이를 느낄 때도 있다. 저번 강남역 사건 1주기 추모제 후 한 영페미 분이 “온라인으로만 진행되는 게 새로워서 잘 못 따라가겠다”고 하셨다. 우리 세대는 그런 방식이 너무나 당연한데. 

조박 : 중간 매개체가 없다는 데 공감한다. 많은 영페미들이 ‘뉴페미들을 만나 돕고 싶은데 왜 우리한테 연락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 하더라. 그나마 최근 세대 간 연결과 소통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실제로 만날 기회도 많이 늘었다. 

: 페미니스트들의 만남의 장, 캠프 같은 게 있다면 좋겠다. 예전엔 페미니즘 운동을 했지만 지금은 직접적으로 페미니즘 이슈와 부대끼지 않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을 것이다. 그들의 정보와 자원이 현재의 페미니즘 활동으로 흘러들 수 있도록 연결한다면 좋겠다. 

: 페미니스트 캠프는 존재한다. 저희와 여러 단체가 올해 초 ‘2030 페미캠프’를 열었다. 자기방어훈련, 디제잉 파티 같은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좋은 사람들이 만나고 에너지를 나누는 자리였다. 한 번 창구가 트이면 계속 뭔가 같이 할 수 있다. 지금 그렇게 만난 다양한 단체들이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연대 활동에 나섰다. 만나 연대할 길을 찾아야 한다. 

: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오프라인에서 면대면 인격체로 만나게 되면서 어떤 ‘확장성’을 느꼈다고 하더라. 그러나 사실 제가 가장 바라는 건, 연대 이전에 단체의 생존이다. 운동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성공적으로 조직화하기 위해 도움을 받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여성의전화 등 30년의 역사를 지닌 단체 관계자 분들께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30년 전과 지금은 무척 다르다. 저희의 롤모델이 될만한, 5~ 1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단체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NPO지원센터에서 회계 자문을 받을 순 있지만 우리가 지속 가능한 활동을 하기 위해서 어떤 노선을 택해야 하는지 배울 수는 없다. 항상 맨바닥에 헤딩하며 느리게만 나아가는 느낌이다. 아쉽고 답답하다.   

: 공감한다. 연결보다 생존이 시급하다. 당장 저만 해도 내년에도 계속 활동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울할 때도 많다. 일을 하고 돈을 받지 못하는데, 활동가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나는 가치 없는 존재가 아닌가? 저희 스텝들도 다 공감하는 얘기다. 지난해에 활발히 활동하던 몇몇 단체들도 올해는 잘 보이지 않더라. 

조박 : 페미니스트들이 서로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이끌어준 역사가 없다. 살아남아 서로의 생존을 보면서 ‘아직 살아있었군’ 이런 생각만 하지. (웃음) 다만 내가 잠시 사라진다고 해서 이 현장이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한다면 돌아올 수 있다. 

: 세대가 바뀌면서 각자가 처한 상황이 판이하다. 예컨대 윗세대는 특정 지역 혹은 대학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면, 지금 세대는 여러 커뮤니티에 (페미니스트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태다. 저희가 영페미 단체들을 찾아 여러 자문과 조언을 구했지만, 지형이 무척 달라서 당장 적용할 만한 실질적인 조언으로 연결되지 않는 듯하다. 

: 어설픈 선배들이 여러분의 활동을 폄하하거나 혼란스럽게 할 권리는 없지만, 지금 페미니스트들은 힘들어도 축복받은 면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후기 근대 사회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여러 차별과 문제들이 이미 해결된 가운데 (이전 세대보다)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게 된 측면이 있다. 저희 세대도 그렇다. 

문제는 어떻게 생존하고 이어갈 것이냐다. 저처럼 나이 든 사람들이 이 숙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페미니즘 번성의 ‘꿀’을 먹으러 오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한 페미니즘을 만들기 위해 호출되고 기여해야 한다. 지금은 세대 간 연결 고리가 약해 보이지만, 우리가 노력하면 미래에 어떻게 연결될지 모르지. 

조박 : 우리 자주 만나자. 필요하다면 불러달라. 여러분이 고민을 나누고 ‘든든한 내 편’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만큼이나, 윗세대도 여러분을 통해 새로운 활력과 아이디어를 얻을 기회를 고대하고 있다. 

 

(왼쪽부터) 여성신문이 지난 18일 연 창간 29주년 기념 좌담회에 참석한 심미섭 페미당당 활동가, 서랑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조박선영 ‘이프북스’ 편집장, 이지원 페미몬스터즈 활동가, 김지영 전국디바협회 대표, 전현경 아름다운재단 변화사업국 연구교육팀 간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왼쪽부터) 여성신문이 지난 18일 연 창간 29주년 기념 좌담회에 참석한 심미섭 페미당당 활동가, 서랑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조박선영 ‘이프북스’ 편집장, 이지원 페미몬스터즈 활동가, 김지영 전국디바협회 대표, 전현경 아름다운재단 변화사업국 연구교육팀 간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