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여성단체 연대체 결성

“낙태죄 폐지 없인 성평등 국가 이룰 수 없어” 여성들 한목소리

“의학적으로 100% 피임법 없어…낙태죄는 신체 자유 침해하는 국가폭력”

 

28일 오전 11시 반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 행사에 참석한 여성이 피켓을 들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8일 오전 11시 반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 행사에 참석한 여성이 피켓을 들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내 삶은, 내 몸은 불법이 아니다”

형법상 ‘낙태죄 폐지’를 위해 여성들이 다시 거리에 나섰다. 지난해 한국판 ‘검은 시위’에 나선지 1년 만이다. 여성단체 연대체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28일 오전 11시 반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공동행동에는 건강과대안젠더건강팀, 불꽃페미액션, 성과재생산포럼, 장애여성공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페미당당, 페미몬스터즈,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가 함께했다.

이날 10여명의 여성들은 낙태 경험을 털어놨다. 원치 않는 임신, 그로 인한 임신중절수술, 장애여성에게 가해지는 낙태 제안 등은 성차별로 점철된 여성의 삶을 그대로 보여줬다. 여성들은 발언을 마친 후 붉은 리본을 함께 들고 ‘낙태죄 폐지’를 위해 싸워나가겠다는 연대의 의지를 다졌다. 이날 거리를 지나던 학생들은 이에 동의를 표하며 환호와 박수 세례를 보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28일 오전 11시 반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행사 참석자들은 발언을 마친 후 함께 붉은 리본을 들고 ‘낙태죄 폐지’를 위해 싸워나가겠다는 연대의 의지를 다졌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28일 오전 11시 반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행사 참석자들은 발언을 마친 후 함께 붉은 리본을 들고 ‘낙태죄 폐지’를 위해 싸워나가겠다는 연대의 의지를 다졌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공동행동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낙태죄는 사문화된 법이라고 했지만 낙태죄는 사문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낙태한 여성과 시술 의사만 처벌하는 법을 악용해 여성들을 협박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 선언하고,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를 통해 성평등을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낙태죄 폐지 없인 성평등을 이룰 수 없다. 따라서 낙태죄는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동행동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74개국이 임신중단 결정에 허용사유를 두지 않고 합법적으로 진료·시술을 보장하고 있다.

이어 공동행동은 “의학적으로 100% 보장되는 피임법은 없기 때문에 안전하고 합법적인 인공임신중절이 보장돼야 한다. 사회 구성원이 피임기술과 의료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는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기본적인 재생산 권리”라며 “여성의 몸을 불법화하는 낙태죄를 폐지하라. 장애와 질병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조항도 전면 개정하라. 결혼 유무,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장애와 질병, 경제적 차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모성을 실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또 “낙태죄는 국가주도의 출산 통제, 인구 관리를 행하는 도구로 활용돼왔다”며 “이는 인권의 기초인 신체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폭력”이라고 비판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28일 오전 11시 반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28일 오전 11시 반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날 발언에 나선 여성들의 목소리를 소개한다. 

-1996년, 두 번의 임신중절 경험

독박육아, 이중노동, 피임은 신경도 안 쓰는 남편을 둔 모든 기혼 여성을 위해 낙태죄 폐지를 요구한다. 1996년 10월 그리고 같은 해 12월 두 번의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 아이 둘에 빠듯한 벌이로 전세 대출금 이자 갚고 양쪽 부모님 뒷바라지 하며 정신없이 살아가는 ‘보통의 부부’였다. 셋째가 생겼다는 걸 알고 눈앞이 캄캄했다. 독박육아와 직장생활로 지친 상태였기에 셋째까지 키울 수는 없었다. 그런데 수술 받은 지 두 달도 채 되기 전 남편은 ‘괜찮다’며 피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성관계를 했다. 또다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됐다. 병원에선 약해진 내 몸이 또 한 번의 낙태를 버티지 못할 거라고 염려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1979년, 국가에 의한 복강경 피임 시술

가난하고 못 배운 여자면 국가가 마음대로 다뤄도 되는가. 당시 나는 가난한 동네에서 자라 가난한 가정을 이룬 20대 초반이었다. 언제부턴가 보건소에서 나온 사람들이 가족계획사업을 한다고 집집마다 다니며 ‘애 안 낳는 게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이고 애국’이라고 했다. 수술하면 세금을 덜 낸다는 둥 집 구할 때 우선권을 준다는 둥 동네에 소문이 돌았다. 하도 집을 찾아와 권하는데다 무료라고 하길래 수술을 받았다. 근데 수술 후 배가 너무 아프고 염증 때문에 한참 고생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보건소마다 수술 건수가 많을수록 국가에서 돈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제대로 된 설명 없이 거의 반강제로 수술한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애 낳으라면 낳고, 낳지 말라면 낳지 않아야 하는 도구인가. 낳으라는 지금이나, 낳지 말라던 그때나 국가는 틀렸다.” 

 

28일 오전 11시 반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 행사에 참석한 여성이 피켓을 들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8일 오전 11시 반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 행사에 참석한 여성이 피켓을 들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7년, 임신·낙태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함

학생의 임신은 죄인가. 올해 2월, 임신한 걸 알았다. 생리가 늦어졌는데 임신일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일주일간 남자친구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 고민했다. 나도 남자친구도 낙태 비용은 얼마인지,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결국 부모님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임신했다는 이유로 부모님에게 맞았다. 아빠는 ‘내 얼굴을 쳐다볼 수조차 없다며 나를 딸로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가 낙태수술을 받았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누구에게라도 하소연하고 싶어 같은 학교 친구에게 털어놨다. 며칠 뒤 학교에 소문이 퍼졌다. 담임이 내게 자퇴서를 쓰라고 했다. ‘임신한 게 죄냐고, 낙태했다고 학교 다닐 권리도 없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학생이 임신한 건 죄다. 자퇴 안 하면 낙태했다는 걸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알리겠다. 낙태는 불법이니 법적으로도 책임을 지게 할 것’이라고 했다. 자퇴서 쓰고 나오는 길, 나는 죄 지은 게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2016년, 비위생적인 병원에서 임신중절수술 받음

“임신사실을 알게 됐을 때 믿을 만한 병원은 어딘지, 수술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어렵게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하자는 수술방법을 따르고, 달라는 대로 금액을 주고 수술을 받았다. 수술실을 들어가니 수술대 의자와 수술 도구에 바로 전 사람이 수술할 때 묻은 피가 보였다. ‘어렵게 찾은 병원인데 수술 못하게 되면 어떡하나.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에 소독조차 요구할 수 없었다. 의료진은 수술 후유증이나 몸 관리 방법 등을 전혀 설명해주지 않았다. 수술 후 출혈이 너무 심하고 길어 걱정됐다. 그러나 검사를 위해 재방문하라는 병원의 문자를 받고도 갈 수 없었다. 불결하고 존중받지 못한 그곳에서의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낙태는 불법인데 수술했다고 말해도 되는 건지, 어디까지 얘기해야 되는지 고민하다 다른 병원에도 가지 못했다. 낙태죄가 존재하는 이상, 나에게는 임신을 중단할 권리뿐만 아니라 건강을 유지할 기본적 권리도 없다.”

 

28일 오전 11시 반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 행사에 참석한 여성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8일 오전 11시 반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 행사에 참석한 여성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날 행사 참석자들은 붉은 리본을 함께 들고 ‘낙태죄 폐지’를 위해 싸워나가겠다는 연대의 의지를 다졌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날 행사 참석자들은 붉은 리본을 함께 들고 ‘낙태죄 폐지’를 위해 싸워나가겠다는 연대의 의지를 다졌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2년,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중절

“20살 겨울, 소개팅으로 만난 이에게 모텔로 끌려가 성폭행 당했다. 부모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신고하지 않았다. 생리가 나오지 않아 병원에 가니 임신 4주라는 소식 들었다. 인공임신중단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근데 병원에서는 ‘낙태죄’라는 법 때문에 수술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은 모자보건법 상 인공임신중절수술 허용사유지만, 내가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먼저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 어렵게 마음먹고 가해자를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에선 수술을 위해 허위 신고한 것 아니냐’며 고소 확인서를 내주지 않았다. 기소 송치 되고서야 겨우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때는 이미 임신 14주차가 넘어 수술비용도, 수술 리스크도 훨씬 높아진 상태였다. 수술받기 직전 ‘성폭력 피해가 아님이 밝혀질 경우 책임지겠다’는 서약서까지 써야 했다. ‘가해자가 무죄 판결을 받으면 내가 낙태죄로 처벌받아야 하는 것인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당장 내 몸이 인질로 잡힌 상태였기 때문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2009년, 첫 출산…장애여성에게 낙태 권하는 나라

“임신하고 대학병원을 찾았을 때 간호사가 장애여성인 나를 보고 너무도 당연하게 ‘아기 지우실 거죠?’라고 했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국가가 마음대로 ‘낙태해야 할 몸, 낙태해선 안 될 몸’을 규정짓고 ‘아이 낳을 권리도, 낙태할 권리’도 보장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 우리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 여성의 몸은 국가의 몸이 아니다. 여성이 그 자체로 존엄성을 갖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들라.

9월 28일은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 중절 보장을 위한 국제행동의 날(Global Day of Action for Access to Safe and Legal Abortion)이다. 전 세계의 여성들이 여성의 몸을 불법화하고, 임신중절을 받는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는 국가와 법·제도에 맞서 저항하고 있다. 한국판 ‘검은 시위’는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가 인공임신중절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 입법예고안을 발표하며 촉발됐다. 앞서 폴란드에서 10만명이 넘는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고, 그 결과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이 폐기된 바 있다. 당시 폴란드 여성들은 생식권에 대한 애도의 의미로 검은 옷을 입어 ‘검은 시위’로 불렸다. 한국 여성들도 그 뜻을 이어받아 검은 옷을 입고 시위를 벌였고, 15일 서울에서 벌인 첫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