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시행 1년 맞은 ‘청탁금지법’

관습의 변화를 시도한 법

특히 젊은 세대들 호응

‘3-5-10’ 규정 완화로는

근원적 문제해결 어려워

대의민주주의 보완 위한

다양한 민주주의 실험 중

국민 소통·참여 늘려야

‘더 많은 민주주의’ 가능

대법원 구성 다양성 필요

여성 고위 법관 늘어나야

소수자 보는 이론 제공 가능

 

하나의 법이 하루아침에 한국사회의 관행과 문화를 뒤흔들었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은 접대와 촌지, 부정청탁 관행으로 물든 문화에 경종을 울렸다. 형식적인 성의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되고, 청탁 거절도 쉬워졌다. 법의 틀을 닦은 이는 최초의 여성 대법관 김영란(61)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다. ‘소수자의 대법관’이라고 불리며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살아온 그는 청탁금지법에 대해 “관습에 도전한 법”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김 교수는 김영란법 관련 궁금증에 대한 답을 담은 『김영란법, 김영란에게 묻다』(풀빛)를 최근 출간했다. 나이와 직위를 중시하고 연고주의나 이해관계에 의한 유착 고리를 법 하나로 끊을 순 없다. 하지만 시행 1년을 맞은 청탁금지법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불편하지만 사회가 깨끗하고 공정하게 바뀐다면 충분히 그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 교수는 “직무 관련성 관련 해석 너무 복잡해 단순하게 손 볼 필요는 있다”면서도 “본래 취지는 훼손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여전히 끊이지 않는 법 상의 식사·선물·부조 상한선 액수인 ‘3·5·10만원’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금액을 조금 올리는 방식은 근원적인 해결 방법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사법부의 역할, 법원 판결과 가부장을 주제로 책을 구상하고 있다는 그는 정치권 진출에 대해선 “사람일은 장담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이 시행 1년을 맞았습니다. 여전히 부작용 우려도 있지만 국민들의 지지가 상당합니다. 첫 제안자로서 소감이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시행 초기에는 최대한 법에 대한 말을 아꼈습니다. 관습의 변화를 시도한 법이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끼어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봤어요. 서서히 사회질서 속에 내면화되는 변화를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이 법은 일반 형법처럼 처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행동강령을 정하는 법이에요. 바로 처벌하는 것보다 어떤 식으로 행동하라고 알려주는 법인 거죠. 법 시행 전부터 논란과 우려가 있었는데 의외로 1년이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굉장히 빨리 일상에 스며들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한국사회학회가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 국민 10명 가운데 9명은 법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답했습니다. 빠르게 정착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법을 가장 환영하는 건 일선 공무원과 교사, 젊은 학부모들이에요. 법 이후에 귀찮은 예의를 안해도 되고 촌지, 접대도 쉽게 거절할 수 있어 편하고 좋아졌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이미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는 도덕 기준을 법이 짚어준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 언론, 학교를 법 적용 대상에 넣은 것이 법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언론에서 이 법의 부정적 면을 보도하면서 노이즈 마케팅 효과로 법의 상세한 내용이 더 많이 알려지기도 했고요.”

-소비심리 위축·경제 악영향과 함께 일부 업종이 타격을 받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매출 회복세를 보인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하지만 아직 화훼 농가는 매출 부진을 면치 못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법을 발의할 당시에 2년의 유예 기간을 충분히 가진 뒤 시행하자고 했지만 1년 6개월로 줄었어요. 그래도 법 시행 전까지 행정지도나 재정 지원 통해 업종 전환이나 손해를 보완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웠어야 했는데 정책 지원이 미미했죠.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법이 통과되자마자 일부에서 위헌을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냈고 1년 4개월이 지나서야 헌재가 합헙 결정을 내리면서 준비를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결과, 법 시행 이후 난이나 화한 구입이 줄어들면서 화훼 농가가 매출에 타격을 받으신 것 같아요. 안타까워요. 길게 보면 잘못된 관행태 소비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할 문제로 보입니다. 피해가 확인되는 업계라면 정부 차원에서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 필요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식사·선물·부조 상한선인 ‘3·5·10만원’ 조항을 ‘10-10-5’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국민권익위원회 소관인 문제라 혼란을 자아내고 싶진 않지만, 기준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금액을 올리는 건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금액을 조금 올린다고 해서 화훼 농가의 매출이 다시 오를까요. 마음만 달래는 방법일 뿐, 근원적인 해결 방법은 없을까라는 아쉬움이 있어요.”

-법의 효율적 시행을 위해선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직무 관련성에 대한 유권해석이 너무 복잡해지다 보니 상황별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어요. 저는 계약직이라 법 적용 대상이 아니지만 주위 교수들을 보면 외부 강의 나갈 때 일일히 서류를 작성해 보고해야 하더라고요. 무료 강의도 제출해야 해서 번거롭기도 하고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원래 법 취지는 훼손하지 않고 쓸데없이 해석이 복잡하거나 보완하는 작업은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패로 성장하는 나라는 없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신데요. 정권 부패에 분노한 시민들이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탄핵 심판대에 올렸고 새 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어떻게 지켜보셨는지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하는데, 여기서 공화국은 국민이 뽑은 대표들이 합의해서 정치하는 대의민주주의라고 해석됩니다. 여기서 그 대표들은 전부 보통 시민보다 교육을 많이 받고 정치할 여유가 있는 탁월한 사람들이라는 믿음이 있었죠. 실제로 교육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과거엔 대표들이 탁월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죠. 그러다 상급교육이 대중화되면서 기본적인 국민 수준이 높아지면서 국민이 뽑은 대표나 일반 국민의 수준 차이가 사라진 거에요. 지금은 정치가 적성에 맞지 않고 다른 생업을 하고 있는 국민들이 직업이 정치인인 이들에게 권력을 잠시 맡긴 것 뿐이죠. 그런데 권력을 위임받은 대표들이 국민의 생각을 읽으려고 하지 않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하는 모습만 보여준 거에요. 이를 두고볼 수 없던 보통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해요. 국민이 정치에 바라는 것을 읽지 않고는 제대로된 정치는 할 수 없어요.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국민을 대신해 정치하는 대표들이 국민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원하는 것을 제대로 수행해줘야 해요.”

 

-촛불광장을 경험하고 성공으로 이끈 시민들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민주주의는 무엇이며,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대의민주주의 안에서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데 있어 보통 사람들의 지혜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 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어요. 대의민주주의를 교정, 수정해 보완하려는 시도 가운데 하나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보여준 ‘숙의 민주주의’입니다. 전문가의 영역을 보통 사람들이 감시하는 거죠. 중요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이 전문지식을 보통 사람들에게 쉽게 알려주면 이 과정에서 보통 사람들이 상식에 입각한 질문을 하면 전문가들이 대답하고 숙의를 거쳐 최종 결정하는 건데요. 논쟁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빠질 수 있는 오류, 말하지 않는 진실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알게 될 수 있어요. 직접 민주주의를 하자는 게 아니에요. 숙의 민주주의를 비롯해 정당과 시민사회를 활용하는 방식이나 시민들이 직접 의제 형성을 하는 것도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방법이죠.”

-대법원이 김용덕, 박보영 두 대법관의 후임 인선 절차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이전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선 다양성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서울대 출신, 50대, 남성 판사’라는 대법관 공식을 깨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다양한 계층에서 대법관이 나와야 다양한 생각이 테이블에 올라올 수 있어요. 대법관 시절 전체 대법관 중 여성이 두 명이었는데, 한 남성 대법관이 농담조로 여성 법관 비율보다 여성 대법관 비율이 지나치게 많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농담에 정색하고 말할 수 밖에 없었어요. 신규 판사 절반이 여성인데 고위직에 여성 비율을 늘려주지 않으면 롤 모델이 없어서 중도에 포기하는 여성들도 늘 것이라고요. 법원에 여성이 늘어나면 법원이 덜 중요한 집단이 된다고 폄하 발언을 남성 법관도 있었어요. 사실 농담이 농담이 아닌 거죠. 여성 문제 그 자체가 소수자의 문제에요. 앞으로 우리사회에 소수자가 늘어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여성이 소수자였던 경험이 소수자 보는 시각을 제공해줘야 줄 수 있어요. 젠더 관점을 통해 소수자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이론을 제공해줘야 해요.”

 

김영란 서강대 석좌교수는?

·1956년 부산 출생

·경기여고, 서울대 법대

·1978년 20회 사법시험 합격

·수원지법 부장판사, 서울지법 부장판사 역임

·2004년 여성 첫 대법관

·2011년 국민권익위원장

·2016년 여성신문 선정 ‘올해의 인물’

 

*‘김영란법’은?

지난해 9월 28일 시행된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 이른바 ‘김영란법’)은 공직자를 비롯해 언론인·사립학교 교직원 등 법안 대상자들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원(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도록 규정했다. 또 직무 관련자에게 1회 100만원(연간 300만 원) 이하의 금품을 받았다면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수수금액의 2∼5배를 과태료로 물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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