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에서 도덕성이 살아야 정의가 작동되고

무너졌던 원칙도 다시 바로 세워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간담회에 참석한 피해자 임성준군에게 야구선수 피규어를 선물하고 있다. ⓒ뉴시스ㆍ여성신문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 인왕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간담회에 참석한 피해자 임성준군에게 야구선수 피규어를 선물하고 있다. ⓒ뉴시스ㆍ여성신문

 

문재인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취한 두 개의 상반된 조치가 주목을 끈다. 하나는 박기영 순천대 교수를 과학기술혁신 본부장에 임명한 것이고, 또 따른 하나는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15명을 청와대에서 만난 것이다. 박 본부장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 당시 대통령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었다. 그는 자신과 가까운 황 교수에게 연구비 등 각종 국가적 지원을 몰아줬고, 2004년에는 연구에 기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황 교수의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황 교수의 연구에 대한 잘못된 내용을 보고해 사태를 더 키웠다는 의혹도 받았다. 결국 박 본부장은 2006년 1월 황우석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청와대 에서 물러났다.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박 본부장 임명에 대한 우려와 질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 청와대 대변인은 “과거에 그 대상자의 행적이나 철학이 결정적으로 새 정부에 배치되지 않는 한은 과거의 그런 경험들이 결정적 하자가 될 수는 없다”는 논리로 박 본부장의 임명을 정당화했다. 이 무슨 훼괴하고 황당한 논리인가. 문재인정부는 인사를 할 때 정부와 코드가 맞고 전문성만 있으면 도덕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도대체 새 정부가 그렇게 부르짖는 적폐 청산은 어디로 갔는가. 참여정부 때 잘못된 것은 문제가 없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의 적패만 청산하면 된다는 것인가. 정부가 적폐 청산에 대해 이렇게 편의적으로 접근하면 국민들을 설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지도 받을 수 없다.

모든 적폐는 정권 여부와 상관없이 청산돼야 진정성이 인정된다. 미국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왜 도덕인가?』라는 책에서 “도덕성이 살아야 정의도 살 수 있고, 무너진 원칙도 다시 바로 세 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의 핵심 국정목표는 ‘정의로운 국가’다. 정부는 인사에서 도덕성이 살아야 정의가 작동되고 그동안 무너졌던 원칙도 다시 바로 세워질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기영 본부장의 임명은 분명 새 정부의 인사에서 기회는 평등하지 않고, 결과도 정의롭지 못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대통령이 6년 만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직접 만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예방하지 못했고, 이후에도 피해사례들을 빨리 파악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면서 “대통령으로서 정부를 대표해 가슴 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또한 “책임져야 할 기업이 있는 사고이지만 정부도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할 수 있는 지원을 충실히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단언컨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은 정부의 도덕성이 무너진 참담한 사례다.

대한민국 헌법 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돼 있다. 헌법 제35조 ①항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돼있다. 더구나 제36조 ③항엔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돼 있다. 헌법은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정신이다. 헌법 정신이 살아 숨 쉴 때 국민의 기본적 권리는 보장받는다. 정부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제 정부는 헌법에서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지킨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은 정부를 믿고 진정 조국을 사랑할 수 있다. 가습기 피해자 측에서는 특검 재수사를 통한 철저한 진상규명, 피해자 인정 판정기준 확대, 국민안전기본법 제정, 소비자 권리 보호를 위한 징벌제 강화·집단소송제 도입 등을 요구했다. 정부만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가 적극 나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성평등과 같이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국민의 신성한 기본권을 지키고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는 여야가 따로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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