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보다 부드러운 개입이

더 큰 행동 변화 이끈다는 ‘넛지’

안보 정책, 사회 혁신에도

부드러운 개입이 적용돼야

 

 

 

긴 추석 연휴가 끝났다. 정치권이 전하는 추석 민심은 크게 안보와 경제로 집약된다. “전쟁이 나는 것이냐” “안보가 걱정된다” “먹고 살기 힘들어진다”는 말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이런 추석 민심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향후 정치권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한다. 이를 반영하듯 문재인 대통령은 추석 연휴 직후 가진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추석 기간에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민생과 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라는 엄중한 민심이었다”며 “정부는 민심을 받들어 비상한 각오로 민생과 개혁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핵 위기가 발목을 잡고 있지만 우리 경제의 기초는 아주 튼튼하고 굳건하다”며 “박(박근혜) 정부에서 2%대로 추락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는 한편 성장이 일자리로 이어져 혜택이 국민에게 소득으로 돌아가도록 사명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문제는 문 대통령이 민생과 개혁을 강조했지만 정작 안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는 점이다. 지금 한반도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 전략’과 북한 김정은의 ‘벼랑 끝 전술’이 충돌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트럼프는 최근 백악관에서 군 수뇌부 회의를 마친 뒤 “(지금은) 폭풍 전의 고요”라고 말했다. 군 작전 지휘부에 “내게 폭넓은 군사 옵션을 제공해 주기 바란다”고 까지 말했다. 마치 북한에 대한 군사 행동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이에 맞서 김정은은 노동당 전원회의를 열어 “핵 무장 계속”과 “자력갱생”을 강조했다.

안보 상황이 이렇게 엄중한데도 문재인 정부는 “전쟁은 안 된다”는 말만 할 뿐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심지어 외교·안보 라인이 혼선을 보이며 갈팡질팡하고 있다. 오죽하면 문 대통령이 추석 연휴 직후 청와대에서 5부 요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안보 위기에 대해 우리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북·미 대결 속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무력감을 호소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나라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이 너무 무기력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문 대통령은 작금의 안보 위기에 대해 “외부적 요인이 있다 하더라도 내부만 제대로 결속되고 단합한다면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규범적인 차원을 넘어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내부 단합을 이룩할 수 있을까.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행동경제학에 선구적 역할을 한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노벨위원회는 “세일러 교수가 현실에 있는 심리적인 가정을 경제학적 의사결정 분석의 대상으로 통합하는 데 기여했다”고 학문적 공로를 평가했다. 그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의미를 가진 넛지(Nudge) 이론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세일러 교수는 이를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으로 정의했다. 그는 강요보다는 은근한 개입이 더 큰 행동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일러 교수의 넛지 이론은 안보 정책에도, 우리 사회의 혁신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의 심리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여기에 맞춰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제도를 설계하면 적은 비용으로 특정한 행동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안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선택 설계’(choice architect)를 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회의에서 “적폐청산과 개혁은 사정이 아니라 권력기관과 경제·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누적돼 온 관행을 혁신해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라며 “그것은 대한민국 경쟁력을 높이는 일인 만큼 속도감 있게 개혁을 추진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런 강경한 국정 운영 기조는 부드러운 개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결과적으로 안보를 위한 여·야·정 국정 상설 협의체 구성이 물 건너갈 것 같아 걱정스럽다. 적폐 청산 못지않게 정부가 과감하지 않더라도 부드러운 개입에 기초한 지혜로운 정책을 통해 남성과 여성 간의 차이가 차별을 낳는 왜곡된 구조를 바꿀 때 진정한 성평등 국가가 만들어지고 국가 경쟁력도 상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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