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보라X’ 뮤직 페스티벌 기획단

여성이 만들고 여성이 즐기는 축제

“휠체어·아이 동반 관객·

트랜스 여성도 환영하는 축제로”

“록 페스티벌에서 어떤 남성이 내게 “혹시 개방적이세요?”라고 물었다. 개방적이라면 자신과 자자는 말이었다.” 

“공연장에서 취한 남성이 뒤에서 내 가슴을 만졌고, 손으로 밀어내자 “좋으면서 왜 그러냐”며 이번에는 귀에 숨을 불어 넣었다. (…) 플러팅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란다 그건 폭력이지.” 

“홍대 인디 뮤지션 공연 보면서 곡 좋다고 했더니 “여자들은 ○○○(뮤지션)의 얼굴과 몸 보러 온다는 비아냥 들음.”

여성들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털어놓은 ‘#나의_불편한_페스티벌_이야기’다. 즐거워야 할 축제가 여성에겐 폭력과 혐오에 노출된 위험지대다. 술 취한 남성 관객이 폭력을 휘두르려 해 공포에 떨었다는 여성,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른 남성 관객에게 무시당한 여성…. 그런데, “여성혐오 없는 음악을 들으며 성폭력, 시선강간, 몰래카메라 걱정 없이 여성들이 편히 즐길 수 있는” 음악 페스티벌이 열린다면? 

 

제1회 ‘보라X(BORA X) 뮤직 페스티벌’이 다음 달 8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물빛무대에서 열린다. 싱어송라이터 시와·오지은, 밴드 데드가카스·에이퍼즈, 래퍼 슬릭·최삼, DJ SEESEA, 페미니스트 풍물패 페악질 등이 무대에 선다. 나쁜페미니스트, 노동당 여성위원회, 녹색당여성특별위원회, 동경페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불꽃페미액션, 서강대 여학생협의회 다.다.다, 울산페미기획단, 울산 페미 모임 울프, 전주 여성주의 독서모임 리-본, 초등성평등연구회 등 전국의 다양한 단체·조직이 공동 주최한다. ‘페미니스트의, 페미니스트에 의한, 페미니스트를 위한 음악 페스티벌’이다. “장애여부, 성적지향, 자녀 유무에 상관없이 자발적/강제적 여성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축제를 지향한다. “모든 여성에게 안전하고, 트랜스 여성을 배제하지 않는” 축제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기존 뮤직 페스티벌에서 폭력적인 경험을 한 사람, 여성 뮤지션의 처우에 문제의식을 지닌 사람, 누구나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원하던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가고 있어요. 가부장적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문제도 지겨운데, 놀러 가서도 성폭력과 몰카 걱정을 해야 한다니 참을 수 없다는 마음이 저희의 원동력입니다.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페미니스트들을 만나, 함께 어울리며 연대하고 싶어요.” (기획팀 ‘라꾸’)

“락 페스티벌을 비롯한 많은 페스티벌에서 몰카, 성추행이 있었다는 뉴스는 이제 더 이상 낯선 뉴스가 아니며, 매해 개최되는 음악 페스티벌은 여성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기획단은 지적했다. 국내 음악 페스티벌이 매년 대형화·국제화되고, 여성 관객 비율도 점점 증가하면서 페스티벌 내 성범죄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산 밸리 락 페스티벌’,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등 양대 음악 페스티벌 현장에서 매년 남성 관객이 여성 관객을 성추행하거나, 간이 화장실에서 여성들을 몰래 촬영했다는 신고가 잇따랐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하려는 주최사는 찾기 어렵다. 페스티벌 내 성폭력과 사후 대처 내용을 파악할 공식 통계도 없다. 

이는 한국 인디음악 전반의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여성혐오적 가사는 아무렇지 않게 생산돼 소비되며, 여성과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말은 농담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여성 음악인들은 남성과 똑같이 공연을 해도 60~70% 수준의 급여를 받고, 성희롱·비하·협박 등 폭력을 겪기도 한다. 기획단 소속이자 밴드 ‘데드가카스’의 드러머 A씨는 이러한 현실을 비판하며 “내가 몰래 찍힐까, 누가 내 신체를 감상할까, 내가 가진 지향과 특성으로 인해 눈치 봐야 하는 공연 말고, 걱정 없이 마음껏 나대고 설칠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제1회 ‘보라X(BORA X) 뮤직 페스티벌’ 기획단. ⓒ보라X 뮤직페스티벌 기획단 제공
제1회 ‘보라X(BORA X) 뮤직 페스티벌’ 기획단. ⓒ보라X 뮤직페스티벌 기획단 제공

기획단은 지난 7월16일 첫 회의를 열었다. 시간은 짧고 과제는 많다. 몰카 없는 페스티벌, 어떻게 만들까? 휠체어를 타고 행사장과 부대시설을 이용하려면 어떻게 공간을 구성해야 할까? 아이를 동반한 관객들도 페스티벌을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완벽한 답을 내놓긴 어렵지만, 기획단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장애여성공감, 조각보, 한국여성의전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등 여러 단체의 도움을 받아 대책을 세우고 있다. 먼저 몰카 촬영 등 성범죄 발생을 막기 위해 스태프를 곳곳에 배치해 감시하고, 문제가 생기면 즉시 신고할 계획이다. 프레스 카드 소지자에게만 행사장 촬영을 허가하고, 사진 촬영을 원치 않는 이들에겐 스티커 등을 배부해 구분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또 장애인도 편히 행사장을 드나들 수 있도록 경사로 중심으로 동선을 배치하고, 청각장애인을 위해 공연 중 자막(문자) 통역도 제공할 예정이다. 장애인 화장실도 수동·전동 휠체어 사용자가 모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만 5세 아동에 대해서는 돌봄 서비스도 제공한다. 돌봄 노동자가 행사장 내 부스에서 아이들을 맡아 돌봐주는 식이다. 

 

회의 중인 제1회 ‘보라X(BORA X) 뮤직 페스티벌’ 기획단. ⓒ보라X 뮤직페스티벌 기획단 제공
회의 중인 제1회 ‘보라X(BORA X) 뮤직 페스티벌’ 기획단. ⓒ보라X 뮤직페스티벌 기획단 제공

기획단 대부분이 직장인과 대학생으로, 본업과 행사 준비를 겸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자본이 부족해 기획단의 자비로 섭외 비용을 충당했고, 텀블벅 펀딩 모금액도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절대 실패하지 않겠다”며 의지를 다지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아온 차별을 견디며 굳건히 음악인의 자리를 지킨 여성 뮤지션, 예술계 내 성폭력을 고발한 용감한 여성들, 음악으로 교감해 온 수많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데 어우러지고, 서로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티켓 구매·문의는 공식블로그(blog.naver.com/bora-x), 페이스북 페이지 (facebook.com/2017bor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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