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페미니스트 비평가 손희정

시대의 한계 뚫고 나올 페미니즘의 에너지에 주목

“페미니스트 대통령, 소수자 인권 위해 강력한 메시지 던져야”

 

 

페미니스트 비평가인 손희정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을 지난 18일 광화문에서 만났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페미니스트 비평가인 손희정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을 지난 18일 광화문에서 만났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5년 페미니즘이 다시 이슈로 떠올랐을 땐 ‘반짝 유행’에 그칠 거라고 내다보는 이들이 많았죠. 열기가 식기는커녕 더 뜨거워지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되돌아갈 수 없죠.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이 매우 부당하며, 이 부당함의 원인인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걸 감각한 사람들은 절대로 돌아갈 수 없어요.”(손희정)

손희정(40)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은 “페미니즘은 ‘오염’”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강한 사회’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을 드러내고, 사회를 오히려 건강하게 만드는 오염이죠. 전염성이 매우 강한데다 이제는 자가증식하기 시작했달까요.”

페미니스트 비평가이자 혐오 연구자인 그는 최근 책 『페미니즘 리부트: 혐오의 시대를 뚫고 나온 목소리들』(나무연필)를 펴냈다. 2015년 SNS에서 촉발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운동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어진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의 흐름을 ‘페미니즘 리부트’라 명명했다. ‘리부트’란 기존 시리즈의 연속성을 거부하고 이야기를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것을 뜻하는 영화 용어다. 책은 총 2부로 구성됐으며, ‘페미니즘 리부트’를 중심으로 조망한 한국 사회와 개별 문화 텍스트를 통한 ‘페미니즘 비평’을 들여다본다.

 

 

페미니스트 비평가 손희정 씨의 책, 『페미니즘 리부트: 혐오의 시대를 뚫고 나온 목소리들』(나무연필). “표지엔 ‘도전, 모험’ 상징하는 이미지를 찾아 썼어요. 이 책 자체가 여성들의 도전과 모험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해요.”(손희정) ⓒ나무연필
페미니스트 비평가 손희정 씨의 책, 『페미니즘 리부트: 혐오의 시대를 뚫고 나온 목소리들』(나무연필). “표지엔 ‘도전, 모험’ 상징하는 이미지를 찾아 썼어요. 이 책 자체가 여성들의 도전과 모험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해요.”(손희정) ⓒ나무연필

 

지난해 뜨거운 화제였던 ‘#OO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전후로, 여성들은 “오프라인 세계에서 찾지 못했던 일종의 공유지를 트위터를 비롯한 온라인 공간에서 구축해 새로운 사이버 공유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에서 여성들은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에 저항하고, 그렇게 IMF 이후 펼쳐졌던 마녀사냥의 시계를 되돌리고 있다”고 손 연구원은 진단했다.

문제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역습(backlash)의 강도도 높아졌다는 점이다. 최근 여성BJ 살해협박 생방송,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토일렛’의 등장을 두고 그는 “여혐을 넘어 여성 대상 물리적 폭력 자체가 콘텐츠가 되는 세상이 됐다”고 우려했다.

“여성의 성을 타자화하고 착취하는 일을 가리켜 ‘자유로운 영혼’, ‘예술성’이라며 정당화"해온 문화예술계의 관행도 비판했다. 김기덕 감독이 배우를 폭행하고 대본에 없던 상대 배우의 신체 일부를 잡도록 강요하는 등  혐의로 최근 피소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문제다. 김 감독 측은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려 그랬다”며 폭행 사실을 인정했다. “예술하는 남자라면 성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면서 늘 여성 성에 대한 타자화, 착취로 이어지는 게 문제예요. 김기덕 감독도, 홍상수 감독도 그래요. 특히 김기덕 감독이 한 일은 ‘갑질’이 아닙니다. 명백한 성폭력입니다.”

빗발친 사퇴 요구에도 꿈쩍 않는 탁현민 행정관도 비판했다. 탁 행정관은 여성 비하 혐오, 미성년자와의 성관계 미화 등의 저술 내용으로 야권은 물론 여성 시민단체로부터 퇴진 요구를 받고 있다. “(탁 행정관은) 중학교 때 여성을 윤간한 것처럼 글을 썼고, 문제를 제기하니 픽션이었다고 해요. 자신이 상상하는 쿨한 남성이 폭력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이런 사람이 정부의 이야기, 서사를 만드는 직책에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게 여론인데...리버럴한 남성성은 여성을 쉽게 취급하는 성적 자유주의와 쉽게 연결돼 버리고, 그걸 ‘말랑말랑한 뇌’라며 옹호하기까지 하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가 지난
 4월 21일 서울 용산구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열린 여성신문·범여성계연대기구가 주최한 제19대 대통령 후보 초청 성평등정책 간담회에서 성평등 공약이행을 위한 서약서에 서명한 후 서약서를 들고 ‘성평등 대통령’이 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가 지난 4월 21일 서울 용산구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열린 여성신문·범여성계연대기구가 주최한 제19대 대통령 후보 초청 성평등정책 간담회에서 성평등 공약이행을 위한 서약서에 서명한 후 서약서를 들고 ‘성평등 대통령’이 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 온라인에서 혐오와 반지성주의가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자리잡”은 지금, 필요한 건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강력한 메시지”라고 그는 말했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성소수자 인권 문제엔 “나중에”,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했죠. 가장 유력한 후보가 그렇게 말하자 온라인에선 혐오발언이 폭발했어요.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자주 열린 퇴행적 맞불집회도, 이들 정부가 승인한 사고방식이 집회 형태로 드러난 거라고 봐요. 정부, 기득권이 ‘그런 걸 해도 괜찮다’라고 메시지를 보낸 거죠.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면 표를 얻으려 소수자 인권을 버릴 게 아니라, ‘그러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는 정부 100대 과제에 “젠더폭력기본방지법이 포함된 것은 매우 중요한 성과지만, 여성 정책이 성폭력, 몰래카메라 범죄 등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주제만 강조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특히 정부가 최근 몰카 범죄자를 ‘화학적 거세’ 대상에 포함한 일은 “몰카 범죄의 본질에서 동떨어진, 구조적 문제를 묻지 않는 처벌이며 포퓰리즘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정부 100대 과제에 오르지 못했고, 발표된 여성 정책은 아직 소수지만, “이제 시작이니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의 개별적 운동을 넘어선 여성의 정치세력화도 필요하다고 했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 사퇴를 두고 여성들이 시끄럽게 해서 그런 거라고, 페미니즘의 승리라고 쉽게 말하지만, 탁 행정관이 안 내려오는 걸 보면 여성들의 목소리가 그걸 좌우한다고 보기는 어렵죠. 여성은 아직 너무 힘이 없어요. 더 힘을 길러야 해요. 다양한 여성들 간 연대를 통한 횡단의 정치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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