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행위는 두려움을 이겨낸

용기이자, 연대의 씨앗

 

 

증언하시겠습니까?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 채택을 위한 미국 의회 공개 청문회장 안. 증언자로 참석한 옥분은 담담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예스, 아이 캔 스피크” 옥분의 입이 열리기까지 수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위안부 영화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톤으로 위안부를 다룬다. 일본군의 폭력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지도, 위안부의 상처와 고통을 섹슈얼하게 전시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충분히 감동적이다. 평론가 박우성이 평했듯이 가학적인 이미지 단 한 컷 없이도 상흔을 온당히 보듬는다.

‘나는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자의든 타의든 그동안은 말할 수 없었음을 함의한다. 옥분은 수년간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숨기고 살았다. 그녀와 막역하게 정을 나누며 사는 이웃, 진주댁에게조차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남동생 앞길 막는다며, 남들에게 욕먹을까 봐 평생 숨기고 살라던 엄마의 말이 어린 옥분의 가슴에 칼날처럼 박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옥분도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위안부 친구 정심을 바라보며 예감한다. 언젠가는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밝히고, 정심을 대신해 세상 사람들에게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할 날이 올 것을 말이다. 정심이 마지막 기억의 끈을 놓아버린 날, 옥분은 마침내 결심한다. 더 이상 숨기지 않겠노라고.

말하는 행위는 두려움을 이겨낸 용기이자, 연대의 씨앗이다. 실제로,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2007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의 이용수, 고 김군자 할머니의 증언은 결의안 채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사회 곳곳의 연대로 이어졌다.

발화를 통한 연대는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여성혐오’(misogyny)라는 말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까지는 대중들이 흔히 쓰지 않는 말이었다. 과거에 여성혐오가 없던 것은 아니다. 입 밖으로 얘기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간 실체가 없던 ‘여성혐오’가 실제 범죄로 이어진 이 상징적인 사건으로, 여성들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혐오와 폭력의 순간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발화는 점차 여럿의 목소리로 모였고 집적됐다.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되지 않은 채 수면 아래에 불편하게 감춰져 있던 것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여성혐오란 말은 실체를 갖게 되었다.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에서 ‘위 캔 스피크’(We can speak)로 이어진 연대의 힘은 한국사회에 페미니즘 논의의 불씨를 댕겼고, 지금까지 그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과학기술계에도 페미니즘 광풍이 불길 기대한다. 과학기술계에 여성은 아직 소수자다. ‘여성이여 과학을 하고 싶으면 수염을 기르라’는 칸트의 말에서 보듯이, 17세기 근대과학이 태동한 이래로, 여성은 과학기술에서 배척당해왔다. 과학은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편견과 고정관념이 현재까지도 여전히 여성을 소수자의 위치에 놓이게 했다. 과학기술계에 가시적으로 여성이 등장하고,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1960년대부터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과학기술계에 여성을 진출시키려는 교육과 제도 개선 노력이 수반된 이후의 일이다. 우리나라는 2002년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본격적으로 정책적 지원을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01년 평균 11.1% 수준이었던 여성 연구원 비율이 2015년에 19.4%로 늘었지만, 강산도 변할 세월에 비견하면 그 변화의 폭이 만족스럽진 않다. 페미니즘 열풍이 과학기술계에도 불길 바라는 이유다.

이제 여성 과학자의 목소리와 구체적 담론을 담는 공간과 활동이 자발적으로 생겨나길 바란다. 다행히 최근 젊은 과학도들을 중심으로 들려오는 연대의 목소리가 반갑다. 올해 초부터 과학기술 중심대학 페미니스트 연합체 ‘페미회로’가 결성돼 활동하고 있고, 온라인 공간에서 이공계 내 성차별 발언이 아카이빙되고 있다. 과학기술계에도 변화를 위한 잔잔한 미풍이 불고 있다. 사그라지지 않게 힘을 실어줘야 할 때이다. 위 캔 스피크 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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