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카메라 이슈가 사회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서울시는 여성안심보안관 제도 운영 등 자체 해결책 촉구에 나섰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몰래카메라 이슈가 사회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서울시는 여성안심보안관 제도 운영 등 자체 해결책 촉구에 나섰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최초의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하며 ‘젠더폭력 근절’을 천명하고 국가행동계획을 수립했다. 지난달엔 몰카 등 ‘디지털 성범죄 피해 방지 종합 대책’을 내놓으면서 사이버 성폭력을 국가적 현안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어떻게 보시나.

서랑(이하 서) : 사이버 성폭력이 이렇게 국가적 이슈로 떠오른 건 아주 최근의 일이다. 전문가들은 늘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지만, 2015년에야 ‘소라넷 고발 프로젝트’ 등을 계기로 ‘몰카’ 범죄가 주목받았다. 초기엔 반응이 시들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리벤지 포르노 근절’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적극적인 개혁 의지를 내비친 이후로 갑자기 정부 부처 등 여기저기서 저희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희 한사성이 주목하는 건 영상 유출 피해 문제다. 영상 유출 피해자들은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사비를 들여 직접 영상을 삭제하고 있다. 경찰도 이런 상황에 대처할 매뉴얼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런 피해자들은 ‘순결한 피해자’가 아니라 ‘정절을 지키지 않은, 조신하지 않은, 욕먹어도 싼 여성’으로 소비된다. 심각한 자살 충동을 겪을 수밖에 없다. 아무도 이유를 모르는 20대 여성의 죽음 뒤에는 아마 그런 사연이 있지 않았을까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조박 : 몰카는 1990년대까지 올라가는 이슈다. ‘빨간 마후라’ 사건 다들 기억하시나. 피해 여성을 폭력적으로 소비한 영화까지 나왔다. 대중은 여성을 그런 식으로 소비했을 뿐, 소비당한 이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지. 

: 사이버 성폭력에 대항하는 흐름이 계속 이어져 와 이제 거대한 물살을 타게 된 듯하다. 문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하며 이런 문제에 신경 쓰는 배경엔 ‘여성 유권자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판단이 있을 것 같다. 문 대통령이 퀴어 여성의 목소리를 막는 모습을 보고 나니 그가 페미니즘을 담을 만한 그릇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이 촉발한 반 여성혐오 운동 이후로 여성이 선거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력으로 가시화됐다는 게 중요하다. 정치권이 여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 아직 갈 길이 멀다. 성폭력의 산업화 문제가 심각하다. 몰카가 돈벌이 수단이 됐다. 다양한 피해 영상물이 저작권 없는 음란물 콘텐츠로써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업로더, 유통 플랫폼 업자, 삭제업자 모두 여성을 착취해 수익을 얻는 구조다. 저희는 이 문제도 꾸준히 제기하려 한다. 이런 문제에 관심 많은 개인들이 모여서 월급도 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DSO가 지난 4월 국회톡톡 사이트에 올린 ‘몰카판매금지법 제안’엔 시민 16980명이 서명으로 동의를 표했고, 국회에서 정식으로 검토될 예정이다. ⓒ‘국회톡톡’ 사이트 캡처
DSO가 지난 4월 국회톡톡 사이트에 올린 ‘몰카판매금지법 제안’엔 시민 16980명이 서명으로 동의를 표했고, 국회에서 정식으로 검토될 예정이다. ⓒ‘국회톡톡’ 사이트 캡처

 

지난 7월 7일 국회에서 ‘사이버성폭력 근절을 위한 입법정책의 개선방향’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와 더불어민주당 소속 유승희, 진선미, 권미혁 의원이 공동 주최했고, 대검찰청과 경찰청이 공동주관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제공
지난 7월 7일 국회에서 ‘사이버성폭력 근절을 위한 입법정책의 개선방향’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와 더불어민주당 소속 유승희, 진선미, 권미혁 의원이 공동 주최했고, 대검찰청과 경찰청이 공동주관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제공

‘불황의 시대’ 세대 다르나

페미니스트로서 생존하기는

모두가 안고 있는 당면 과제

: 활동가 분들이 이런 일을 무급으로 하고 있다니 슬프다. 공무원이 할 일 아닌가.

: 저희 운영진이 8명, 팀원이 약 20명이다. 상근 활동가가 꼭 필요한 구조인데, 지난 9개월간 활동비가 없어서 너무 힘들었다. 저희는 주말엔 아르바이트하고, 평일엔 하루 쉬면서 30~40만원을 쥐고 지금까지 해왔다. 정부의 활동 자금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있긴 하다. 여가부에 예산 7억원이 있는데 아직 사용처는 확정되지 않았다더라. 그런데 너무 많은 자원이 단체에 투입되면 관변화되고 운동 단체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 고민이 크다. 

: 불황의 시대다. 지금 여러 페미니즘 단체들이 만들어져 활동할 수 있는 배경엔 취업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은 사회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활동가에게 활동비나 상근비를 지급하는 게 기본이다. 그러나 2016년 이후 생긴 페미니즘 단체 중 상근비를 받으며 일하는 활동가가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그나마 임의단체로 등록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 여러분의 고민에 공감한다. 저도 대학원 시절 약 5년간 아르바이트와 운동을 병행했다. 그런 식으론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한편 조직 구조가 탄탄해지면 발 빠르고 뜨겁게 일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이 문제를 (서로 다른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이) 같이 고민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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