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임원할당제 도입 국가 여성임원 비율 20~30% 

아직은 갈 길 먼 한국기업...100대기업 여성임원 2.3%

“정부 감시 사각지대 있는 중소기업부터 시작해야” 

전 세계적으로 여성임원 비율을 ‘30%’까지 끌어올리자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 상장회사 중 규모가 큰 상위 11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여성 30% 할당제를 도입했다. 2003년 세계 최초로 ‘여성임원할당제’를 시작한 노르웨이에 이어 2010년 프랑스, 2011년 이탈리아, 2012년 네덜란드도 여성임원할당제를 도입했다. 이들 국가의 여성임원 비율은 20~30%로 확대됐으며, 노르웨이의 경우 여성임원 비율이 40%에 육박한다. 여성임원 30%는 상징적인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조직 내 여성임원이 30%를 넘어서야 조직과 소통방식, 인사평가 방식이 바뀔 수 있다”며 “여성 비율이 높고 정부의 감시 사각지대에 놓인 중소기업부터 여성임원할당제 30%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 곳곳에서 여성임원할당제 도입으로 이사회의 유리천장이 뚫리고 있지만, 한국의 유리천장은 여전히 두텁다. 여성가족부(장관 정현백·이하 여가부)에 따르면 지난해 500대 기업 임원 중 여성임원이 단 한 명도 없는 기업은 366개사였다. 여가부가 2016년 발표한 조사에서도 100대 기업 중 절반 이상인 52개사는 여성임원이 한 명도 없었다. 100대 기업 여성임원은 2.3%에 불과했다. 올해 30대 그룹 임원 승진자 중 여성은 37명(2.4%)이다. 한국의 ‘유리천장지수’(Glass-Ceiling Index)는 4년 연속 OECD 꼴찌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한국의 유리천장지수는 25점으로 OECD 평균인 56점의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은 뿌리 깊은 남성중심 기업문화에 있다. 사람인(대표 이정근)이 직장인 738명에게 ‘직장 내 유리천장’을 조사한 결과, 54.3%가 ‘있다’고 응답했다. 유리천장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로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있어서’(45.4%·복수응답)가 1위를 차지했다. 여성의 출산과 육아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통계청이 2014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은 약 3시간 13분으로, 맞벌이 남성(약 43분)의 4.5배에 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여성신문이 주최한 대선후보 초청 성평등 정책 간담회에서 “성평등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고, 적극적으로 ‘성평등 정책’을 국정 운영에 반영했다. 역대 정부 중 처음으로 ‘여성 장관 30%’을 달성했고, 국정 과제에도 성평등 가치를 담았으며 젠더폭력의 국가 책임을 강화했다. 이러한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공공기관을 넘어 민간기업에도 점진적으로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 민간기업에서 고용의 성차별을 해소하는 장치가 있다. 정부는 공공기관과 500명 이상 근무하는 사업장이 여성 고용 기준을 달성하도록 하는 정책인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ffirmative action)’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여성 근로자 및 관리자의 비율이 규모별, 동종 업종 평균의 70%에 미달한 기업의 여성 고용 신장을 이루는 데 이바지해왔다. 첫 시행년도인 2006년 10.22%였던 여성 관리자 비율이 2016년 20.39%로 10.17%p 증가했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각 업계에서 ‘유리천장’을 깬 여성 CEO들이 한 명씩 등장했다. 임일순 홈플러스 사장, 한성숙 네이버 대표, 김유미 삼성 SDI 부사장, 황지나 한국 GM 사장 등이 그 예다. 일부 대기업 재벌가 출신으로 초고속 승진이 당연한 여성 CEO들과 달리 이들은 평사원으로 시작해 기업 내에서 차근차근 그 능력을 인정받고 경력을 쌓아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선배 여성 CEO이자 경제활동을 하는 수많은 여성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올해 대형마트 업계 유리천장을 깬 여성은 임일순 홈플러스 사장이다. 임 신임 사장은 대형마트의 고객 80%가 여성인 상황에서 여성 CEO의 관점으로 대형마트를 바라보는 차별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소 냉철하고 꼼꼼한 경영 스타일로 직원들과 적극 소통해온 점이 승진의 배경으로 꼽힌다. 그는 최근까지 홈플러스 경영지원부문장을 맡았으며, 이전에는 재무부문장(CFO)를 역임했다.

지난해는 포털 업계 1위 네이버에서 첫 여성 CEO가 나왔다. 한성숙 대표는 성별뿐만 아니라 IT업계에서 성공이 쉽지 않은 ‘문과생’이란 출신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이버 웹툰, 웹소설 등의 수익모델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한류 스타들의 인터넷 방송 서비스인 브이라이브(V-Live), 네이버페이 등 모바일 플랫폼 서비스 또한 한 대표 작품이다. 그는 ‘V-Live’를 통해 네이버의 고객 범위를 아시아 시장으로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고 알려졌다. 현재까지도 한 대표는 인터넷, 모바일 등 네이버 서비스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 기업이 갈 길은 멀다. 지난해 국내 500대 기업에서 여성임원 비율은 100명 중 3명이 안 됐다. 특히 소수 여성 CEO의 등장으로 잠시나마 성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토크니즘’(Tokenism)의 단계를 넘어 여성임원 30% 이상의 임계점까지 가야 유의미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들은 이사회에 여성이 30%는 있어야 조직이 변화한다며 ‘여성임원할당제’를 강조했다.

김영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도 적극적 고용개선조치가 있기 전까지 여성 관리자 비율이 늘지 않았다. 이런 조치가 고위직 여성대표성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국내에서 적극적 고용개선조치가 이뤄지고 있지만 집행력이 미약해 한계가 있다. 강제성을 지녀야 한다. 한 사람만 대표로 뽑아 구색을 갖추는 ‘토크니즘’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여성임원이 30% 이상 충족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여성임원이 소수일 경우 이들의 역할이 고정관념으로 제한될 수 있다. 여성 CEO라는 이유로 엄마처럼 품어줄 것을 강요받는다든지 남성 CEO와의 비교가 이뤄진다”며 “남성 일반이 이뤄놓은 업적과 소수 여성의 결과가 끊임없이 비교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노출된다. 따라서 소수인 경우 제대로 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유리천장을 깬 여성임원 1세대이자 보험업계 최초 여성으로서 회장 자리에 오른 손병옥 전 푸르덴셜생명 회장도 지난 9월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여성임원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으로 말씀하는 분들이 있지만 그러면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한다. 기업 이사회에 여성이 늘어나려면 ‘임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여성임원할당제’를 통한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 임계점을 30%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의 적극적 고용개선조치와 여성임원할당제는 특히 여성 비율이 높은 중소기업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일·가정 양립 의식이 확산돼 비교적 인사관리가 공식화, 체계화된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정부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인사관리에 대한 노동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인사 외의 합리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정부의 컨설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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