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윤승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 교사

사고로 장애 판정 받은 뒤

소수자 인권 문제에 관심

“학교는 무수한 일반화의

폭력이 자리한 공간”

성평등·인권 교육 강화해야

 

지난해 5월 20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 ‘초록상상’에서 열린 ‘교복입고 여성주의’ 강좌에 참여한 학생들. ⓒ내가 선택한, 내가 만드는
지난해 5월 20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 ‘초록상상’에서 열린 ‘교복입고 여성주의’ 강좌에 참여한 학생들. ⓒ내가 선택한, 내가 만드는

“연습해 봅시다. ‘사실 나, 좋아하는 사람이 여자야’.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까?”

이윤승(38)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 교사가 수업 때마다 꼭 언급하는 주제다.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일상의 배움과 훈련을 거쳐야 자연스럽게 우러난다”고 그는 말했다. “늘 학생들에게 ‘너희 반에 분명히 (성소수자 학생이) 한두 명은 있다’고 말해요. ‘헐 진짜?’ ‘그동안 얘가 날 만진 이유가?’ 식의 반응을 보이는 학생도 있지만, 내가 잘 모르는, 눈에 띄지 않는 존재라는 이유로 무작정 배제하고 혐오할 수는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대신 ‘아 그래’ 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그는 “원래 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많고,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선생님이 된” 12년차 교사다. 페미니즘이나 섹슈얼리티 이슈를 학생들과 나누고 토론하는 장을 만들려 노력해왔다. 조회나 종례 시간, 수업이나 재량 시간을 이용해 젠더 문제를 수업 주제로 삼는다. 최근엔 학생들과 함께 교과서 속 성차별적 묘사를 찾아 수정해봤다. “상업경제 교과서는 생산자를 남성, 소비자를 여성으로 묘사됐더라고요. 장을 보는 사람은 여성으로만 그려 성 역할 고정관념을 보여주는 이미지도 있었죠. 수학 문제도 ‘여학생’ ‘남학생’이 나오는 문제는 항상 남학생을 먼저 언급해요. 학생들이 정말 열심히 찾았어요. ‘이것도 그래요!’ ‘여기도 그래요!’하며 지적하고 함께 토론하고, 중성적인 느낌으로 그림도 바꿔 그려봤죠.”

 

 

이윤승 교사는 학생들과 고등학교 상업경제 교과서 속 성차별적 묘사를 찾아보는 수업도 진행했다. ⓒ이윤승 교사 제공
이윤승 교사는 학생들과 고등학교 상업경제 교과서 속 성차별적 묘사를 찾아보는 수업도 진행했다. ⓒ이윤승 교사 제공

‘양성평등’을 넘어 ‘성평등’을 가르치는 게 그의 수업 원칙이다. 수학을 가르칠 때는 ‘남학생 5명, 여학생 2명’ 같은 문제 조건을 ‘이성애자 5명, 동성애자 2명’으로 바꿔 풀기도 한다. 지난달 기말고사 이후엔 학생들과 ‘퀴어 퍼레이드’(이하 퀴퍼)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 교사는 ‘퀴퍼’의 역사부터 올해 국가기관(국가인권위원회) 참여가 왜 중요한지, 학생인권조례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관련 항목이 들어가게 된 배경 등에 대해 설명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퀴퍼’ 참가 후기를 공유한 학생도, 이날 수업을 계기로 ‘퀴퍼’에 다녀온 학생도 있다. 이른바 ‘메갈 낙인’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페미니즘 관련 활동이나 관심사를 당당히 이야기하는 학생들도 늘었다. 

이화미디어고 학생들은 물론 다른 학교, 다른 지역에서 온 청소년들도 자유로이 참여할 수 있는 ‘학교 밖 인문학 강의’도 3년째 진행 중이다. 1년에 2번씩 5주 동안 강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청소년들도 모여 직접 강의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지난해 5월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직후 ‘교복입고 여성주의’ 강좌를 열고 여성학자 전희경의 페미니즘 강의, 토론,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올해 5월부터 6월까지는 나이와 권위주의에 관한 세미나를 열었다. 

 

지난해 5월 20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 ‘초록상상’에서 ‘교복입고 여성주의’ 강좌가 열렸다. ⓒ내가 선택한, 내가 만드는
지난해 5월 20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 ‘초록상상’에서 ‘교복입고 여성주의’ 강좌가 열렸다. ⓒ내가 선택한, 내가 만드는

 

지난 6월 10일 ‘교복입고 여성주의’ 참가자들이 서울시립대학교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을 하고 있다. ⓒ내가 선택한, 내가 만드는
지난 6월 10일 ‘교복입고 여성주의’ 참가자들이 서울시립대학교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을 하고 있다. ⓒ내가 선택한, 내가 만드는

“다른 수업 시간에는 ‘이런 말을 해도 되나?’하고 고민하게 되는 주제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게 제 일입니다. 교사가 주도적으로, 자연스레 그런 이야기를 꺼내다 보면 학생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더라고요. ‘더러운 레즈들’ 같은 반인권적 발언을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죠.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수많은 학생들이 이 교사에게 ‘커밍아웃’을 한 배경이다. “부모에게도 말하고 싶은 학생이 있다면 함께 고민하고 실행하기도 하고요. 졸업 후에도 찾아와 상담을 요청하거나 제게 못다 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성소수자 학생들도 있어요.”

10대 때 사고로 하반신을 다쳐 장애 2급 판정을 받은 후로 다양한 소수자의 인권 문제에 관심이 높아졌다는 그는 “누구나 다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남들로부터 이해받고 존중받지 못해 피해를 본 경험, ‘통증’의 경험이 있죠. 그걸 깨닫고 공유하자는 겁니다. 소수자가 불쌍해서 그들을 보호하자는 게 아니라, 소수자성이 당연한 것이며 바로 나의 문제라고 여기는 문화를 만들어 내야 해요.” 

동시에 그는 자신을 “이성애자 남성, 어느 정도의 학벌, 교사라는 지위, 큰 가난을 겪지 않고 성장한 기득권자”라고 소개했다. “저는 아직 기득권자의 습관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어요. 그러한 주변인들을 바꾸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못할 때도 있어요. 스스로 ‘페미니스트 교사’라고 소개하기가 부끄러워서 말 못 할 때도 있고요. 다만 다른 페미니스트, 인권 운동가들에 대한 존경심이 꾸준히 활동하는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이 교사가 체감하는 교육 현장의 젠더 감수성은 바닥 수준이다. “학교는 무수한 일반화의 폭력이 자리한 공간”이라고 했다. 당장 젠더, 섹슈얼리티, 성적 다양성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춘 교사를 찾기 드물다. 많은 동료 교사들은 성소수자 학생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배제하는 태도를 보였다. ‘난 성소수자 학생을 한 번도 본 적 없다’ ‘우리 반엔 없다’고 잘라 말하는 교사, ‘여학생’을 가르치면서 당연하다는 듯 ‘남자친구’ 이야기를 꺼내는 교사, 성소수자 학생을 상담하면서 ‘힘든 건 알지만 난 네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교사도 있었다. 학부모들의 태도도 별반 다르지 않다. “동성애자 인권을 지지한다면서 ‘내 학생은, 내 자식은 아니었으면’ 하는 분들이 있어요. 내 제자가, 자식이 고통 속에서 숨어 살지 않길 바란다면 그들을 지지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투쟁해야죠.”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인 성평등 교육, 인권 교육을 강화할 때”다. “교육청은 선언만 하곤 행동하질 않아요.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었으면 위반 사례를 조사하고 시정 조치를 내려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없죠.” 그는 대만 정부의 사례를 들며 “우리 정부도 아예 분명한 법제화에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만 젠더평등교육법(Gender Equity Education Act 2003)에서는 교육의 평등한 기회를 강조하며, 젠더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을 교과과정에서 삭제하도록 했다. 또 학교 내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게이, 트렌스젠더, 임신한 학생들을 ‘취약한’ 학생으로 보고 특별지원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는 “남성들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소수자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한국 남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젠더 감수성을 취약하게 만드는 경험, 자신의 소수자성을 억압하는 경험을 하며 자라죠. 그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다들 느끼고 있지만 인정하지 않으려 하죠.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평등 의식을 높일 수 있는 경험을 학교에서부터 조금씩 해나가야 해요. 그게 결국은 자신의 자유를 찾는 길이니까요.”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