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넘쳐나는 학교 교실

페미니스트 교사 공격 받고

학생인권조례 폐지 운동 일어

‘다르지만 같은 삶’ 인식해야

 

‘무지개를 만난 교사들; 특별한 초대의 자리’ 모임에서 교사들이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남긴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제공
‘무지개를 만난 교사들; 특별한 초대의 자리’ 모임에서 교사들이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남긴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제공

흔히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내가 느끼기에 요즘의 학교는 혐오가 넘쳐나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 4년차인 나는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교실에서의 혐오 표현에 이제야 불편함을 느끼게 됐는지도 모른다. 혐오 표현의 문제가 최근 우리사회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는 것은 젠더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과 관계가 깊다. 사실 혐오는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인간이 작동시킨 하나의 정동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의 혐오는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따라 요구돼온 사회적 산물이며,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칼날이 되어 휘둘러지고 있다.

혐오가 만연하는 사회적 상황에서 학교가 혐오에 전면으로 맞설 수 있을까?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학교는, 그리고 교사는 차별받고 배제당하는 학생이 없는, 모든 구성원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교육을 위해 힘써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페미니스트 교사들이 공격을 받고 있으며, 학생인권조례 폐지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내가 활동하고 있는 인권교육을 위한 교사 모임 ‘샘’의 선생님들과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학교에서 무지개길 찾기 가이드북(가칭)’을 제작하기로 했고, 실제 성소수자를 만난 교사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무지개를 만난 교사들; 특별한 초대의 자리>를 기획해 지난 9월 9일 모임을 가졌다.

모임은 참석자들의 자기소개로 시작됐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내가 실제로 만난 성소수자’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모임의 본론에서는 ‘학교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말하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보내는 응원·지지의 메시지를 남겼다. 가이드북의 초안이 나오면 선생님들께 다시 의견을 구하기로 하고 모임은 마무리됐다. 교육계 안팎으로 청소년 성소수자 교육에 대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용기를 내어, 또 희망을 붙잡는 마음으로 모인 선생님들의 존재가 서로에게 많은 위로와 힘이 됨을 느꼈다. 선생님들의 수많은 경험과 감정, 생각들이 끊임없이 오고 갔다. 특히 학교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말하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을 ‘벽’으로, 그것에 대한 해결 방안을 벽을 타고 올라가는 ‘담쟁이 넝쿨’로,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보내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장 위에 피어난 ‘꽃’으로 형상화한 모임의 결과물은 우리가 함께 그릴 교육의 미래로서 각자의 머리와 마음 속에 구체화 됐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모임에서 많은 힘을 얻고 다시 돌아간 학교는 여전했다. 교실에서는 남학생들이 ‘메갈이 어쩌구’라며 ‘남혐’이 판치는 세상을 개탄했으며, 나는 ‘위례별초 사건’이 뭔지 모르는 선생님들과 평화롭고 새로울 것 없는 학교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모임 이후 나는 이런 생각을 계속한다. ‘당사자로서 살아보지 않은 내가 감히 그 사람의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데 혹자는 “성소수자의 인권은 ‘인정’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다”든가 “나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등의 말을 한다. 인간이 사는 세계는 모순과 아이러니로 가득하며 복잡하고 다양한 것들이 서로 얽혀있다. 이런 것을 모두 지워버리려는, 쉽게 구분하고 이해하려는 생각과 행위들은 인간의 오만과 어리석음일 뿐이다.

나는 성소수자를 포함한 성평등 교육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다. 최근 막을 내린 제 11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 ‘부치, 젠더질서의 교란자’라는 영화를 보게 됐는데 이 영화에서 청소년 성소수자 교육의 중요한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청소년 성소수자를 단지 ‘환영’하는 것만으로는 미완성이다. 환영한다는 것은 ‘너희도 우리랑 평등한 거 아니까 너희끼리 살아’라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은 성소수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 성소수자에게는 자신이 소수자여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성인 성소수자들을 모델링 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얼마 전에 마지막 상영을 마친 이영 감독의 영화 ‘불온한 당신’은 나이 든 레즈비언 바지씨의 삶을 통해 성소수자 존재를 증명하고 그들의 역사를 기록했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가시화하고 ‘다르지만 같은 삶’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을 가진 채 불평등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나는 성인으로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청년으로서 노인에게,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에게, 정규직으로서 비정규직에게, 시스젠더 여성으로서 젠더퀴어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잠재적인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서로 이해하기 어렵다. 삶이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무한한 우주 같은 또 다른 인간들과 함께 행복을 도모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이를 위해 우리가 만드는 가이드북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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