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버럭 엄마와 평화주의자 딸의 유럽 공연 축제 여행 ①

신문기자를 거쳐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을 거친 엄마 박선이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공연예술 기획자의 꿈을 키워가는 딸 박한결과 45일 간의 유럽 여행을 떠났다. 모녀 단둘이 떠난 이번 여행의 주제는 축제다. 한 여름 유럽 곳곳에서 열린 축제를 찾아다닌 이들의 여행기를 격주 연재한다.  

96년판 여행안내서 들고 오고

휴대전화 잃어버린 ‘털털’ 엄마

가는 곳마다 무료 와이파이

찾아 척척 연결하는 ‘꼼꼼’ 딸이

45일 간의 유럽 여행을 떠났다

 

아비뇽 오프 공연 포스터가 내걸린 뒷골목 카페. 페스티벌 기간 동안 아비뇽 전체가 이렇게 흥겨운 축제 분위기로 출렁인다. ⓒ박선이
아비뇽 오프 공연 포스터가 내걸린 뒷골목 카페. 페스티벌 기간 동안 아비뇽 전체가 이렇게 흥겨운 축제 분위기로 출렁인다. ⓒ박선이

한 여름 밤의 축제. 중세 도시의 교황궁 뜰에 펼쳐지는 그리스 비극, 해 저무는 호반 무대에 울려 퍼지는 오페라 아리아, 공회당을 임시 개조한 극장에서 뛰고 구르는 실험 무대… 생각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20대 때 전설처럼 전해 듣던 유럽의 공연 축제들.

좋아! 가는 거야! 직장 생활 31년 마치고도 이런 저런 일 때문에 어디 가지도 못했잖아? 게다가 맞춤한 동행도 있잖아? 초등학생 때부터 뮤지컬에 흠뻑 빠져서 ‘장래 희망’(장래라니! 당장 취업을 해야 할 나이인데!)을 공연기획자로 확고하게 정해 두신 따님. 세계적 공연 축제 보고 오면 견문도 넓어질 테고 체력 좋으니 짐도 좀 들게 하고, 다이어트 삼아 많이 걷고 덜 먹으면 일석삼조렷다!

그렇게 지난 이른 봄, 모녀의 45일 유럽여행은 싹을 틔웠다. ‘모녀 여행’을 검색어로 인터넷을 뒤져보니, 홍콩, 크로아티아, 터키 등등 숱한 모녀여행기가 눈에 띈다. 그런데 굳이 공통주제어를 찾자면 ‘싸웠다’가 압도적. 대개는 딸의 관점이다. 헷, 우린 그럴 리 없어.

방년 여섯 살 때 이미 든든한 길동무 노릇을 했던 딸. 뭐든지 잘 먹고, 오래 걸어도 군말 없고, 최고의 길동무 아닌가. 폼페이 행 완행열차에서 앞자리 알 파치노(닮은 분) 훔쳐보느라 정신줄 놓은 엄마에게 “여기 폼페이역이야!”하고 소리쳐서 여행길을 구원한 능력자다.

엄마와 딸의 45일 유럽 여행 계획은 그렇게 시작됐다. 어디에 갈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머리를 맞댔다. 우선 취향이 맞았다. 아비뇽 축제 가자! 어 좋지. 그 담엔 에든버러 축제야! 어 좋아. 음… 아비뇽 축제는 7월 6일 개막해서 26일 끝나. 에든버러 축제는 8월 4일 개막해서 25일 끝나네. 그럼 그 중간엔 어디 갈까? 파리에서 아비뇽까지는 야간열차를 이용하고 8월 5일 런던으로 들어가서 에든버러로 올라갔다가 어쩌고 저쩌고… 한여름 최성수기에 워낙 긴 여행이라 한국과 유럽 왕복 항공권은 온 가족 마일리지를 다 털고, 숙소는 모조리 에어비앤비에 중간 중간 친지 댁 식객으로. 아무리 예산을 쥐어짜도 가산을 탕진하게 생겼으니 맛집 탐방은 노노노. 숙소며 렌터카, 저가 항공 예약에 페스티벌 공식 참가작 티켓도 모두 인터넷으로 예약했다. 그렇게 모녀는 4개월 가까이 ‘완벽한’ 여행을 준비했다.

완벽한 여행? 아뿔싸. 신발끈 묶고 길을 나선 순간 알게 됐다. 엄마는 딸을 몰랐다. 아니, 엄마가 진짜 몰랐던 건 자신이었다. 까칠하고 버럭 대는 자신이 얼마나 허당인지. 언제나 느긋하고 별 생각 없어 보이던 딸이 얼마나 찬찬하고 꼼꼼한지. 여행길에서는 시간이 금 아니라 다이아몬드 보다 귀하다고 여기는 엄마는 앞 뒤 스케줄에 20분 이상 여유를 두지 않고 빽빽하게 일정을 짰다. 척척 착착 생각대로 일정이 진행되지 않으면 어마어마하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반면, 딸은 느긋하기 그지없다. 뭐, 그런 걸 일일이 다 해야 하나? 날씨 좋은데 그냥 햇볕 쬐고 앉아있음 좋을 텐데. 엄마의 울트라수퍼 빡빡스케줄에 굳이 저항은 안하지만 은근한 사보타주(태업)로 제 뜻을 관철한다. 까칠 버럭과 평화주의자가 부딪히면 누가 더 힘들까? 평화주의자가 당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까칠한 쪽이 백전백패다. 평화주의자가 불러온 평화는 모녀 모두에게 힘이 됐다.

 

독일 바바리아의 중세 도시 란츠버그 중심가. 지역 아티스트의 목조각이 거리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박선이
독일 바바리아의 중세 도시 란츠버그 중심가. 지역 아티스트의 목조각이 거리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박선이

엄마의 명백한 1패는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드러났다. 에어비앤비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서려는 순간, 엄마가 들고 온 여행안내서의 정체가 드러났다. 파리도 아니고, 프로방스도 아닌, 요즘 보기 드물게 한 나라 전체를 한 권에 담은 프.랑.스. 헐, 1996년 판 양장본이다. 흠. 겨우 20년 밖에 안됐네. 루브르 박물관이 어디 갔겠어? 파리 부분만 두두둑 뜯어서 손가방에 넣었다. 독일에서는 지인 댁 서재에 꽂힌 배낭여행 안내서의 고전 『세계를 간다』 1989년 초판본 신세를 졌다. 정확히는 독일편이 아니라 서독편이다. 동독 부분이 없었고, 모든 정보가 독일 마르크화로 표시되어 있었다(그러고 보니, 28년간 유럽도 많이 변했구나!).

세상에 아무 것도 급할 것 없다는 여유만만으로 마음 바쁜 엄마를 열 받게 하던 딸은 꼼꼼하고 차분했다. 아비뇽 축제 중간에 휴대폰을 도둑맞고 문자 그대로 멘붕이었을 때, 딸은 엄마 지인들 전화번호가 빼곡히 저장된 사이트를 찾아냈다. 무료 와이파이 이용하기가 길에서 500원 동전 줍기보다 어려웠던 유럽에서 무료 와이파이 되는 곳에 갈 때마다 휴대폰 설정을 바꿔서 척척 연결했다. 자기 몸에 지남철이 장착됐다고 생각하는 엄마가 사실은 언제나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을 알아채고 ‘구지’(구글 지도) 선생 말씀을 들으라고 점잖게 일러주기도 했다.

그렇게 45일을 무사히, 휴대전화 도둑맞고 - 슈퍼마켓 계산기에 신용카드 두고 오고- 한밤중 빗속의 아우토반을 후미등 안 켜고 깜깜이로 달린 소소한 문제들은 모두 엄마 몫, 그 외에는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 아비뇽 교황궁 뜰의 플라멩코 공연은 황홀했고 거리의 광대들은 유쾌했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독일 세 나라가 국경을 맞댄 콘스탄체 호반 무대의 오페라 ‘카르멘’은 꿈 속 같았다. 조용하지만 품위 있었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온 도시의 골목골목이 축제장이었던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흥분을 함께 되살려본다.

 

 

엄마 박선이, 딸 박한결 ⓒ박선이
엄마 박선이, 딸 박한결 ⓒ박선이

엄마와 딸은 누구?

엄마 박선이 27년 8개월 동안 신문기자로 일했다. 연극, 영화, 책 담당으로 일하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 기자 생활을 마친 뒤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으로 1년에 1000편 넘는 영화의 연령별 등급 분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지휘했다. 30년 넘게 소망해 온 유럽의 공연예술 축제를 드디어! 다녀와서 아직도 꿈속에 있는 듯하다.

딸 박한결은 4살 때 피터팬이 등 뒤에 줄달고 서울 예술의전당 객석 위를 나는 것을 본 뒤 뮤지컬에 푹 빠졌다. 공연예술 기획자가 되는 것이 소망. 지금은 산울림 소극장 인턴으로 극장 앞마당 쓸기, 티켓에 도장 찍기를 담당하며 기본을 다지고 있다.

 

<여행 준비 Tip.>

1. 공연 티켓 구하기

유럽의 한 여름은 밤 9시 넘어도 해가지지 않는다. 크고 작은 도시에서 연극, 무용, 오페라, 음악 축제가 이어진다. 공연티켓은 축제에 따라 1년~2개월 전부터 인터넷으로 예약할 수 있다. 매진된 공연이라도 현장에서 표를 구할 방법은 있다. 반드시(그렇다, 반드시) 취소된 자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아비뇽 OFF, 에든버러 프린지 등 비공식 참가작 가운데는 공식 작품 못지않거나 오히려 더 뛰어난 작품들도 많다.

아비뇽 축제 http://www.festival-avignon.com/en/booking-prices

에든버러 축제 https://www.eif.co.uk

브레겐츠 축제 https://bregenzerfestspiele.com/en#

잘츠부르크 축제 http://www.salzburgerfestspiele.at

 

2. 숙소 구하기

공연 축제 여행은 한 가지 ‘약점’이 있다. 축제 기간은 여름휴가 최성수기인데다, 축제가 열리는 지역은 대개 인구 몇 만 명 수준의 작은 도시. 호텔도 많지 않고, 숙박비도 비수기 때보다 두 세배 높다. 우리는 4월에 파리, 아비뇽, 에든버러의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는데, 좀 더 미리 찾았으면 더 좋은 위치에 더 좋은 가격의 숙소를 얻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수수료와 청소비 포함, 1박에 7만~10만원 꼴이었다. 에어비앤비는 서비스 수준 차가 너무 커서, 위치와 설비를 미리 잘 확인해야 한다. 예약 때는 취소와 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야 하며, 이용할 때 요구 사항을 영어로 말 할 수 있어야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다. 집 주인과 함께 쓰는 집은 깨끗하고 편한 대신 욕실, 부엌 이용이 좀 불편하고 독채로 빌려 쓰는 집은 아예 사업용으로 운영하는 곳이라 시설이 안 좋거나 너무 좁은 곳도 많다. 우리가 이용한 곳 중 아비뇽은 에어비앤비 사업용 독채였는데, 두 번째로 묵었던 집은 와이파이 설비가 없어 아주 불편했다.

에어비앤비 www.airbnb.co.kr

 

3. 휴대폰 로밍과 데이터 사용

휴대폰을 도둑맞아 보니 해외여행에서 스마트폰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소중함을 넘어 거의 생명선이다) 실감이 났다. 우리는 둘 다 KT를 쓰고 있는데, 45일 간 데이터 사용 비용이 너무 부담이 돼 나는 로밍만 하고 데이터는 막았다. 현지에서 와이파이를 쓸 요량이었다. 딸은 KT를 일시 사용정지하고 외국 통신사의 데이터 전용 유심을 샀다. 결과? 망했다. 내 휴대폰을 잃어버렸는데 딸의 유심은 전화통화가 안됐다. KT로 전화를 할 길이 없었다, 하루 종일 어쩔 줄 모르고 헤매다 아비뇽 관광사무소에서 전화를 빌려 KT에 연결했다. 데이터가 다소 남은 유심은 포기했다(중간에 빼면 나머지는 무효가 된다). KT의 데이터 서비스 중 최대 28일간 2기가(GIGA)를 쓸 수 있는 프로그램(기가팩 2기가)이 4만4000원인데, 4일 간 주로 구글 내비게이션에 사용했다. 1일 무제한 이용 4일치와 같은 값인데 속도가 빠르니 내비게이션으로 사용하기에는 훨씬 유용했다. 1일 사용료 1만1000원인 1일 무제한요금제는 데이터 사용량 100메가가 넘으면 3G보다 느린 속도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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